발렌타인 날의 소고
2013.02.18 08:26
발렌 타인 날 소고
오늘은 발렌 타인 데이다. 내가 살았던 젊은 시절에는 발렌 타인 데이라고 선물 주고 받은 적이 없어 별로 관심 밖의 먼 나라 것이거나 내게는 해당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아이들이 어릴 적은, 어머니 날에 남편이 아이들 앞세워서 아이들 이름으로 선물을 하는 추억은 있다.
첫아들이 초등 학교 들어가 어머니 날을 맞이하여 학교서 어머니에게 선물 해야 한다고 한 모양이다, 돈을 달라고 하여 돈을 주었다, 무슨 선물을 할 것인가, 기대를 했더니, 아들은 종이에 카네이숀 꽃을 그려 그 밑에 사랑해요 가슴에 다는 리본, 똑 같은 것으로 12개를 만들어 왔다,
다른 아이들은 아마 돈으로 선물을 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들은 리본 12개를 만들어 와서 어머니 가슴에 죽 달아 주었다. 고지식한 아들, 다 잊어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 내어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런 한국 풍습에서 이민을 와서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려서 발렌 타인 날을 별로 신경을 안 쓰더니, 아이들이 커지고, 보이후랜드, 걸푸랜드 생기게 되니, 아이들이 돈을 마련하려고 신문 돌리기를 한다던 지, 맥다놀에서 일을 하던지, 장미꽃을 사고, 초콜릿을 사는 것이다,
특히 아들들은 가진 아양을 다 떨어서 내게 돈을 울 겨 낼 궁리를 하고 있다. 평소에 쓰레기 버리기를 싫어하던 아이가, 냉큼 버려 준다던 지, 아빠 차를 반짝반짝 하게 닦아 드린다던 지, 그리고 딸아이는 설거지를 했다. 왜 오빠는 설거지 안 시키고 나만 시키느냐고 항의를 하던 딸이다, 왜 오빠더러 설거지 하라고 안 해, 나만 하라고 해, 나는 궁색한 대답이 나온다. 오빠는 남자 이잖아 한다, 남자는 밥 안 먹어 하고 골을 냈다. 나는 우리 집에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라서, 남자에 대한 선호가 있었다.
그런 딸이 설거지 하고, 엄마 오늘 나 설거지 했어 한다. 그건 용돈을 더 달라는 것이다 어려운 이민 생활에 일주일에 많이 주어야 20불이다, 보통은 10불이다, 그러니 힘들었을 것
같다. 북새 통에서 자란 아이들이 공부 한다고 다 흩어지고, 그 흩어진 곳에서 정착을 하고 일년에 한번 볼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떠난 다음 부 터는 남편이 발렌 타인 날이면 장미를 한 다슨 사가지고 왔다,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를 더 주었다고 장한 일 한 아이처럼 큰소리로 말했다. 한 다슨 장미 보다, 한 송이 더 받은 장미가 더 좋은 것 같다.
매년 그렇게 사다 나르더니 2년 전부터는 커다란 하트 상자의 초콜릿을 사다 날랐다. 족이 가격이 50불을 될 성 부르다.
장미 꽃 한 다슨, 먹지도 못하는 것을 돈을 낭비하는 것 같아, 나중에는 여보 나 장미 꽃 별로야 안 좋아하니, 사오지 말아, 하였다. 그랬어, 그러면 진즉 말하지 하며, 그 다음부터는 초콜릿을 사다 주었다.
그 놈의 초콜릿도 얼마나 비싼지, 싼 것이 30불이다, 30불이면 둘이서 외식을 해도 넉넉했다. 그 다음해는 50불짜리 사왔다, 빨간 하트 상자에 초콜릿이 보기에 근사 하다. 이제는 안되겠다, 이 비싼 것을 사느라고 낭비를 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고, 여보 초콜릿은 당뇨에 혈압에 안 좋다는 알지요 그러니 당신도 나도 이런 것 먹어서는 안 되요, 했다. 남편은 시무룩한 얼굴로 무얼 사오지 한다. 사실 초콜릿을 사오면 몇 달 동안 냉장고에서 굴러 다닌다. 지천꾸러기 된다, 나중에는 초콜릿이 부석부석 하여 못 먹게 된다.
누가 초콜릿을 선물 하게 하였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제는 라디오에서 초콜릿을 발렌 날에 선물 하는 것은, 일본에서 상술로 그렇게 선전을 하다 보니 그게 발렌 타인 날로 정착을 했다 한다. 그렇게 작년은 지나 갔다.
작년에 남편이 돌아 가시고 나니, 올해는 장미 한 송이 초콜릿 한 상자 가져다 주면서 사랑해 할 그리운 사람이 없는 것이 눈물이 났다.
정부 집이 나올 때까지 딸의 집에 살고 있으면서 일찍 집에 들어 가지 못하고, 시내를 헤 메고 있으니, 앞 산 마루에 무지개가 걸려 있다. 서늘함이 가슴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낭비를 하더라도, 지천 꾸러기 되더라도, 오늘 같은 날, 장미와 초콜릿이 받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즐거운 비명이었구나 싶어진다, 추억만으로 살아가야지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