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철학(哲學)/정용진 시인/코리아 모니터3/26/10
2011.11.0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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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眼)의 哲學(철학)
저자: 정용진 조회: 773 발행 일자: 03.26.2010 카테고리: Literature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생명의 거울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美(미)와 醜(추)를 만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였을 때 그것을 사랑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선인들도 ‘美는 사랑을 낳는 간판이다’라고 說破(설파)하였다. 眉目(미목)이 수려한 인물을 만났을 때 가슴이 뛰고, 안목이 높은 인품을 접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눈을 통해서 아름다운 美와 고귀한 德(덕)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만나는데 큰 의의가 있다. 너와 내가 만나 친구가 되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애정 관계 속에 後裔(후예)가 탄생한다.
일찍이 마틴 부버는 만남의 철학을 통하여 ‘너는 내길 위에 있고 나는 네 길 위에 있다.’고 인간의 連繫性(연계성)을 강조했다. 세상의 사물을 있는 모습대로 바라보는 것이 眼目(안목)이요, 무의식 속에서 불성실하게 바라보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盲目(맹목)이다. 그리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을 꿰뚫어보는 天眼(천안)이 있다. 그러나 사물의 외모는 물론 그 깊이까지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직관과 사유를 통하여 명철하게 파악하는 지혜의 눈이 慧眼(혜안)이다. 인물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耳目口鼻(이목구비)가 훤칠하다고 한다. 귀와 눈과 입과 코가 자리할 곳에 제대로 잘 앉았다는 뜻이다.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양심에 입각해서 말할 수 있는 입, 싱그러운 것과 썩은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코를 지녔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세상 사물을 바르고 정확하게 보기 위하여 創造主(창조주)는 두개의 눈을 주었고,귀에 거슬리는 참 말씀이 듣기에는 싫으나 몸에는 이로우니 듣고 또 들으라고 두개의 귀를 부여하였으며, 많은 것을 보고 들을지라도 그것을 직선적으로 바로 내쏟지 말고 자기 가슴의 깊은 鎔鑛爐(용광로)에 溶解(용해)시키고 걸러서 삶의 德이 되는 말 만을 내놓으라는 意味深長한 뜻으로 입은 하나만을 부여하였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선인들은 ‘일신천금이면 일월이 구백 냥’ 이라고 인간 몸값의 대부분을 눈에 割愛(할애)하였다. 눈을 감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이나 美라도 볼 수 없고, 관심이 있는 곳에는 눈길을 돌리며, 갖고 싶은 것엔 눈독을 들이고, 거슬리는 미운 자에겐 눈총을 보낸다.반가운 사람을 만나거나 떠나 보낼 때엔 눈시울을 적시고,눈으로 아름다움을 보아서 가슴과 머리로 느끼게 되는 것이 人之常情(인지상정)이다.
인생을 길고 원대하게 보는 炯眼(형안)이 있는 반면, 사리에 눈앞을 분별 못하는 盲目(맹목)이 있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目不識丁(목불식정)이 있는가 하면.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目不忍見(목불인견)의 醜態(추태)도 수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겉볼안’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외모를 유심히 바라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슴에 지니고 어떠한 모습으로 그 인생의 행로를 걸어 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식견을 가지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찾고 일생을 약속 하기도 한다.먼데서 일어나는 일을 직감적으로 攄得(터득)하는 능력의 千里眼(천리안)이 있는 백성이라야 지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民族에게는 오늘을 바로 보는 眼目이 있어야 하고, 人類에게는 세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卓見(탁견)이 있어야 하고, 歷史(역사) 앞에서는 未來(미래)를 긍정적으로 조망하는 識見(식견)이 있어야 한다.
<성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라고 가르치고 있고, ‘시서 만권의 책 속에는, 聖賢(성현)들의 깊은 마음이 서려 있다’(日月兩輪일월양륜 天地眼천지안 詩書萬券시서만권 聖賢心성현심)고 천리를 권면 하였다. 성현들이 남긴 유업 중에서 우리는 책을 빼놓을 수 없다. 글은 곧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성과 지혜를 다해서 조각해 놓은 책 앞에 서면 마음이 崇嚴(숭엄)해 지고, 놀기만 하던 학생들이 도서관에 들러 독서에 열중하는 동료들을 만나면 충격을 받고 게으름을 자책하게 된다. 소리를 내어 읽는 音讀(음독),눈으로 조용히 대화하듯 읽는 目讀(목독),깊이를 생각하면서 읽는 熟讀(숙독)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삶의 깊이를 배우게 된다. 讀書三昧境(독서삼매경)의 높은 경지, 晝耕夜讀(주경야독)의 근면한 삶의 태도, 雪案螢窓(설안형창)의 부단한 인격 수련은 自我開發(자아개발)의 아름다운 龜鑑(귀감)이다. 저마다 聰明(총명)한 눈으로 세상을 밝고 正義롭게 보며 眞理를 洞察(통찰)하는 能力을 지니자.이것은 未來를 바로 眺望(조망)하는 試金石(시금석)이요,偉大한 歷史를 創造하는 原動力(원동력)이다.
분명히 눈은 神이 人間에게 賦與(부여)한 眞理와 良心의 빛나는 두개의 별이다.
정용진(鄭用眞) 의 약력 39. 경기 여주출생(아호 秀峯) 1971 년 도미 미주한국문인협회협 이사장. 회장 역임. 한국 크리스챤 시인협회. 민족문학 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행문회. Pen USA.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 VIP회원.
