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는 날/김양순
2012.03.08 05:47
한복 입는 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 김양순
“와! 우리 엄마 예쁘다!”
모처럼 한복을 입은 나에게 선사하는 딸아이의 칭찬이 기쁘다. 은은한 분홍색 저고리 덕에, 거울에 비친 내 얼굴빛이 제법 화사해 보인다. 오후에 우리교회 ‘권사회 헌신예배’가 있는 날이라서 오랜만에 입은 한복, 교회 행사 아니면 내 한복은 바깥바람을 쐴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활동적인 옷을 좋아하는 나는 설날에도 세배할 때 잠깐 한복을 입고는 곧바로 벗어버리기 때문이다.
요즘 한복은 고급 원단에 빛깔이며 무늬가 참으로 곱다. 그리고 풍성한 치마폭은 아주 넉넉하면서도 멋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지만 한복을 입으려면 우아한 한복 분위기에 맞추어 머리 모양도 손질해야하고, 한 번 입은 한복은 곧 세탁소에 맡겨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입을 때마다 비용이 든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활동하기 불편하고 비용이 드는 까닭에 요즘 여자들은 한복입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 같다. 한복 입은 여자를 거리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걸 보면······.
텔레비전 사극을 보면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 옷은 모두 한복이었다. 신분에 따라 옷감이나 색깔이 다르긴 했어도 옷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자들은 누구나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고 남자들도 한복차림으로 농사일을 비롯한 모든 작업을 하면서 살았다. 역사 사료에 따르면 1919년 삼일운동 때 수많은 사람들이 흰색 한복차림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벌였고, 이화학당 학생이던 유관순 열사 역시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의 사진이 있다. 이것을 보면 옛날 보통 사람들이 입었던 한복은 참으로 소박한 옷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50년대에 태어난 나 역시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통치마에 옅은 색 저고리를 입고 유년기를 보냈다. 여덟 살 되던 해 설빔으로 입었던 분홍색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입으라고 어머니께서 큰맘 먹고 지어주신 비단 옷이었는데,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간 적은 몇 번 없었다. 남의 눈에 유난히 띄는 것이 부끄러웠고, 옷이 더럽혀질까봐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한복 입을 일이 거의 없다. 실용적인 옷감으로 만든 활동적이고 멋스런 옷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좀 더 시원한 옷으로, 겨울에는 보온 기능이 뛰어난 옷을 입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사계절 내내 수수한 한복을 입었던 옛날 아이들에 비해 훨씬 호강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편하고 멋있어 보이는 옷만 즐겨 입다 보니 한복은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예복으로 취급되는 요즘 한복, 큰 맘 먹고 장만한 고급 비단 한복을 한두 번 입고는 잘 안 입는다. 아마도 집집마다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는 한복이 몇 벌씩은 있을 텐데, 이렇게 한복을 멀리하다 보면 머지않아 박물관에서나 한복을 보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활 한복이 나오기는 해도 이것 또한 즐겨 입는 사람들이 적어서 생활한복을 입은 사람 역시 밖에서 만나보기란 쉽지 않다.
우리 조상들이 수 천 년 동안 입었던 옷 한복, 배달겨레의 얼이 서려있는 한복을 즐겨 입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요즘 한복의 화사한 색감을 살리면서도 값싸고 실용적인 한복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은 온 국민이 ‘한복 입는 날’을 지킨다면 어떨까? 그날은 생활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제기차기, 자치기 등을 하며 뛰어놀고, 어른들 역시 집에서나 밖에서 한복을 입는다면 우리 옷, 한복이 웬만큼은 제자리를 찾게 될 게 아닌가? 생활한복 차림의 공무원, 시장 상인, 택시 기사 등등이란 한복 차림의 사람들로 거리를 메우는 날, 우리는 배달민족의 겨레 의식을 서로에게서 진하게 느낄 것이며, 대한민국은 한복 덕분에 한층 더 단결된 이미지를 갖게 되지 않을까?
현재 지구촌에 사는 수십 억 인구가 입는 옷은 점점 평준화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도 우리들 여름철 옷과 비슷한 복장을 하는 부족들이 점점 늘어가고, 북극권에 사는 사람들 옷차림 역시 우리의 겨울철 복장과 비슷한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이럴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한복을 통하여 실현시키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사람 몸을 옥죄지 않는 너그러운 옷, 한복의 장점을 살려 멋지고 실용적인 옷으로 개발한다면 우리도 즐겨 입고 지구촌 곳곳으로 우리의 옷, 한복을 퍼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한참 번지고 있는 한류 열풍과 한복 열풍을 함께 불게 한다면 참 좋을 텐데······. 상상하다 보니 내가 탄 택시는 어느 새 우리 교회에 도착했다. 발에 자꾸만 걸릴 것 같은 치맛자락을 붙잡고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곱게 차려 입은 권사님들 한복이 진달래, 개나리, 장미, 해바라기, 코스모스, 구절초 등등 꽃밭을 이루고 있어서 중년 나이의 권사들은 물론 연세가 많으신 권사님들까지 활짝 웃는 꽃처럼 보였다. 모처럼 장롱 밖으로 나온 백여 벌의 가지각색 한복 덕에 화사한 축제 분위기가 된 ‘권사회 헌신예배’, 그 자리에 있던 수 백 명의 성도들에게 웃음꽃을 선사하는 날이었다.
