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紀行
2014년 6월11-22일
                          鄭用眞 詩人

무겁고 웅장한 러시아

여행은 시정(詩情)과 낭만을 등에지고 산하만리(山河萬里)를 구름처럼, 바람같이 물결처럼 떠도는 행객의 발길이다. 오늘은 동쪽에서 밥을 먹고(東家食) 내일은 서쪽에서 잠을 자며(西家宿) 방랑자의 혼으로 여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동안 하와이. 옐로스톤. 멕시코 칸쿤. 금강산. 북한(평양. 묘향산. 진남포, 개성) 캐나다 록키. 캐나다 일주, 알라스카 일주. 동서유럽. 중국기행을 하면서 북유럽을 여행하고 싶었다. 중국의 장가계 원가계와 황산을 오르면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외국 여행을해야 된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우리 내외는 2014년 6월11일부터 22일까지 12일간 북유럽의 러시아. 핀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여행을 하였다.
로스엔젤레스 공항에서 러시아 국적기 Aeroflot에 몸을 싣고 모스코바로 향하였다.
모스코바 공항에 도착하니 미국 내 여러 곳과 한국에서 온 관광객 일행을 여행 가이드 줄리 박이 반겨 맞는다. 줄리 박은 오랜 여행 경험과 많은 여행지식으로 시종일관 활달하게 우리 일행을 리드하였다. 때로는 물결 같이, 어떤 때는 폭포수 같이, 더러는 전도사와 같이 복음을 전하기도하고, 주위 상황을 설명하기에 시종일관 지칠 줄 몰랐다. 우리 일행은 그를 놓칠세라 졸졸 따라다녔다,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하여...
전 세계 면적 1위의 러시아 연방공화국 수도 모스코바는 화려한 황제 정치시대를 뒤로하고 1917년 혁명으로 수도가 된 후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가 되어 웅장한 건축물들이 찾는 이들을 압도한다.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고 자신의 속을 절대로 안 내어 보이는 사람을 가리켜 크레믈린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듯이 과연 크레믈린 궁은 붉은 광장과 더불어 거대하고 장중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16-17세기의 러시아 건축물의 상징으로 붉은 광장에 이반대제가 카자한을 물리친 기념으로 세웠다는 47미터의 높이로 웅장하게 서있는 성 바실리 성당은 8개의 양파머리 지붕으로 되어있는데 화려하고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1555년부터 1560까지 5년에 걸쳐 완성한 모스코바 붉은 광장의 랜드 마크로 이탈리아 건축가가 설계하여 건축한 후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다른 곳에 이와 같은 건축물을 건설할 것을 두려워하여 그의 두 눈을 뽑았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1917년 러시아혁명 기념제등 숱한 역사의 무대가 된 모스코바의 크레믈린궁은 2,235미터의 둘레와 20개의 망루, 황제의 궁.  레닌묘, 스파스카야 탑, 크타피아 탑, 궁전 병기고, 레닌 동상, 클레믈린 극장, 세계 최대의 대포 등이 설치되어 있다.
모스코바 중심 거리에는 러시아의 명시인 푸쉬킨 광장이 있고, 러시아 최고의 모스코바대학(스탈린 대학)이 웅장한 자태로 서있고, 모스코바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소설하면 톨스토이의 부활과 이반의 바보. 그리고 토스토에프스키의 카라마조브에 형제를 들지만 시인하면 푸쉬킨을 빼놓을 수가 없다.  
푸쉬킨의 명시를 여기에 옮겨 놓는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는 것.