눈(眼)의 哲學(철학)
저자: 정용진 조회: 773 발행 일자: 03.26.2010 카테고리: Literature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생명의 거울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美(미)와 醜(추)를 만나고 아름다움을 발견하였을 때 그것을 사랑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선인들도 ‘美는 사랑을 낳는 간판이다’라고 說破(설파)하였다. 眉目(미목)이 수려한 인물을 만났을 때 가슴이 뛰고, 안목이 높은 인품을 접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눈을 통해서 아름다운 美와 고귀한 德(덕)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만나는데 큰 의의가 있다. 너와 내가 만나 친구가 되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애정 관계 속에 後裔(후예)가 탄생한다.
일찍이 마틴 부버는 만남의 철학을 통하여 ‘너는 내길 위에 있고 나는 네 길 위에 있다.’고 인간의 連繫性(연계성)을 강조했다. 세상의 사물을 있는 모습대로 바라보는 것이 眼目(안목)이요, 무의식 속에서 불성실하게 바라보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盲目(맹목)이다. 그리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을 꿰뚫어보는 天眼(천안)이 있다. 그러나 사물의 외모는 물론 그 깊이까지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직관과 사유를 통하여 명철하게 파악하는 지혜의 눈이 慧眼(혜안)이다. 인물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耳目口鼻(이목구비)가 훤칠하다고 한다. 귀와 눈과 입과 코가 자리할 곳에 제대로 잘 앉았다는 뜻이다.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사물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양심에 입각해서 말할 수 있는 입, 싱그러운 것과 썩은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코를 지녔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세상 사물을 바르고 정확하게 보기 위하여 創造主(창조주)는 두개의 눈을 주었고,귀에 거슬리는 참 말씀이 듣기에는 싫으나 몸에는 이로우니 듣고 또 들으라고 두개의 귀를 부여하였으며, 많은 것을 보고 들을지라도 그것을 직선적으로 바로 내쏟지 말고 자기 가슴의 깊은 鎔鑛爐(용광로)에 溶解(용해)시키고 걸러서 삶의 德이 되는 말 만을 내놓으라는 意味深長한 뜻으로 입은 하나만을 부여하였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선인들은 ‘일신천금이면 일월이 구백 냥’ 이라고 인간 몸값의 대부분을 눈에 割愛(할애)하였다. 눈을 감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이나 美라도 볼 수 없고, 관심이 있는 곳에는 눈길을 돌리며, 갖고 싶은 것엔 눈독을 들이고, 거슬리는 미운 자에겐 눈총을 보낸다.반가운 사람을 만나거나 떠나 보낼 때엔 눈시울을 적시고,눈으로 아름다움을 보아서 가슴과 머리로 느끼게 되는 것이 人之常情(인지상정)이다.
인생을 길고 원대하게 보는 炯眼(형안)이 있는 반면, 사리에 눈앞을 분별 못하는 盲目(맹목)이 있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目不識丁(목불식정)이 있는가 하면.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目不忍見(목불인견)의 醜態(추태)도 수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겉볼안’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외모를 유심히 바라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슴에 지니고 어떠한 모습으로 그 인생의 행로를 걸어 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식견을 가지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찾고 일생을 약속 하기도 한다.먼데서 일어나는 일을 직감적으로 攄得(터득)하는 능력의 千里眼(천리안)이 있는 백성이라야 지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民族에게는 오늘을 바로 보는 眼目이 있어야 하고, 人類에게는 세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卓見(탁견)이 있어야 하고, 歷史(역사) 앞에서는 未來(미래)를 긍정적으로 조망하는 識見(식견)이 있어야 한다.
<성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라고 가르치고 있고, ‘시서 만권의 책 속에는, 聖賢(성현)들의 깊은 마음이 서려 있다’(日月兩輪일월양륜 天地眼천지안 詩書萬券시서만권 聖賢心성현심)고 천리를 권면 하였다. 성현들이 남긴 유업 중에서 우리는 책을 빼놓을 수 없다. 글은 곧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성과 지혜를 다해서 조각해 놓은 책 앞에 서면 마음이 崇嚴(숭엄)해 지고, 놀기만 하던 학생들이 도서관에 들러 독서에 열중하는 동료들을 만나면 충격을 받고 게으름을 자책하게 된다. 소리를 내어 읽는 音讀(음독),눈으로 조용히 대화하듯 읽는 目讀(목독),깊이를 생각하면서 읽는 熟讀(숙독)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삶의 깊이를 배우게 된다. 讀書三昧境(독서삼매경)의 높은 경지, 晝耕夜讀(주경야독)의 근면한 삶의 태도, 雪案螢窓(설안형창)의 부단한 인격 수련은 自我開發(자아개발)의 아름다운 龜鑑(귀감)이다. 저마다 聰明(총명)한 눈으로 세상을 밝고 正義롭게 보며 眞理를 洞察(통찰)하는 能力을 지니자.이것은 未來를 바로 眺望(조망)하는 試金石(시금석)이요,偉大한 歷史를 創造하는 原動力(원동력)이다.
분명히 눈은 神이 人間에게 賦與(부여)한 眞理와 良心의 빛나는 두개의 별이다.
정용진(鄭用眞) 의 약력 39. 경기 여주출생(아호 秀峯) 1971 년 도미 미주한국문인협회협 이사장. 회장 역임. 한국 크리스챤 시인협회. 민족문학 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행문회. Pen USA.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 VIP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