(2012년 3월 8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 김양순
“와! 우리 엄마 예쁘다!”
모처럼 한복을 입은 나에게 선사하는 딸아이의 칭찬이 기쁘다. 은은한 분홍색 저고리 덕에, 거울에 비친 내 얼굴빛이 제법 화사해 보인다. 오후에 우리교회 ‘권사회 헌신예배’가 있는 날이라서 오랜만에 입은 한복, 교회 행사 아니면 내 한복은 바깥바람을 쐴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활동적인 옷을 좋아하는 나는 설날에도 세배할 때 잠깐 한복을 입고는 곧바로 벗어버리기 때문이다.
요즘 한복은 고급 원단에 빛깔이며 무늬가 참으로 곱다. 그리고 풍성한 치마폭은 아주 넉넉하면서도 멋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렇지만 한복을 입으려면 우아한 한복 분위기에 맞추어 머리 모양도 손질해야하고, 한 번 입은 한복은 곧 세탁소에 맡겨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입을 때마다 비용이 든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활동하기 불편하고 비용이 드는 까닭에 요즘 여자들은 한복입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 같다. 한복 입은 여자를 거리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걸 보면······.
텔레비전 사극을 보면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 옷은 모두 한복이었다. 신분에 따라 옷감이나 색깔이 다르긴 했어도 옷 모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자들은 누구나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고 남자들도 한복차림으로 농사일을 비롯한 모든 작업을 하면서 살았다. 역사 사료에 따르면 1919년 삼일운동 때 수많은 사람들이 흰색 한복차림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벌였고, 이화학당 학생이던 유관순 열사 역시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의 사진이 있다. 이것을 보면 옛날 보통 사람들이 입었던 한복은 참으로 소박한 옷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1950년대에 태어난 나 역시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통치마에 옅은 색 저고리를 입고 유년기를 보냈다. 여덟 살 되던 해 설빔으로 입었던 분홍색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입으라고 어머니께서 큰맘 먹고 지어주신 비단 옷이었는데,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간 적은 몇 번 없었다. 남의 눈에 유난히 띄는 것이 부끄러웠고, 옷이 더럽혀질까봐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한복 입을 일이 거의 없다. 실용적인 옷감으로 만든 활동적이고 멋스런 옷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좀 더 시원한 옷으로, 겨울에는 보온 기능이 뛰어난 옷을 입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은, 사계절 내내 수수한 한복을 입었던 옛날 아이들에 비해 훨씬 호강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편하고 멋있어 보이는 옷만 즐겨 입다 보니 한복은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예복으로 취급되는 요즘 한복, 큰 맘 먹고 장만한 고급 비단 한복을 한두 번 입고는 잘 안 입는다. 아마도 집집마다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는 한복이 몇 벌씩은 있을 텐데, 이렇게 한복을 멀리하다 보면 머지않아 박물관에서나 한복을 보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활 한복이 나오기는 해도 이것 또한 즐겨 입는 사람들이 적어서 생활한복을 입은 사람 역시 밖에서 만나보기란 쉽지 않다.
우리 조상들이 수 천 년 동안 입었던 옷 한복, 배달겨레의 얼이 서려있는 한복을 즐겨 입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요즘 한복의 화사한 색감을 살리면서도 값싸고 실용적인 한복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은 온 국민이 ‘한복 입는 날’을 지킨다면 어떨까? 그날은 생활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제기차기, 자치기 등을 하며 뛰어놀고, 어른들 역시 집에서나 밖에서 한복을 입는다면 우리 옷, 한복이 웬만큼은 제자리를 찾게 될 게 아닌가? 생활한복 차림의 공무원, 시장 상인, 택시 기사 등등이란 한복 차림의 사람들로 거리를 메우는 날, 우리는 배달민족의 겨레 의식을 서로에게서 진하게 느낄 것이며, 대한민국은 한복 덕분에 한층 더 단결된 이미지를 갖게 되지 않을까?
현재 지구촌에 사는 수십 억 인구가 입는 옷은 점점 평준화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도 우리들 여름철 옷과 비슷한 복장을 하는 부족들이 점점 늘어가고, 북극권에 사는 사람들 옷차림 역시 우리의 겨울철 복장과 비슷한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이럴 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한복을 통하여 실현시키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사람 몸을 옥죄지 않는 너그러운 옷, 한복의 장점을 살려 멋지고 실용적인 옷으로 개발한다면 우리도 즐겨 입고 지구촌 곳곳으로 우리의 옷, 한복을 퍼뜨릴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한참 번지고 있는 한류 열풍과 한복 열풍을 함께 불게 한다면 참 좋을 텐데······. 상상하다 보니 내가 탄 택시는 어느 새 우리 교회에 도착했다. 발에 자꾸만 걸릴 것 같은 치맛자락을 붙잡고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곱게 차려 입은 권사님들 한복이 진달래, 개나리, 장미, 해바라기, 코스모스, 구절초 등등 꽃밭을 이루고 있어서 중년 나이의 권사들은 물론 연세가 많으신 권사님들까지 활짝 웃는 꽃처럼 보였다. 모처럼 장롱 밖으로 나온 백여 벌의 가지각색 한복 덕에 화사한 축제 분위기가 된 ‘권사회 헌신예배’, 그 자리에 있던 수 백 명의 성도들에게 웃음꽃을 선사하는 날이었다.
(2012년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