모스코바의 여정을 마치고 항공편으로 러시아의 옛 수도인 세인트 피터스버그(쌍트 페테스부르크. 레닌그라이드)로 떠났다. 65개의 강이 흐르고 365개의 다리로 연결된 북쪽의 베니스로 불리는 레바강 연안의 아름다운 도시로 러시아제국의 긍지와 영광을 누린 도시다.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네바강을 따라 230미터나 뻗어 있는 제정러시아 황제들의 거처. 화려한 전시관 내부를 관람 하였다.
뾰뜨르 대제의 18세기 발 쇼이 드바레츠 대궁전(18세기), 황금 장식 물고기들이 물을 뿜어대는 아름다운 분수정원, 레오나르다빈치의 ‘꽃을 든 성모’‘아기를 안은 성모’‘라파엘로, 조르조네, 카라바조의 유명 작품 등을 둘러보고 에르미타쥐 박물관에서 과거 러시아의 호화찬란하였던 역사와 문화를 접하고 감탄의 감탄을 연발 하였다.
담록색 외관에 흰 기둥이 조화된 로코코양식의 궁전으로 1762년에 라스트 렐리에의해 건축된 1.056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 2만개가 넘는 창문, 지붕위에 170개가 넘는 조각상이 장식된 에리미타쥐 겨울궁전을 보았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역동적이고 인상적인 드보르쪼바야 광장, 아렉산드브로스까야 원주위의 천사상을 보고, 1만5천명을 수용하던 불꽃놀이 및 옵세도스뚜쁘 극장, 뻬뜨로빠블로스브까야 성채, 이오아노브스끼 다리와 문, 뜨루뼤쯔꼬이 능보. 세계 최초의 음악시계, 졔브리스또브 광장, 이싸야쁘스끼 사원, 리예브스끼 섬등을 보고. 나폴레온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에 대하여 러시아 군대가 거두웠던 승리를 기념하여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을 모방해서 1810년에 지은 까잔스끼 사원의 웅장함을 본 후 러일전쟁의 상징 오로라 순양함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러시아 동궁(에르미타주)박물관은 러시아의 구수도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있는 박물관으로 그 수장품의 질과 양이 세계 제일이라는 프랑스 빠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버금가는 규모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세계5대 박물관으로 프랑스 빠리 루브르박물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러시아 동궁(현재는 에르미타주)을 드는데 일본 도쿄 박물관과 타이완 국립 박물관도 그 규모와 소장품의 수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발레하면 러시아요, 볼쇼이 발레다. 시내 도처에 그리스 신전 같은 고딕식의 발레 공연장들이 늘어서있는데. 명품 발레 극장에서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였다.
오래전 미국에서도 로스엔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관람 한 적이 있다.
생기발랄한 백조의 율동과 군무가 밤하늘에 음악에 어울려 환상적이었는데 이런 기회를 얻기가 퍽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독에 지쳐 흰 옷을 입고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여인이 있기에 잠자는 백조라고 놀렸더니 웃음소리에 잠을 깨어 함께 발레를 감상 할 수 있었다.
4일째 되던 6월15일 새벽잠을 털고 우등 기차편으로 세인트 피터스버그를 떠나 발틱해 연안 핀랜드 헬싱키로 향하였다.

발틱해의 아가씨 핀랜드

헬싱키는 순수하고 소박한 자연 속에 둘러싸인 ‘발틱해의 아가씨’로 불리는 곳으로 북유럽 디자인의 허브다. 독일 건축가 C. L. 엥겔의 작품이자 루터교의 총본산으로 1852년 건축된 헬싱키 대성당이 있는 세나테 광장에는 대학, 정부청사, 국회의사당, 국립 박물관, 러시아의 안렉산드로 1세의 동상이 서있다.
대통령 관저를 지나 3,100개의 파이프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을 보고, 바위산을 뚫어 만든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를 방문 하였다. 주위에 러시아풍 우스펜스키 사원도 둘러  보았다. 그리고 나서 자작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공원에 설치된 핀랜드 출신의 세계적 교향곡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흉상과 스테인레스 파이프오르간 조형물 앞에서 기념 진을 찍었다.
  핀랜드하면 세계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애국적인 교향시 ‘핀란디아’로 유명한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다. 요한 율리우스 크리스티안 시벨리우스(Johan Julius Christian Sibelius) (1865~1957)는1865년 당시 러시아령 핀란드 공국에 위치한 해멘린나의 스웨덴계 핀란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그를 스웨덴어· 핀란드어 애칭인 ‘잔(Janne)’으로 불렀지만, 시벨리우스 본인은 프랑스어 이름 ‘장(Jean)’을 썼다. 그의 가족은 그를 핀란드어 학교에 보냈고, 거기에서 그는 펜노만(Fennoman) 운동을 접했다. 그의 음악관과 정치 성향은 국민악파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핀란디아, Valse Triste, 바이올린 협주곡, 카렐리아 모음곡, 투오넬라의 백조(렘민캐이넨 모음곡의 한 악장) 등이 있다. 그 밖에도 그는 칼레발라에 영감을 얻은 작품과 일곱 개의 교향곡, 100개가 넘는 가곡, 13개의 연극을 위한 반주 음악, 하나의 오페라 (Jungfrun itornet - 미완성작품), 현악 사중주를 포함한 실내악 작품, 피아노 소품, 21개의 합창곡집, 프리메이슨 예배음악 등을 썼다.
‘핀란디아’는 그림 같은 핀란드의 호수와 삼림을 찬양한 교향시(좁은 뜻으로 1악장형식의 곡)다. 당시 러시아 지배하의 핀란드 인들을 고무시킨 ‘핀란디아’는 1차 세계대전 후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하자 국민적 음악이 됐다. 교향시의 중간부 선율에 시가 붙여져 ‘핀란디아 찬가’라는 합창곡으로 만들어져 오늘날 핀란드의 제2의 국가처럼 불리고 있다.  
그리고 저녁 풍경을 바라보면서 초호화 유람선 Siljaline 을 타고 선상에서 저녁을 들고 잠자리에 드니 제5일째 되는 6월16일 아침에 스웨덴 스독홀롬에 도착하였다.

