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김효순
2013.06.02 08:30
수 국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차악 목요야간반 김효순
어릴 적 봄이 되면 시골집 담벼락에 수북이 피어나는 하얀 꽃봉오리들이 있었다. 쌀 튀밥을 주먹만 하게 뭉쳐놓은 듯해서 우리는 튀밥 꽃이라 불렀다. 소꿉놀이한다고 깨진 사금파리 조각에 꽃봉오리들을 따다가 밥이라고 차려놓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 초파일에 엄마를 따라간 동네 앞산 절 앞마당에서 그 꽃을 보았다. 꽃 이름이 부처님 머리꽃, 불두화(佛頭花)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부처님 머리모양으로 곱슬곱슬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 뒤로 한동안은 부처님 머리꽃을 따다가 소꿉장난을 해서 혹시나 벌을 받지나 않을까 공연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어느 해 여름, 직원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 해변가 돌담위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불두화를 보았다. 어릴 적 본 하얀색이 아니었다. 파란색, 하늘색, 보라색뿐 아니라 분홍색, 자주색도 있었다. 섬이어서 다르나 했지만 그건 불두화가 아니라 수국임을 알았다. ‘물을 많이 먹는 국화’라 해서 물국화, 수국(水菊)이라 했다. 불두화와 같은 듯 다른 수국은 이름도 예뻤지만, 수수하면서도 화려했고, 상큼발랄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처연함이 있어 신비로웠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 바닷가는 천지가 다 수국길이었다. 가히 장관이었다.
그 즈음 또 다른 수국을 만난 건 조정래의「아리랑」이었다. 착하고 예쁘지만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감골댁네 셋째 딸 수국. 조선 사람 착취하는 일본 놈과 지주의 아들, 일본 앞잡이들에게 처절하게 짓밟힌 우리 민족과 같은 이름 조선 처녀 수국. 수국이가 못할 일을 당할 때마다 눈물 반 콧물 반 주먹을 쥐면서 책장을 넘길 때 문득 제주도에서 보았던 수국이 떠올랐다. 어쩌면 수국이란 꽃의 속성은 원래 아름다움이 아니라 슬픔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을 수국이라 지었을 때 작가도 제주도의 수국을 알고 있었을까.
얼마 전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사무실에 자그마한 화분이 배달되었다. 수국이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청보라색 꽃망울이 깻잎 같은 잎사귀들 사이로 수줍은 듯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흔히 꽃 배달 화분은 정작 꽃보다 요란한 리본이나 금박 테이프에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있건만 그 화분은 달랐다. 리본도 없이 수수한 포장에 누런 재생종이 가방에 담겨져 있었다. 누가 보냈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이름은 보이지 않고 작은 메모지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만 댕그라니 적혀 있었다. 수국이라니……. 수많은 꽃 중에서 어떻게 수국을 골랐을까. 누구일까. 순간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맞다. 수현(가명)일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수현이를 만난 건 시골 학교를 전전하다 처음으로 전주시내 학교로 옮겼을 때였다. 막연히 시내 아이들은 영어 발음도 좋고 실력도 더 좋으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수업시간마다 긴장되는 금방 신규 딱지를 떼어낸 젊은 여선생 시절이었다. 그런 나의 속내를 알아차린 듯 슬슬 눈치를 보면서 장난치고 잡담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예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수현이는 달랐다. 자그마한 키에 맨 앞에 앉아서 커다란 눈동자로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열심히 따라 읽기도 해서 유독 눈길을 끄는 아이였다. 성적도 좋아서 말 그대로 모범생이었다. 그런 수현이의 눈빛에 안도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점차 새 학교에 적응해갔고, 어느덧 해가 바뀌어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수현이를 다시 만난 것은 장학사가 되어 교육청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는 영어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사회인식 때문에 나는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을 활성화시켜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다. 무엇보다 실력과 열정을 갖춘 영어선생님들이 필요했다. 그때 수현이를 만났다. 젊고 당당한 영어선생님이었다. 중학생 때 처음 만났고 선생님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남다르게 더 잘해준 것도 없는데 그래도 제자라고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수현이를 보면서 나 자신이 스승이라기에는 쑥스러웠다.
