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이 흘린 눈물
2008.07.13 12:45
새터민이 흘린 눈물
목숨을 걸고 얼어붙은 북녘 땅을 벗어나 따뜻한 자유를 찾아 남쪽을 찾아온 동포들을 언제부터인가 “새터민”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 같은 단군 할아버지 피를 받은 한 민족이건만 반세기 넘게 가시철망으로 막힌 남녘과 북녘은 어느 듯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목숨을 걸고 찾은 자유는 보람을 만끽할 수가 없단다.
온갖 쓰레기 같은 외래어(?)라는 괴상한 생활용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이방인(異邦人)보다 더 못한 취급을 한다고 하니 차라리 외국인들한테 인종차별을 받는 것이 덜 서럽겠다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비록 폐쇄된 사회에서 자유를 잃고 살았지만 우리말에 대한 정체(正體)와 긍지는 잃지 않는 생활을 하였었다.
광복 후 북녘 땅에서는 일제 잔재 청산에 적극적이었으나 남녘 땅에서는 친일파들이 득세를 하여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잔재 보존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생활용어에 있어서 남녘과 북녘 사이는 엄청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북녘은 나름대로 일제 잔재를 청산하면서 새로운 생활 용어를 많이 만들어 냈고 동시에 반세기 이상 외국 문물과 단절하다시피 했던 관계로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말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외래어(?)”라는 용어 자체를 외국어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우리말로 번역하여 생활용어로 보급하여 오고 있는 실정이다.
쉬운 예로, 축구경기에 있어 “코너킥”이라는 경기용어를 “모서리 차기”라는 우리말로 번역하여 일상생활 용어로 사용하였으니 언뜻 “코너킥”이라는 용어를 못 알아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은 수 없다.
그들 시각으로 볼 때 “코너킥”이라고 하는 우리가, 정체(正體) 잃은 다른 민족으로 비쳐질 것이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이지 민족정체(民族正體)를 잃은 우리가 도리어 그들을 괄시하고 다른 민족 취급을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남녘땅은 어떠했던가?
친일 학파 이희승과 최현배 일당이 활보하면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제 때 쓰던 말들을 그대로 사용토록 하여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잠바”, “가방”같은 일본말이 우리말인줄 알고 있으며,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서양말들을 거름장치 없이 마구잡이로 받아들여 모두 우리말이라고 하고 있으니 오늘날에 와서는 나랏말이 일본말인지 서양말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나 자신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실정이니 북녘에서 온 새터민들이야 더할 나위 없이 못 알아들을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말을 빌려 쓰면서 그것을 자기네 말이라고 한단 말인가?
그것은 노예근성(奴隸根性)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사고방식이다.
노예근성(奴隸根性)이 없다면 “잠바”, “가방”과 같은 일본말이나 “코너킥”같은 서양말을 우리말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땅에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노예근성(奴隸根性)이 굳게 뿌리박고 있다.
언어는 그 민족 얼이요 혼(魂)이다.
외국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여 우리말이라고 하는 얼빠지고 혼(魂)이 없는 허수아비들만 살고 있는 땅이다.
얼빠지고 혼(魂)이 나간 인간들이 민족혼(民族魂)과 얼을 지닌 겨레들을 괄시하고 냉대하고 있는 꼬락서니다.
우리가 비록 경제적으로는 북녘보다 발전되어 있지만 적어도 민족혼(民族魂)이라할 수 있는 나랏말에 대해서는 그들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
앞으로 북녘도 미국과 수교를 맺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처럼 마구잡이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외래어(?)라는 용어를 외국어라고 정의하고 있는 거름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이상 우리처럼 서양말을 무작정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거름 장치가 없기 때문에 잡탕 언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래 전에 중국 조선족 동포로부터 온 편지에서는 “외래어로 뒤범벅이 된 나랏말을 가지고 한국어 능력시험이라는 사기극을 벌려 우리말을 지켜온 동포들 눈에서 눈물이 나도록 하지 말라!”는 질타가 있었다.
민족반역자 친일 수구 학자들과 그들 주구(走狗) 국립 국어원은 더 이상 백성들을 기만하지 말고 나랏말을 바로 세우고 민족혼(民族魂)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진력(盡力)하여 동포들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기 바란다.
