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선물/박승서
2014.05.18 08:17
5월의 선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박승서
봄 햇살의 속살거림 때문이었을까? 오전 11시, 학교 운동장가 플라타너스의 어린잎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가득 차 있어야할 교정은 조용하기만 했다.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다목적교실 안에서 악기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20여 명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연주자와 악기들이 조그만 무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수석 연주자의 눈빛과 몸짓에 따라 마치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단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직’으로 첫 장을 열었다. 이어진 곡은 비발비의 ‘사계 중, 봄 1, 3악장’과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고전음악(Classic Music)을 들려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되었지만,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걱정을 내려놓았다.
개그맨 출신 사회자의 익살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엘가, 마스카니, 드보르작에 이르는 낭만주의 음악과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 피아졸라의 아르헨티나 탱고까지 접했다. 피날레는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과 코트라우의 ‘산타루치아’를 우렁찬 발성으로 장식했다. 명인이 빚어낸 청자의 빛이 신비롭다면, 부드러운 바이올린 소리, 비성(鼻聲)을 닮은 비올라 소리, 흉성(胸聲)을 닮은 첼로 소리, 다소 무거운 더블베이스 소리가 만들어낸 화음은 환상적이었다.
보통 행사 때면, 5분을 참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던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들을 한 시간 동안 숨을 죽이게 한 이 ‘작은 음악회’는, 환이 덕분으로 열게 된 것이다. 환이는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고나서 첫 번째로 졸업을 시킨 제자다.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학교 농악부와 마을 농악단에서 상쇠로 활동을 했었다. 각종 발표회나 농악대회가 열릴 때면 꽹과리 치기와 상모돌리기로 인기를 독차지했었다. 새 학년이 막 시작된 어느 날, 환이 한 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경찰대학교 교향악단의 책임자로 있는데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것이었다.
환이가 졸업한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세월동안 6학년 담임선생님인 나를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환이를 담임했던 때를 되돌아보았지만 특별히 잘 해 준 것은 없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열정으로 가르쳤고, 내 젊은 교사 시절 관심사였던 음악교육에 대하여 열성을 다했을 뿐이다. 제자가 성장하여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그 마음이 고맙고 기특하여, ‘작은 음악회’를 흔쾌히 열기로 하였다.
제안을 받았던 초기에는 경찰대학교 학생들의 음악동아리 활동 정도로 알았다. 내심, 음악연주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경찰대학교 학생들을 만나면, 꿈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국립경찰교향악단은 국내외 음악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최고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악단이었다. 국빈이 방문할 때면 청와대에 초청되어 연주를 했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예능 소외 지역인 농촌의 조그만 학교에서, 수준 높은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접하게 된 것에 대하여 참석한 모두가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음악회가 끝난 다음에는 교가와 애국가를 교향악단 반주로 만든 CD와 전교생, 전 직원들에게 선물까지 전달해 주었다. 은사를 찾아오고자 행사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을 얻게 되면 그 크기가 배가 되듯이, 환이가 가져다 준 ‘작은 음악회’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5월의 선물’이었다.
환이는 한 편의 시를 남겨 놓고 떠나갔다.
(전략)
너무나 큰 나무가 되고픈 꿈이 있었기에
앞만 보며 살아 온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작고 초라하여 죄송한 마음에
조금만 더 자라면 찾아뵐까 오늘 내일 미루다
이제야 눈을 돌려 바라보니
선생님은 더 큰 나무가 되어
여전히 긴 팔을 벌려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후략)
그 날의 팸플릿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쓰인 이 글은 내 삶의 빛이 바래지는 날, 신선한 샘물이 되어 메말라가는 나의 목을 촉촉이 적셔 줄 것 같다. “고맙다! 제자 환이야.”
(2014. 5. 15.)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박승서
봄 햇살의 속살거림 때문이었을까? 오전 11시, 학교 운동장가 플라타너스의 어린잎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가득 차 있어야할 교정은 조용하기만 했다.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다목적교실 안에서 악기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
20여 명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연주자와 악기들이 조그만 무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수석 연주자의 눈빛과 몸짓에 따라 마치 한 사람이 연주하는 것처럼, 단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직’으로 첫 장을 열었다. 이어진 곡은 비발비의 ‘사계 중, 봄 1, 3악장’과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고전음악(Classic Music)을 들려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되었지만,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걱정을 내려놓았다.
개그맨 출신 사회자의 익살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엘가, 마스카니, 드보르작에 이르는 낭만주의 음악과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 피아졸라의 아르헨티나 탱고까지 접했다. 피날레는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과 코트라우의 ‘산타루치아’를 우렁찬 발성으로 장식했다. 명인이 빚어낸 청자의 빛이 신비롭다면, 부드러운 바이올린 소리, 비성(鼻聲)을 닮은 비올라 소리, 흉성(胸聲)을 닮은 첼로 소리, 다소 무거운 더블베이스 소리가 만들어낸 화음은 환상적이었다.
보통 행사 때면, 5분을 참지 못하고 꼼지락거리던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들을 한 시간 동안 숨을 죽이게 한 이 ‘작은 음악회’는, 환이 덕분으로 열게 된 것이다. 환이는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고나서 첫 번째로 졸업을 시킨 제자다.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서, 학교 농악부와 마을 농악단에서 상쇠로 활동을 했었다. 각종 발표회나 농악대회가 열릴 때면 꽹과리 치기와 상모돌리기로 인기를 독차지했었다. 새 학년이 막 시작된 어느 날, 환이 한 테서 전화가 왔다. 자신이 경찰대학교 교향악단의 책임자로 있는데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것이었다.
환이가 졸업한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세월동안 6학년 담임선생님인 나를 마음 한 구석에 담아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환이를 담임했던 때를 되돌아보았지만 특별히 잘 해 준 것은 없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하듯 열정으로 가르쳤고, 내 젊은 교사 시절 관심사였던 음악교육에 대하여 열성을 다했을 뿐이다. 제자가 성장하여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그 마음이 고맙고 기특하여, ‘작은 음악회’를 흔쾌히 열기로 하였다.
제안을 받았던 초기에는 경찰대학교 학생들의 음악동아리 활동 정도로 알았다. 내심, 음악연주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경찰대학교 학생들을 만나면, 꿈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국립경찰교향악단은 국내외 음악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최고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악단이었다. 국빈이 방문할 때면 청와대에 초청되어 연주를 했고, 세종문화회관에서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예능 소외 지역인 농촌의 조그만 학교에서, 수준 높은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접하게 된 것에 대하여 참석한 모두가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음악회가 끝난 다음에는 교가와 애국가를 교향악단 반주로 만든 CD와 전교생, 전 직원들에게 선물까지 전달해 주었다. 은사를 찾아오고자 행사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을 얻게 되면 그 크기가 배가 되듯이, 환이가 가져다 준 ‘작은 음악회’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5월의 선물’이었다.
환이는 한 편의 시를 남겨 놓고 떠나갔다.
(전략)
너무나 큰 나무가 되고픈 꿈이 있었기에
앞만 보며 살아 온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작고 초라하여 죄송한 마음에
조금만 더 자라면 찾아뵐까 오늘 내일 미루다
이제야 눈을 돌려 바라보니
선생님은 더 큰 나무가 되어
여전히 긴 팔을 벌려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후략)
그 날의 팸플릿 한 페이지에 빼곡하게 쓰인 이 글은 내 삶의 빛이 바래지는 날, 신선한 샘물이 되어 메말라가는 나의 목을 촉촉이 적셔 줄 것 같다. “고맙다! 제자 환이야.”
(2014.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