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희 시인의 3월의 서신
2018.03.02 03:45
그 밤 한시 반 히말리야 깊은 산 속 2시를 기다리며 가장 고운 향기를 풀어내려는 그 꽃이 2시를 기다리는 30분 전, 저는 잠을 깨고 일어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가 펜을 들고 시를 생각했어요. 한 닷새를 감기에 시달린 나의 개으른 좌판 기는 그러나 내 오랜 시인의 명령?(ㅎㅎ)에 의해 점잔을 빼기로 했지요. 슬프다, 슬슬하다, 를 발음하지 않고 시의 선생답게 거기 걸 맞는 대상물 하나 언 듯 내밀더군요, 낙엽... 그래요 낙엽이었어요. 그러나 낙엽을 시에 도입할 때 오는 평이함과 난처스러움 너무나 뻔한 낙엽의... 그 숫한 말, 말들, 형용사와 부사 복함감성어들 그리고 명사와 그것들을 따라오는 은유와 상징성, 어쩌면 또 익숙함에서 오는 퇴행적 다다이즘 그런 것까지 ... 나의 직감은 맞았어요. 나의 좌판 기는 재빠르게 시의 전이를 시도하여 저의 꾸중을 피하려 하드군요. 지금 나는 시의 건강한 보편성을 말하고 싶은 거에요.
<어디서 들려오는
낙엽이듯 뒤척이는 소리에
잠이 깨어 살펴보니
그것은
시든 날개가
반 쯤 꺾어진 새의 신음소리였네//>
저는 이 졸시 전체를 나누진 않겠어요.
종연 두 연은
<그러나 당연한 듯, 비 한차례 주.루.루. 내리는 밤
낙엽은 곧 흙으로 뿌리를 내리리
낙엽은 또 푸른 잎이 되어 하늘을 안고
열매하나 키울 것이리 (‘그 시인은 왜 낙엽이 운다고 했지?‘ 곽상희 작
지난 달 제 편지에 대해 몇 분은 제 편지를 접한 후 감동 받은 느낌으로 시를 고쳐 써보았다는 그런 기쁜 소식을 전해 온 사람도 있었지요. 조금만 써려다 이렇게 좀 길어졌네요. 제가 종래에 써오던 곽상희 서신을 바꾸어 오직 여러분과 나누려는 시도도 우린 시 앞에서 정직정확하고 진실해야함을 (물론 시인은 그가 쓰는 자신이 없는언어를 위해 ‘구걸’ 아니면 사전을 옆에 두고...), 그리고 편안하게 저의 가슴을 토하고 풀어내고 내가 사랑하는 여러분과 함께...뭐, 그런 것...., 그래서 오늘 감기가 거이 가버린 나의 몸속을 비운 졸시 하나....
쓸쓸함,
새벽한시 반의
쓸쓸함에 기대어 시를 쓴다고
그가 말한다
그 시에 기대어 시인의 가슴에는
봄이 온다고
겨울이 시베리아 극동에 혹독한
쓸쓸함에 기대어
변하지 않는 따뜻한 계절이 되는
어떤 곳에선 꽃 씨알이 트고
자구의 위도 어디쯤에선 진짜 봄 같은 봄꽃이 피었다가
어느 듯 시들어가고 있다고
그러니 쓸쓸함이 기쁨이 되어
유충 한 마리도 당당하게 나비의 길을 간다고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신발코밑에서
황토 빛 엷은 먼지를 두르고 꿈틀 꿈틀 기어가는
그의 고요한 움직임
그것이 아이의 울음이
그에겐 천둥치는 시끄러움이 될지라도
쓸쓸함 하나 거룩함과 겸손이 되면
기쁨이 되고
거룩과 겸손이 다닥치는 생명의 길임을
땅벌레는 말했다
새벽 한시 반의 쓸쓸함이 연청빛 향기로
천지를 진동하고 있었다. (‘쓸쓸함, 굼벵이가 말한다’ 곽상희)
오늘 아침 먼 주에서 제게 온 댓글에서는 사람이 걸어온 발자취는 보이지 않는다 했지만 그러나 보이지 않고 만질 수는 없어도 누군가의 가슴에 새겨져 그 어떤 반향을 일으키고 흔적을 남기겠지요.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지요. 시인이 그의 시가 사적 감성과 생각에서 출발한다 해도 보편성을 띄게 되면 자연적으로 조용한 예은적 언조를 띈다는 사실.... 여기서도 끝까지 그림을 그리듯 시를 쓰라고.... 그러나 빅터 프랭클 (나치수용에서 살아남은 독일 정신과 의사)은 ‘나는 단어의 조합도 나치 수용소 내부에 존재했던 것 (살아있는 것과는 다른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조사할 정도로 끔찍한 그림을 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 말했지요. 인생이 극으로 갔을 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 인간은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가지요.
그런 영역 안에서 사는 사람이 시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듀.....누군가 4월 첫날주일 부활주일을 위해 이번 3월 모임도 네 번째 토요일이 어떤가는 귀 뜸이 왔어요. 전 또 편지를 보낼 거에요.
‘sanctify them by the truth; your word is truth' john 18:17'
곽상희
2018년.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