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2014.09.07 07:46
나를 찾아서
김 학
한마디로 쇼크였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비교적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성격의 나로서도 견디기 힘든 뼈아픈 충고였다. 수필 강의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나를, 여류 수필가 Y가 따라 나왔다. 비가 내리니 잘 가라며 전송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Y는 내 배를 가리키며 운동을 좀 하라고 했다. 내가 Y의 충고에 자극을 받은 것은 자기 남편의 살빼기 성공사례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5년 전 교직에서 명예퇴직을 한 Y의 남편은 천하의 애주가였다. 그런 사람이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날마다 2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여 무려 10kg의 살을 뺐고, 그 결과 혈압 약조차 끊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내 정곡을 찌른 충고였다.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나도 사실 그동안 몇 번이나 살빼기 작전을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집까지 오는 동안 그 충격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1급 장애우인 Y의 충고여서 더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2013년 7월 6일 토요일! 오늘부터 나도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로 작심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알칼리 이온 수 한 컵을 꿀꺽꿀꺽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일을 열어보니 20여 가지 메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반가운 것은 미국에 사는 둘째아들이 보내준 가족사진이었다. 네 식구가 찍었는데 박사학위를 받은 날 기념사진이었다. 사진을 큰아들과 딸에게도 보내 주고 내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또 몇 사람의 문하생이 보내준 수필 원고를 첨삭하여 보내주고 보니 어느새 새벽 5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부터 인후공원에 오르기로 했다. 산길에 접어드니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들이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자 나뭇가지는 한들한들 춤을 춘다. 오르막길에서 만난 초면의 젊은 부부가 “안녕하십니까?” 정답게 인사를 건넸다. 산에는 아직도 인정이 살아 있었다.
산길을 걸으며 지리산을 종주했다는 60대의 ㄱ여사와 백두대간을 종주했다는 70대 후반의 ㄱ어르신이 떠올랐다. 연약해 보이는 그 분들이 어떻게 무거운 배낭을 지고 힘들게 등산을 했을까? 그 분들의 뚝심이 부러웠다.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나와 비교가 되었다.
새벽에 산길을 걷는 기분은 아주 삽상했다. 장마철이라 그렇겠지만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들렸다. 또 청아한 새소리는 속세에 젖은 내 귀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밤새 산소를 뿜어 낸 나무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폐부 깊숙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니 기분이 상쾌했다. 도심(都心)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산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세계의 유명한 산들이 소개될 때면 신비로운 느낌으로 바라보았지, 내가 그 산에 오르고 싶다는 꿈은 꾸지도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산은 인간의 건강을 보살펴 주는 건강 쉼터다. 높은 산이 있기에 위대한 등산가도 태어났다. 세계 등산의 역사에서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4,807m)을 등정한 미셀 가브리엘 파가르와 마터호른(4,478m)을 등정한 에드워드 웜퍼, 그리고 히말라야 8,000미터 급 14봉 중 안나푸르나를 등정한 모리스 에르족,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한 헤르만 불,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 등이 그 좋은 예다. 생과 사를 넘나든 그들의 투혼이 있었기에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세계의 고봉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또 그 산 때문에 그들이 유명해졌다니, 산은 상생의 본보기가 아닌가.
세계 산악문학(山岳文學)의 고전(古典)인 에드워드 웜퍼의 『알프스 등반기』, 모리스 에르족의『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 헤르만 불의『8,000미터의 위와 아래』, 에드먼드 힐러리의『나의 에베레스트』등은 불멸의 알피니스트들이 남긴 걸작들이다. (출처: 대한산악연맹 국민등산학교 교재) 집에 돌아오니 아침 6시 20분, 나는 공복(空腹)에 처음으로 오일 풀링(Oil Pulling)을 시작했다. 참기름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며 컴퓨터에서 일을 했다. 기름을 씹기도 하고 혀를 굴려 입안의 구석구석을 마사지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 해바라기기름 어느 것이나 괜찮지만 참기름이 가장 좋다고 했다. 20분쯤 지나 화장실 양변기에 뱉고서 양치질로 마무리했다. 입안이 개운하여 좋았다.
나는 오늘부터 날마다 우리 동네 뒷동산 인후공원에 오르고, 오일 풀링으로 나를 떠나버린 ‘옛날의 나’를 찾기로 했다. 30대 때의 내 몸무게 68kg을 되찾으려면 굳세고 끈질기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가 과연 지금보다 20kg쯤 가벼워질 수 있을까?
