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스카에 가다 (4)
2006.08.31 18:31
밤을 잊은 땅 Fairbanks
앵커리지에서 북으로 360마일 떨어진 백야의 땅 훼어벵스로 향했습니다
인구 3만2천으로 알라스카의 제2의 도시입니다
북쪽 끝인 거기에도 우리 동포가 7백 명이 산답니다. 참 우리는 잡초처럼 끈질긴 민족입니다
훼어뱅스 북으로는 문명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인류가 북진하다가 멈추어서버린 땅.
철도도 달려오다 여기에서 멈추었고
도로도 뻗어가다 여기에서 서버렸고
문명도 범죄도 여기에서 멎어버렸습니다 .
문자 그대로 인류의 북방한계선이며
인류문명의 종착역입니다 .
태양마저 머뭇거리다가 쉬어가는 땅
우리는 그것을 백야라 부릅니다.
백야의 땅을 찾아가는 중간쯤에 매킨리가 우뚝 막아서 있고
맥킨리를 지나니 그때부터는 넓은 평원과 끝없는 원시림이 펼쳐집니다.
전나무와 자작나무들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빼곡히 들어선 숲을 헤치고
실 같은 도로가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그려 놓은 시베리아 벌판이 이런 풍경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숲과 숲 사이 간간이 보이는 연못가에는 어김없이 무스와 사슴들이 있고
간혹 곰들도 길 가장자리를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습니다.
디스커버리 영상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야생과 원시가 살아 숨 쉬는 땅 .
신비함과 경이스러움이 번갈아가며 나를 황홀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아! 아직도 세상에 이런 곳이 남아 있구나!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풍광에 입을 다물 수 가 없습니다.
훼어뱅스 가까이 가니 소위 알라스카 대 송유관이 지나고 있습니다.
북극 유전지대에서 남쪽 Valdez항 까지 장장 800마일을 하루에 150만 베럴의 원유를 실어 나르는 알라스카의 대동맥입니다
규모나 길이도 엄청나지만 극한의 북극지대에서 동파하지 않고 견디어 내는 그들의 메커니즘이 경이롭습니다 .
그런데 이 송유관이 내가 알라스카를 떠나온 다음날 파열되어 원유수송이 중단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사람팔자도 모르는 것이지만 송유관의 운명도 하루 앞을 보지못했구나하고 생각하니 쓴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
훼어뱅스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9시경,
LA는 한밤중일 턴데 이곳은 아직도 해가 중천에 머물러 있습니다 .
샤워를 하고 한잠 늘어지게 자고났는데도 해는 질 줄 모릅니다.
이곳의 해는 밤 12시가 되어야 잠시 숨었다가 새벽 3시면 다시 고개를 내민답니다.
반면 겨울에는 반대로 한 낮 3시간 정도만 지평선 끝에 해가 걸려 있다가 사라진다니
이곳은 복 받은 땅 일까요, 벌 받은 땅 일까요 ?
(내일은 싼타할아버지가 산다는 동화의 나라 북극 싼타마을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