그러나 쑥스러움도 잠시였고 같은 영어교사의 길을 가고 있는 수현이가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 주변에서 간간이 수현이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마치 내가 칭찬을 받는 양 뿌듯했다. 30대가 훌쩍 넘어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드디어 참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고 찾아 왔을 때 역시 내 가족 누군가가 결혼 하는 것처럼 기뻤다. 수현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신랑에게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갔다. 남들보다 늦게 하는 결혼을 보상이라도 받듯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아기를 가졌고 부른 배를 내밀고 둘이서 시장도 보러 다니며 알콩달콩 산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런 신랑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기 전 마지막으로 수현이를 본 것은 첫 애 출산 후 육아휴직으로 쉬고 있을 때였다. 마침 아는 사람이 개업한 아기 옷 가게에 갔다가 옷 한 벌을 사들고 수현이를 찾아 갔었다. 수현이는 젊은 아기 엄마가 되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며칠 안 되어 장례식장에서 수현이를 만났다. 거의 초죽음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넋이 나간 듯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수현이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 뒤로 1년이 흘렀다. 그사이 수현이는 유복자로 둘째를 낳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수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강한 엄마와 예쁜 엄마가 되라는 것뿐이었다. 두 아이를 책임져야하는 각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어 자신보다 아이를 챙기는 강한 엄마가 되어야 하지만, 아직은 너무 젊어서 때로는 아이만큼 자신도 챙길 줄 아는 예쁜 엄마가 되었으면 했다. 수현이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아리랑의 주인공 수국이가 생각났고, 아름다웠지만 슬퍼보이던 제주도의 수국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날 수국화분을 받았다. 내가 수국을 좋아하는 것을 수현이가 알 리 없건만 수국을 보내 온 건 우연일까 이심전심일까. 오히려 수현이는 잘 이겨내고 있는데 나 혼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나는 수현이가 혼자가 아니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래서 예전의 예쁘고 당당한 선생님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오후 내내 이런 저런 생각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국을 보고 또 보았다.
(2013. 5. 31.)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차악 목요야간반 김효순
어릴 적 봄이 되면 시골집 담벼락에 수북이 피어나는 하얀 꽃봉오리들이 있었다. 쌀 튀밥을 주먹만 하게 뭉쳐놓은 듯해서 우리는 튀밥 꽃이라 불렀다. 소꿉놀이한다고 깨진 사금파리 조각에 꽃봉오리들을 따다가 밥이라고 차려놓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 초파일에 엄마를 따라간 동네 앞산 절 앞마당에서 그 꽃을 보았다. 꽃 이름이 부처님 머리꽃, 불두화(佛頭花)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부처님 머리모양으로 곱슬곱슬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 뒤로 한동안은 부처님 머리꽃을 따다가 소꿉장난을 해서 혹시나 벌을 받지나 않을까 공연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훌쩍 지나 어느 해 여름, 직원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 해변가 돌담위로 무리지어 피어있는 불두화를 보았다. 어릴 적 본 하얀색이 아니었다. 파란색, 하늘색, 보라색뿐 아니라 분홍색, 자주색도 있었다. 섬이어서 다르나 했지만 그건 불두화가 아니라 수국임을 알았다. ‘물을 많이 먹는 국화’라 해서 물국화, 수국(水菊)이라 했다. 불두화와 같은 듯 다른 수국은 이름도 예뻤지만, 수수하면서도 화려했고, 상큼발랄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처연함이 있어 신비로웠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 바닷가는 천지가 다 수국길이었다. 가히 장관이었다.
그 즈음 또 다른 수국을 만난 건 조정래의「아리랑」이었다. 착하고 예쁘지만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감골댁네 셋째 딸 수국. 조선 사람 착취하는 일본 놈과 지주의 아들, 일본 앞잡이들에게 처절하게 짓밟힌 우리 민족과 같은 이름 조선 처녀 수국. 수국이가 못할 일을 당할 때마다 눈물 반 콧물 반 주먹을 쥐면서 책장을 넘길 때 문득 제주도에서 보았던 수국이 떠올랐다. 어쩌면 수국이란 꽃의 속성은 원래 아름다움이 아니라 슬픔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을 수국이라 지었을 때 작가도 제주도의 수국을 알고 있었을까.
