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밤이 깊어질수록 /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오래 전에 작고하신 이산(怡山) 김광섭 시인은 그의 대표작인 <저녁에>라는 시에서 사람들 삶에 있어서의 그 인연에 대해 이렇게 노래 하셨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님이 쓴 시의 이 마지막 소절의 싯귀는 워낙이 유명한 말이 되어 시공을 초월해 세상을 넘나들었고, 그래서 화가 김환기 님은 이 글귀를 화제(畵題)로 하여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김화백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와 고달픈 이민생활의 어쩔 수 없는 고독 속에서 그리운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그 그리움을 점(點)으로 형상화 시킴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분으로 우리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절집에서 흔히 얘기하는 <소매 깃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와 길에서 눈길을 마주친다든가 혹은 슬쩍 지나치면서 소매 깃을 스치는 사소한 것들도 불가(佛家)에서는 칠겁(七怯)을 거슬러 올라간 <인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겁은 바위산에 올라 승무를 추어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 합니다)

  이는 부처님이 6년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처음 깨달았다는 <연기(緣起) 이론>이며 바로 불교의 근본 사상이라고도 합니다. 즉 “ 말미암아서(縁) 일어난다 (起) “는 이 이론은 우주만상 모두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時空)에 관계없이 일체가 상관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뜻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 존재는, 굳이 생각을 모우지 않더라도 탯줄을 끊고 나와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고 짝 맞추어 아이들 만들고 즐기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분노하고 등등…. 죽을 때까지 세속을 벗어나지 못한 채 온갖 형태의 인연으로 주변과 맺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는 선하고 아름답게, 때로는 악하고 추하게 우리들 주변을 물들이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김 시인의 노래나 김 화백의 그림에서 우리가 가슴 저리게 감동을 얻는 것은 그 소재가 <아름다운 인연>들이 근본이 되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에 그 시나 그림이 사람들 간의 악연들로 비롯되었다면 그 작품들은 결코 후대들에게 감동을 주기보다는 증오를 일깨워주었을 것입니다.

  식상한 얘깁니다만, 근간 가히 아수라장을 방불케하는 명색 한 나라의 지도자를 꿈꾸는 본국 정치꾼들의 이전투구 양상을 바라보거나, 또는 온 세상에 널려있는 그런 그늘에 기생하며 못된 거짓말과 세상에 대한 기만으로 오히려 주(主)보다 한술 더 뜨는 사이비 펌프질 쟁이(客)들의 얘기를 접하노라면, 아무래도 순수해서 맨날 당하기만 하는 사람들과 그들 간에는 <아름다운 인연>보다는 <악연>으로 맺어진 비중이 더 높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또 모를 일입니다. 모두가 무리지어 그렇게 살아가는 <너>와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매일처럼 자고 일어나는 일상의 삶속에서 방황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가 싶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12년의 지구촌을 달굴 올림픽이 런던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올림픽의 슬로간이 평화와 화합이라면, 그래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 불우 이웃들이 푸른 꿈을 펼치며 <아름다운 인연>이 맺어지고, 그리고 그 결실이 우리들과 함께 승화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으로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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