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중앙시조 백일장

2004.07.2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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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등이 보일 때

풋풋한 산그늘에 발길 닿아 가벼운데
서너 걸음 앞서 가는 땀 배인 등을 본다
나누어 질 수도 없는
속울음 깊은 등을

물살 세찬 여울 건너 가풀막 올라선다
산꿩 울음 잠겨드는 샘물에 손 담그면
노을빛 실루엣으로
시린 등의 그가 있다

길섶의 나무들도 저리 몸을 낮추어서
서로를 돌아보는 애잔한 저물녘에
우리도 그리운 것들
조금씩 닮아간다

<권성미 52.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차상]

외줄 - 유리창 닦기

무한의 허공을 거미처럼 내려와서
한 가닥 밧줄에 생명을 저당 잡히고
몸으로 세상을 닦는다
마음까지 환하라고

대명천지 밝은 날에 까막까막 등불 켜고
외줄에 감겨드는 이승의 삶 풀어내며
무리진 흔적을 모아
깨끗하게 훔쳐낸다

따가운 햇살마저 두 손으로 당겨서
흐린 생 트이라고 이제는 맑아지라고
나부시 지운 길들이
반짝이며 부풀고 있다

<신종범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차하]

상처들

살구나무 가지마다 흐드러진 꽃잎들은
겨울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고름 맺힌
피끓는 그리움이다 간지러운 상처다

찢겨진 살점들이 망국의 깃발처럼
시커먼 그림자 남기던 시간들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또한 일어설 차례
깊숙한 상처 위로 돋아나는 꽃잎처럼
내 몸에 싸한 향기의 새살이 돋고 있다

<정상혁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




[이달의 심사평]

성하(盛夏)의 숲처럼 나름의 그늘을 키워가는 작품이 많았다.

그늘 너른 나무는 그 안팎에 들이는 것도 많아 세상을 살만하게 만든다.

나무만한 시가 있겠냐 하지만, 나무보다 오래도록 푸른 시는 분명 존재한다.

이달의 장원에 '등이 보일 때'를 올린다.

일상의 안팎을 읽어내는 속 깊은 관찰에 따스한 시선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등'의 내면을 세 수에 고르게 담아내는 역량은 함께 보낸 작품에서도 확인된 장점이다.

이제 더 깊고 너른 시조로의 도약을 도모했으면 싶다.

차상에 오른 '외줄-유리창 닦기'도 대상의 투시와 내면화가 진중하다.

고층건물의 '유리창 닦기'라는 위험한 일을 '외줄'에 집약시킴으로써 공감을 효과적으로 넓히고 있다.

삶이 점점 외줄타기 같은 이즈음, '흐린 생 트이라고' 부푸는 길이 눈부시다.

차하 '상처들' 역시 체험의 육화가 곡진하다.

상처가 곧 꽃이라는 발상은 낯익은 듯해도 그것의 감각적이고도 절실한 내면화가 호소력을 높인다.

둘째 수의 '망국의 깃발' 같은 과잉이 다른 표현을 입으면 두 수의 밀도가 더 빛날 것 같다.

이 달에는 시적 체험을 밀도 있게 우려낸 작품이 많아 선자를 즐거운 고민에 들게 했다.

진정 크고 깊은 '현대시조'의 앞날이 새롭게 열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양과 질 양면에서 고른 수준을 보여준 응모자들께 거듭 응원을 보내드린다.

어느새 한해의 반을 보냈다.

그러나 아직 반이 남아 있다.

새로운 작품을 낳기에 짧은 시간은 아닐 터이니,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모두 필생의 작품을 향해 나아가시길 빈다.




[중앙 시조 백일장 6월] 장원 권성미씨

"교직 떠나 텅 빈 마음 달래줘"

연시조 '등이 보일 때'로 6월 시조백일장 장원에 오른 권성미(52.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씨는 소감을 묻자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먼저 알려야겠다"고 말했다.

권씨는 지난해 이맘때까지는 중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며 집이 서울로 이사오자 학교가 있는 인천까지 출근이 힘들어 눈물을 머금고 20여년 정들었던 직장을 접었다.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아쉬운 심사를 시조 공부로 달랬다.
지난해 말 중앙문화센터 시조교실 목요일 반에 등록해 문학 친구들도 만나고 공들여 쓴 습작을 내보이기도 했다.

권씨가 장원 수상 소식을 알리겠다고 한 제자들은 1984년 담임을 맡았던 친구들이다. 20년이 지나 중학교 3학년이던 제자들은 30대 중반이 됐지만 학창 시절 추억을 잊지 못하고 인터넷에 '권선생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스승의 날이나 명절에, 가끔가다 부부 동반으로도 만나는 사이들이다 보니 권씨의 수상은 스승.제자들의 즐거운 '회동 건수'임이 분명하다.

권씨는 "그런 인기를 누리시는 비결이 뭐냐"고 재차 묻자 "'틈만 나면'일 정도로 유별나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 게 아마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고 수줍게 답했다.

일주일에 몇 권, 한달에 몇 권 하는 식으로 어림잡을 수는 없지만, 책에서 손을 떼지 않는 권씨의 습관은 비교적 빨리 시조의 가능성을 인정받는 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권씨는 "속마음을 완전히 내보이지 않고 어떤 규율같은 데 가둬둔듯하면서도 보여줄 것은 보여주는 게 시조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권씨는 요즘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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