한글 연구회
최 성철
목숨을 걸고 얼어붙은 북녘 땅을 벗어나 따뜻한 자유를 찾아 남쪽을 찾아온 동포들을 언제부터인가 “새터민”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 같은 단군 할아버지 피를 받은 한 민족이건만 반세기 넘게 가시철망으로 막힌 남녘과 북녘은 어느 듯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목숨을 걸고 찾은 자유는 보람을 만끽할 수가 없단다.
온갖 쓰레기 같은 외래어(?)라는 괴상한 생활용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이방인(異邦人)보다 더 못한 취급을 한다고 하니 차라리 외국인들한테 인종차별을 받는 것이 덜 서럽겠다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비록 폐쇄된 사회에서 자유를 잃고 살았지만 우리말에 대한 정체(正體)와 긍지는 잃지 않는 생활을 하였었다.
광복 후 북녘 땅에서는 일제 잔재 청산에 적극적이었으나 남녘 땅에서는 친일파들이 득세를 하여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잔재 보존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생활용어에 있어서 남녘과 북녘 사이는 엄청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다.
북녘은 나름대로 일제 잔재를 청산하면서 새로운 생활 용어를 많이 만들어 냈고 동시에 반세기 이상 외국 문물과 단절하다시피 했던 관계로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말은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외래어(?)”라는 용어 자체를 외국어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우리말로 번역하여 생활용어로 보급하여 오고 있는 실정이다.
쉬운 예로, 축구경기에 있어 “코너킥”이라는 경기용어를 “모서리 차기”라는 우리말로 번역하여 일상생활 용어로 사용하였으니 언뜻 “코너킥”이라는 용어를 못 알아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은 수 없다.
그들 시각으로 볼 때 “코너킥”이라고 하는 우리가, 정체(正體) 잃은 다른 민족으로 비쳐질 것이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이지 민족정체(民族正體)를 잃은 우리가 도리어 그들을 괄시하고 다른 민족 취급을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남녘땅은 어떠했던가?
친일 학파 이희승과 최현배 일당이 활보하면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일제 때 쓰던 말들을 그대로 사용토록 하여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잠바”, “가방”같은 일본말이 우리말인줄 알고 있으며,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새로운 서양말들을 거름장치 없이 마구잡이로 받아들여 모두 우리말이라고 하고 있으니 오늘날에 와서는 나랏말이 일본말인지 서양말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나 자신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실정이니 북녘에서 온 새터민들이야 더할 나위 없이 못 알아들을 것이다.
세상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말을 빌려 쓰면서 그것을 자기네 말이라고 한단 말인가?
그것은 노예근성(奴隸根性)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사고방식이다.
노예근성(奴隸根性)이 없다면 “잠바”, “가방”과 같은 일본말이나 “코너킥”같은 서양말을 우리말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땅에는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노예근성(奴隸根性)이 굳게 뿌리박고 있다.
언어는 그 민족 얼이요 혼(魂)이다.
외국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여 우리말이라고 하는 얼빠지고 혼(魂)이 없는 허수아비들만 살고 있는 땅이다.
얼빠지고 혼(魂)이 나간 인간들이 민족혼(民族魂)과 얼을 지닌 겨레들을 괄시하고 냉대하고 있는 꼬락서니다.
우리가 비록 경제적으로는 북녘보다 발전되어 있지만 적어도 민족혼(民族魂)이라할 수 있는 나랏말에 대해서는 그들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한다.
앞으로 북녘도 미국과 수교를 맺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게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처럼 마구잡이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외래어(?)라는 용어를 외국어라고 정의하고 있는 거름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이상 우리처럼 서양말을 무작정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거름 장치가 없기 때문에 잡탕 언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래 전에 중국 조선족 동포로부터 온 편지에서는 “외래어로 뒤범벅이 된 나랏말을 가지고 한국어 능력시험이라는 사기극을 벌려 우리말을 지켜온 동포들 눈에서 눈물이 나도록 하지 말라!”는 질타가 있었다.
민족반역자 친일 수구 학자들과 그들 주구(走狗) 국립 국어원은 더 이상 백성들을 기만하지 말고 나랏말을 바로 세우고 민족혼(民族魂)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진력(盡力)하여 동포들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기 바란다.
한글 연구회
최 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