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가벗겨진 수필가/윤철
2013.06.05 07:57
빨가벗겨진 수필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 철
수필가 김 학 선생님의 고희기념 수필집 《나는 행복 합니다》를 모두 읽었다. 머리글까지 모두 70편의 글이 6부로 나뉘어 실려 있었다. 잠자리 곁에 두고 잠들기 전에 서너 편씩 읽다 보니 수필집 한 권을 모두 읽은 것이다. 게을러서 접어두고 술 마시고 건너 뛴 날이 많아서 다 읽는데 달포나 걸렸다.
책에는 김 학 선생님의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작품에서 작가의 생각과 사물을 판단하는 의식,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가족 구성은 물론이고 이름과 생일, 집안에서 벌어진 일까지 내가 다 알고 말았다.
유소년 시절은 어떠했는지, 군대생활을 어디에서 했고 바다는 언제 처음 보았는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이고, 오늘날 수필계의 문제를 보는 시각과 바람까지 잡화점의 상품들만큼이나 다양하게 실려 있었다. 자랑스러운 대목도 있겠지만 감추어도 좋았을 사소한 일까지도 구겨서 쳐 박아놓았던 속옷이 드러나듯이 모두 드러나 있었다.
“수필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우치게 되었다. 같은 문학작품이라도 시(詩)나 소설(小說), 희곡(戱曲)에서는 작가의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최명희의 《혼불》은 모두 대작이고 독자들로부터 인정받은 명작들이다. 모두 읽었지만 작가들의 의식과 전하고 싶은 말들을 내가 막연히 짐작할 뿐 작가의 속내나 이모저모를 소상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310쪽짜리 책 한 권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보란 듯이 까발리다니. 《나는 행복 합니다》는 바로 김 학 선생님, 그 자신이었다. 삶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빨가벗겨진 것이다.
세상은 감추고 싶은 일이 많다. 부끄러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만 오롯이 즐기고 싶은 마음에 숨기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부끄럽고 말하기 싫어서 감추게 된다.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추지 않고 떳떳이 밝히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올곧고 깨끗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당당한 행동이다.
선생님은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다. 한 번도 어려운데 열두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여 열두 번씩이나 빨가벗었으니 말이다. 선생님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빨가벗는 부끄러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해성사를 하듯 숨김없이 고백하는 수필가들은 모두 용기 있고 당당한 사람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간 습작품이라고 써놓고 발표했던 20여 편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나도 어느새 수필가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주변이 상당히 많이 드러나 있었다.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앞으로 가족이야기는 절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제 글쓰기가 더 어려워 질것 같다. 숨길 것 다 숨기면서 쓴다면 진정성이 떨어질 테고, 숨길 것, 밝힐 것 가리다 보면 글제도 줄어들고 쫄깃한 글맛도 없어질 테니. 이래저래 글쓰기가 갈수록 어렵고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의 껍데기를 모두 벗어버리고 큰 네거리 한복판에 대(大)자로 누워
크게 외치고 싶다.
‘벗은 내가 부끄러운 사람이냐? 벗지 않은 네가 부끄러운 사람이냐?’
수필이 당당하게 살고 싶은 내 의지를 부축하는 지팡이가 될 것 같다.
(2013. 6. 3.)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 철
수필가 김 학 선생님의 고희기념 수필집 《나는 행복 합니다》를 모두 읽었다. 머리글까지 모두 70편의 글이 6부로 나뉘어 실려 있었다. 잠자리 곁에 두고 잠들기 전에 서너 편씩 읽다 보니 수필집 한 권을 모두 읽은 것이다. 게을러서 접어두고 술 마시고 건너 뛴 날이 많아서 다 읽는데 달포나 걸렸다.
책에는 김 학 선생님의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작품에서 작가의 생각과 사물을 판단하는 의식,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가족 구성은 물론이고 이름과 생일, 집안에서 벌어진 일까지 내가 다 알고 말았다.
유소년 시절은 어떠했는지, 군대생활을 어디에서 했고 바다는 언제 처음 보았는지,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이고, 오늘날 수필계의 문제를 보는 시각과 바람까지 잡화점의 상품들만큼이나 다양하게 실려 있었다. 자랑스러운 대목도 있겠지만 감추어도 좋았을 사소한 일까지도 구겨서 쳐 박아놓았던 속옷이 드러나듯이 모두 드러나 있었다.
“수필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깨우치게 되었다. 같은 문학작품이라도 시(詩)나 소설(小說), 희곡(戱曲)에서는 작가의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최명희의 《혼불》은 모두 대작이고 독자들로부터 인정받은 명작들이다. 모두 읽었지만 작가들의 의식과 전하고 싶은 말들을 내가 막연히 짐작할 뿐 작가의 속내나 이모저모를 소상히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310쪽짜리 책 한 권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보란 듯이 까발리다니. 《나는 행복 합니다》는 바로 김 학 선생님, 그 자신이었다. 삶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빨가벗겨진 것이다.
세상은 감추고 싶은 일이 많다. 부끄러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만 오롯이 즐기고 싶은 마음에 숨기는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부끄럽고 말하기 싫어서 감추게 된다.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추지 않고 떳떳이 밝히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다. 올곧고 깨끗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당당한 행동이다.
선생님은 참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다. 한 번도 어려운데 열두 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여 열두 번씩이나 빨가벗었으니 말이다. 선생님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빨가벗는 부끄러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해성사를 하듯 숨김없이 고백하는 수필가들은 모두 용기 있고 당당한 사람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간 습작품이라고 써놓고 발표했던 20여 편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나도 어느새 수필가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주변이 상당히 많이 드러나 있었다.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앞으로 가족이야기는 절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이제 글쓰기가 더 어려워 질것 같다. 숨길 것 다 숨기면서 쓴다면 진정성이 떨어질 테고, 숨길 것, 밝힐 것 가리다 보면 글제도 줄어들고 쫄깃한 글맛도 없어질 테니. 이래저래 글쓰기가 갈수록 어렵고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의 껍데기를 모두 벗어버리고 큰 네거리 한복판에 대(大)자로 누워
크게 외치고 싶다.
‘벗은 내가 부끄러운 사람이냐? 벗지 않은 네가 부끄러운 사람이냐?’
수필이 당당하게 살고 싶은 내 의지를 부축하는 지팡이가 될 것 같다.
(2013.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