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
2005.08.25 05:59
내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이었어
그녀가 물 담긴 맑은 사각유리병에 나를 세워두지 않았다면
지난 해 여름의 끝 무렵이었지
나는 물 속에 발을 담근 채 주방 창 앞에 올려졌고 매일 창 밖의 풍경과 집안에서 사소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우두커니 보고 있었어 나와 한 몸이던 파인애플 열매는 이미 분리되어 식탁에 올려졌으며 껍질은 냉혹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그녀가 매번 싱싱한 물로 갈아주지 않았다면 나도 악취와 더불어 쓰레기통에 내팽개쳐졌을 거야
심지가 도려진 채 속살 저며지던 그 파인애플이 오래도록 그리웠어 샴 쌍둥이처럼 나와 하나이던. 살아간다는 것은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일이지만 긴 시간 무료하게 견딘 것은 끊을 수 없는 끈 때문이었을 거야 아직도 밑둥에 칼날 스쳐 간 얼얼한 상처의 아픔이 들쑤시는 날에는 창 밖 하염없이 서 있는 레몬나무를 바라봐 언젠가는 나도 땅 속에 발 내밀 수 있을 거라고
부채처럼 잎사귀 흔들며 레몬의 노란 향기를 흡입하던 바람의 지느러미들이 열린 창문으로 다가오기도 했어. 나를 흔들고 싶어했으나 흔들리기엔 선인장 닮은 내 잎사귀들이 너무 견고하고 무거웠지 내 마음을 만지지 못하고 떠난 바람의 노란 향기가 한숨에 시들어 갔어 날카롭게 치켜 뜬 잎 끝이 볼 성 사납게 문드러지고 남루한 옷을 걸친 내 모습이 처량했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어!
그녀는 매번 새로운 물로 갈아주며 그윽이 바라봤어 너는 왜 뿌리가 돋지 않니?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한다는 건 참 슬픈 일이야 그녀의 눈망울이 닿을 때마다 피가 말라가고 뼛속의 신열이 자글자글 타고 있었지 두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그 상념에 잠겨 있었어
내가 필사적으로 그 지겨운 오랜 지루함을 참고 있었을 때, 하루의 반나절쯤 기웃거리던 햇빛이 아프니? 많이 아프니? 물을 때는 내 허리가 팽팽한 활시위처럼 쭉 펴지는데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단내가 났어 그가 가고 나면 내 안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잎맥을 타고 흐르는 그의 수액이 잠자는 내 안의 나를 깨우려나 봐
그때였어 온 세상이 화장한 여자처럼 환해지던 봄날, 드디어 내 몸에도 변화가 왔어 눈물 속의 끈 같은 가느다란 실 뿌리가 상처 입은 내 발바닥에서 흘러 나왔던 거야 잎눈의 아가들도 몸 깊은 곳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더군 여린 연두색으로 말야 내 온 몸의 핏줄들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를 들었어
아아, 그녀가 서늘하도록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조심스레 보고 있었어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이었어
그녀가 물 담긴 맑은 사각유리병에 나를 세워두지 않았다면
지난 해 여름의 끝 무렵이었지
나는 물 속에 발을 담근 채 주방 창 앞에 올려졌고 매일 창 밖의 풍경과 집안에서 사소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우두커니 보고 있었어 나와 한 몸이던 파인애플 열매는 이미 분리되어 식탁에 올려졌으며 껍질은 냉혹하게 쓰레기통에 버려졌어 그녀가 매번 싱싱한 물로 갈아주지 않았다면 나도 악취와 더불어 쓰레기통에 내팽개쳐졌을 거야
심지가 도려진 채 속살 저며지던 그 파인애플이 오래도록 그리웠어 샴 쌍둥이처럼 나와 하나이던. 살아간다는 것은 떠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일이지만 긴 시간 무료하게 견딘 것은 끊을 수 없는 끈 때문이었을 거야 아직도 밑둥에 칼날 스쳐 간 얼얼한 상처의 아픔이 들쑤시는 날에는 창 밖 하염없이 서 있는 레몬나무를 바라봐 언젠가는 나도 땅 속에 발 내밀 수 있을 거라고
부채처럼 잎사귀 흔들며 레몬의 노란 향기를 흡입하던 바람의 지느러미들이 열린 창문으로 다가오기도 했어. 나를 흔들고 싶어했으나 흔들리기엔 선인장 닮은 내 잎사귀들이 너무 견고하고 무거웠지 내 마음을 만지지 못하고 떠난 바람의 노란 향기가 한숨에 시들어 갔어 날카롭게 치켜 뜬 잎 끝이 볼 성 사납게 문드러지고 남루한 옷을 걸친 내 모습이 처량했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어!
그녀는 매번 새로운 물로 갈아주며 그윽이 바라봤어 너는 왜 뿌리가 돋지 않니?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한다는 건 참 슬픈 일이야 그녀의 눈망울이 닿을 때마다 피가 말라가고 뼛속의 신열이 자글자글 타고 있었지 두 계절이 바뀌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그 상념에 잠겨 있었어
내가 필사적으로 그 지겨운 오랜 지루함을 참고 있었을 때, 하루의 반나절쯤 기웃거리던 햇빛이 아프니? 많이 아프니? 물을 때는 내 허리가 팽팽한 활시위처럼 쭉 펴지는데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단내가 났어 그가 가고 나면 내 안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잎맥을 타고 흐르는 그의 수액이 잠자는 내 안의 나를 깨우려나 봐
그때였어 온 세상이 화장한 여자처럼 환해지던 봄날, 드디어 내 몸에도 변화가 왔어 눈물 속의 끈 같은 가느다란 실 뿌리가 상처 입은 내 발바닥에서 흘러 나왔던 거야 잎눈의 아가들도 몸 깊은 곳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더군 여린 연두색으로 말야 내 온 몸의 핏줄들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를 들었어
아아, 그녀가 서늘하도록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조심스레 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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