김학 약력
1980년 『月刊文學』등단/『나는 행복합니다』등 수필집 12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한국수필상, 펜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김 학
한마디로 쇼크였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비교적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성격의 나로서도 견디기 힘든 뼈아픈 충고였다. 수필 강의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나를, 여류 수필가 Y가 따라 나왔다. 비가 내리니 잘 가라며 전송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Y는 내 배를 가리키며 운동을 좀 하라고 했다. 내가 Y의 충고에 자극을 받은 것은 자기 남편의 살빼기 성공사례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5년 전 교직에서 명예퇴직을 한 Y의 남편은 천하의 애주가였다. 그런 사람이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날마다 2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여 무려 10kg의 살을 뺐고, 그 결과 혈압 약조차 끊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내 정곡을 찌른 충고였다.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나도 사실 그동안 몇 번이나 살빼기 작전을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집까지 오는 동안 그 충격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1급 장애우인 Y의 충고여서 더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2013년 7월 6일 토요일! 오늘부터 나도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로 작심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새벽 3시에 눈을 떴다. 알칼리 이온 수 한 컵을 꿀꺽꿀꺽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메일을 열어보니 20여 가지 메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반가운 것은 미국에 사는 둘째아들이 보내준 가족사진이었다. 네 식구가 찍었는데 박사학위를 받은 날 기념사진이었다. 사진을 큰아들과 딸에게도 보내 주고 내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또 몇 사람의 문하생이 보내준 수필 원고를 첨삭하여 보내주고 보니 어느새 새벽 5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부터 인후공원에 오르기로 했다. 산길에 접어드니 촉촉이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들이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자 나뭇가지는 한들한들 춤을 춘다. 오르막길에서 만난 초면의 젊은 부부가 “안녕하십니까?” 정답게 인사를 건넸다. 산에는 아직도 인정이 살아 있었다.
산길을 걸으며 지리산을 종주했다는 60대의 ㄱ여사와 백두대간을 종주했다는 70대 후반의 ㄱ어르신이 떠올랐다. 연약해 보이는 그 분들이 어떻게 무거운 배낭을 지고 힘들게 등산을 했을까? 그 분들의 뚝심이 부러웠다.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나와 비교가 되었다.
새벽에 산길을 걷는 기분은 아주 삽상했다. 장마철이라 그렇겠지만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들렸다. 또 청아한 새소리는 속세에 젖은 내 귀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밤새 산소를 뿜어 낸 나무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폐부 깊숙이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니 기분이 상쾌했다. 도심(都心)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산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세계의 유명한 산들이 소개될 때면 신비로운 느낌으로 바라보았지, 내가 그 산에 오르고 싶다는 꿈은 꾸지도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산은 인간의 건강을 보살펴 주는 건강 쉼터다. 높은 산이 있기에 위대한 등산가도 태어났다. 세계 등산의 역사에서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4,807m)을 등정한 미셀 가브리엘 파가르와 마터호른(4,478m)을 등정한 에드워드 웜퍼, 그리고 히말라야 8,000미터 급 14봉 중 안나푸르나를 등정한 모리스 에르족, 낭가파르바트를 등정한 헤르만 불,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를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 등이 그 좋은 예다. 생과 사를 넘나든 그들의 투혼이 있었기에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세계의 고봉들이 세상에 알려지고, 또 그 산 때문에 그들이 유명해졌다니, 산은 상생의 본보기가 아닌가.
세계 산악문학(山岳文學)의 고전(古典)인 에드워드 웜퍼의 『알프스 등반기』, 모리스 에르족의『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 헤르만 불의『8,000미터의 위와 아래』, 에드먼드 힐러리의『나의 에베레스트』등은 불멸의 알피니스트들이 남긴 걸작들이다. (출처: 대한산악연맹 국민등산학교 교재) 집에 돌아오니 아침 6시 20분, 나는 공복(空腹)에 처음으로 오일 풀링(Oil Pulling)을 시작했다. 참기름 한 숟갈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며 컴퓨터에서 일을 했다. 기름을 씹기도 하고 혀를 굴려 입안의 구석구석을 마사지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 해바라기기름 어느 것이나 괜찮지만 참기름이 가장 좋다고 했다. 20분쯤 지나 화장실 양변기에 뱉고서 양치질로 마무리했다. 입안이 개운하여 좋았다.
나는 오늘부터 날마다 우리 동네 뒷동산 인후공원에 오르고, 오일 풀링으로 나를 떠나버린 ‘옛날의 나’를 찾기로 했다. 30대 때의 내 몸무게 68kg을 되찾으려면 굳세고 끈질기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내가 과연 지금보다 20kg쯤 가벼워질 수 있을까?
김학 약력
1980년 『月刊文學』등단/『나는 행복합니다』등 수필집 12권,『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등 수필평론집 2권/ 한국수필상, 펜문학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