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에서 다우니*로(퇴고)

2009.08.11 02:38

윤석훈 조회 수:54

1

점심시간 석촌호수 옆길 걸으며
바다 건너를 꿈꾸다
늦게라도 들어오는 날이면
대기실 통과하기가 왜 그리 미안하던지

궁리 가득한 흰 가운을
참고 기다려주는 환자들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을 보려했고
입을 보기 전에 인문학을 보려했던
젊음이 가고 있었다

2

십년 동안의 하얀 가운이
스물여덟평 공간에 고여있기에는
너무도 짧을 것 같아 뒤척였던 수많은 밤들

그 사이로 빼곡이 자라던 안락의자
들풀들 풍성했으나 새로운 모자는 늘 출렁거렸다

3

어렵게 밟았던 1997년의 엘 에이 국제공항
렌트카 밖 코리아 타운 하늘은
발렌타인의 붉은 심장으로
세 식구를 맞아주고 있었다

4

USC 제퍼슨가에서 맞춘
하얀 가운 입고
귀국의 청사진을 찍어보던 시절

또 다른 꿈의 구름을 밟으며
미국에서 살기로 결정하던 날,

열한 살 된 아들 생각하면서

그래 바꿀 때는 바꿀 줄도 알아야겠지
녹슨 고철로 바꾸어 먹던 울릉도 호박엿이
목에 걸려 잠도 오지 않았다

5

점심시간 다우니 공원
호수가 벤치에 앉아
소리 다른 붓으로 이국생활 그려보면서

어쩌면,
처음의 사진과는 한사코 다른
호수에 비친 머리 하얀 중년의 사내를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 southern california 에 있는 작은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