얼마 전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사무실에 자그마한 화분이 배달되었다. 수국이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청보라색 꽃망울이 깻잎 같은 잎사귀들 사이로 수줍은 듯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흔히 꽃 배달 화분은 정작 꽃보다 요란한 리본이나 금박 테이프에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혀있건만 그 화분은 달랐다. 리본도 없이 수수한 포장에 누런 재생종이 가방에 담겨져 있었다. 누가 보냈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이름은 보이지 않고 작은 메모지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만 댕그라니 적혀 있었다. 수국이라니……. 수많은 꽃 중에서 어떻게 수국을 골랐을까. 누구일까. 순간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맞다. 수현(가명)일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수현이를 만난 건 시골 학교를 전전하다 처음으로 전주시내 학교로 옮겼을 때였다. 막연히 시내 아이들은 영어 발음도 좋고 실력도 더 좋으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수업시간마다 긴장되는 금방 신규 딱지를 떼어낸 젊은 여선생 시절이었다. 그런 나의 속내를 알아차린 듯 슬슬 눈치를 보면서 장난치고 잡담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예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수현이는 달랐다. 자그마한 키에 맨 앞에 앉아서 커다란 눈동자로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열심히 따라 읽기도 해서 유독 눈길을 끄는 아이였다. 성적도 좋아서 말 그대로 모범생이었다. 그런 수현이의 눈빛에 안도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점차 새 학교에 적응해갔고, 어느덧 해가 바뀌어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수현이를 다시 만난 것은 장학사가 되어 교육청에 근무할 때였다. 당시는 영어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사회인식 때문에 나는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을 활성화시켜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었다. 무엇보다 실력과 열정을 갖춘 영어선생님들이 필요했다. 그때 수현이를 만났다. 젊고 당당한 영어선생님이었다. 중학생 때 처음 만났고 선생님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남다르게 더 잘해준 것도 없는데 그래도 제자라고 깍듯이 예의를 지키는 수현이를 보면서 나 자신이 스승이라기에는 쑥스러웠다.
그러나 쑥스러움도 잠시였고 같은 영어교사의 길을 가고 있는 수현이가 든든하고 자랑스러웠다. 주변에서 간간이 수현이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마치 내가 칭찬을 받는 양 뿌듯했다. 30대가 훌쩍 넘어 늦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드디어 참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고 찾아 왔을 때 역시 내 가족 누군가가 결혼 하는 것처럼 기뻤다. 수현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신랑에게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갔다. 남들보다 늦게 하는 결혼을 보상이라도 받듯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아기를 가졌고 부른 배를 내밀고 둘이서 시장도 보러 다니며 알콩달콩 산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런 신랑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듣기 전 마지막으로 수현이를 본 것은 첫 애 출산 후 육아휴직으로 쉬고 있을 때였다. 마침 아는 사람이 개업한 아기 옷 가게에 갔다가 옷 한 벌을 사들고 수현이를 찾아 갔었다. 수현이는 젊은 아기 엄마가 되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며칠 안 되어 장례식장에서 수현이를 만났다. 거의 초죽음이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넋이 나간 듯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수현이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 뒤로 1년이 흘렀다. 그사이 수현이는 유복자로 둘째를 낳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수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강한 엄마와 예쁜 엄마가 되라는 것뿐이었다. 두 아이를 책임져야하는 각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어 자신보다 아이를 챙기는 강한 엄마가 되어야 하지만, 아직은 너무 젊어서 때로는 아이만큼 자신도 챙길 줄 아는 예쁜 엄마가 되었으면 했다. 수현이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아리랑의 주인공 수국이가 생각났고, 아름다웠지만 슬퍼보이던 제주도의 수국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날 수국화분을 받았다. 내가 수국을 좋아하는 것을 수현이가 알 리 없건만 수국을 보내 온 건 우연일까 이심전심일까. 오히려 수현이는 잘 이겨내고 있는데 나 혼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나는 수현이가 혼자가 아니고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래서 예전의 예쁘고 당당한 선생님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오후 내내 이런 저런 생각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국을 보고 또 보았다.
(2013.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