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 言



                     황 패 강




어언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민족상잔의 끔찍한 전란을 거치고, 서울 시내 모 여자고등학교 국어과 교사로 직을
옮기면서 필자는 학교 문예반의 지도를 담당하고, 문예지 출판을 위한 갖가지 행사
를 주관하면서 문학을 사랑하는 제자들과 동지적 결속을 맺은 듯이 꽤나 친숙하게
지냈다.
문학을 통해 맺어진 정이란 좀처럼 쉽게 식어 없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금도
간간 소식 전하여 오는 옛 제자들이 있다.
"행복이라는 섬"을 노래한 그레이스 홍인숙- 그는 고국을 멀리 떠나 미국땅 샌프란
시스코에서 思鄕의 노래('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詩語로 옮겨 노래불렀다.

      내 생애/ 최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노래//..(중략)..그 땐 몰랐지/
      그것이 눈물 절절 밴/ 내 민족의 구슬픈 가락인 줄은//..(생략)

우리의 자랑스러운 시인 홍인숙은 일찍이 중학교 3학년 때 실시한 교내 백일장에서
시 '窓'으로 중, 고교 전체 장원 입상한 바 있다. 홍 시인은 지금도 부단히 시를 쓴
다.

      어둠 짙은 하늘에/ 편지를 쓴다// 흩뿌려진/ 별들을 모아/ 꼭꼭 눌러 쓴 편지  
      // 마지막 별에 실어/ 먼 나라/ 석양 깃든 강변으로 띄우면// 너는 별을 새기  
      고/ 나는 네 눈빛을 새기고// 어이하려나/ 네가 있어 더욱 깊은/ 이 밤의 쓸  
      쓸함을 ('마지막별 '전문)

홍 시인의 자기성찰은 '裸木의 외침'에서도 냉철하게 전개되고 있다.

     너희는/ 나의 황홀했던 날을 기억하는가/ 나의 그늘 아래 행복했던 날을 기억  
     하는가/ 비워낸 만큼 충만한 나의 가슴을 만질 수 있는가// 보여지는 것에 아  
     름다워 하지 말라/ 보여지는 것에 슬퍼하지도 말라// 나는 다만 때가 되어/ 척  
     박한 대지를 딛고 / 저 깊은 겨울을 향해 묵묵히 서 있을 뿐// 슬기로운 자는  
     들으리/ 내 안에서 소생하는 욕망의 소리를/ 갈 곳 없는 새들을 키우고/ 새 계  
     절 맞이할 숨결을 준비하는/ 모성(母性)의 소리를//

홍 시인은 연로한 양친의 삶을 고요히 관조한다.

     저기 저 바람/ 그리움 가득 안고 오는 바람/ 봄 내내 꽃망울 피우지 못한/ 정  
     원의 그늘진 한숨 뒤로/ 수국 한 다발 소담스레 피워 올리시고/ 하얗게 웃고  
     계신 어머니 ('어머니의 미소' 전문)


     70kg 체중을 받아 안는다/ 85년 세월이 말없이 실려온다// 침묵하는 상념의  
     보따리를 짊어지고/ 한 발자국씩 내딛는 굽은 다리를/ 묵묵히 반겨주는 검은  
     단장// 12월 바람도 햇살 뒤로 숨은 날/ 조심조심 세 발로 새 세상을 향한 날/  
     고집스레 거부하던 단장을 짚고/ "난 이제 멋쟁이 노신사다"/ 헛웃음에 발걸음  
     모아보지만// 늙는다는 건/ 햇살 뒤로 숨은 섣달 바람 같은 것/ 아버지 눈동자  
     에 담겨진/ 쓸쓸한 노을 같은 것  ('아버지의 短杖' 전문)

애착에 대상이기도 한 양친의 노화현상을 대하는 홍 시인의 태도는 부친의 노화현
상의 당위를 수용하던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인은 양친의 노화를 두고 당
황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인 듯이 대응하지 않는다.
홍인숙 시인의 두 번 째 시집 출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아름다운 시세계를 꾸준히
가꾸어 나가기를 바란다.


2004. 5.
< 국문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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