아름다운 강산 스웨덴

2만5천개의 호수로 이뤄진 호반의 나라, 1255년부터 한자동맹에 속한 항만도시 스독홀롬은 17세기에는 북유럽의 대표적 경제중심 도시며 문화도시였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왕궁과 귀족의 집 등 구 시가지를 관광하였다.
1625년 건조되어 1626년 8월10일 처녀 항해시 돌풍으로 침몰한 스웨덴 왕실 전함 바사호를 333년 후에 건져내어 원형대로 수리 보전한 바사박물관을 관람 하였는데 우리나라에도 임진왜란 시 침몰한 이순신 장군의 전함 거북선을 해저에서 찾아 원형대로 보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다.
그 후 우리 일행은 노벨상이 수여되는 스웨덴 시청사를 방문 하였다.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은 1833년 10월 21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이마누엘 노벨과 카롤리나 노벨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이마누엘은 발명가이자 공학자로, 1827년 카롤리나 안드리에타 알셀과 결혼했다.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는 전 세계로 팔려 나갔고, 노벨은 순식간에 엄청나게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부자가 된 노벨에게 큰 고민이 생겼다. 원래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이유는 사람들이 더욱 편하게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을 위해 길을 뚫고, 공장을 짓고, 광산에서 큰 바위도 쉽게 폭파하여 광부들이 편하게 일하도록 하려는 것 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사람들은 전쟁을 벌이면서 이 다이너마이트로 적군의 기지나 공장, 다리 등을 폭파하고 더 많은 적군을 죽이는데 이용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발명한 화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다치고 죽는 것이 가슴 아팠던 노벨은 전쟁이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큰 업적을 쌓은 사람들에게 큰 상을 주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기로 하였다. 노벨상(스웨덴어: Nobelpriset, 노르웨이어: Nobelprisen, 영어: Nobel Prize)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인 스웨덴의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작성한 유언에 따라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1901년부터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노벨 문학상,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었다.
다른 상들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반면,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여된다. 각 상은 모두 그 분야에서 매우 권위 있게 여겨진다.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흔히 노벨 경제학상 이라고 불리는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1969년에 처음 수여되었고 수상자 발표와 시상은 다른 노벨상과 같이 행해진다.
스웨덴 왕립 과학원이 노벨 물리학상과 노벨 화학상,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의 수상자를 결정한다. 카로린스카 의과대학교 노벨총회에서 노벨 생리학·의학상의 수상자를 결정한다.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여한다. 다른 상들과 달리 노벨 평화상은 스웨덴의 기구가 아닌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에서 수여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상이 바로 '노벨상'인 것이다. 1901년 노벨상이 만들어진 이후 많은 훌륭한 과학자와 문학가, 종교인, 정치가 등이 이 상을 받았고 이 상은 지금도 인류의 평화와 학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스웨덴 시청 노벨상 수상 식장은 건축가 라구날 오스트벨리의 설계로 1,900 만개의 금 모자이크로 장식된 황금 방은 노벨상 수상식장으로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 후 스웨덴 한림원에 의하여 노벨상 수상식이 거행되는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시 청사를 방문하여 황금의 방, 국회의사당, 감라스탄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추천되는 고은시인께서 이곳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으셨으면 생각하였고 우선 시인이 내가 이곳에 온 김에 명예 노벨문학상을 받노라고 식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더니 여행객 일행들이 파안대소하며 피로를 마음껏 풀었다.
그리고 나서 알프레드 노벨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스독홀롬에서 점심을 들고 바로 이웃나라인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로 이동하여 저녁 후 잠을 청했다. 밤 2시인데도 북극의 백야(白夜)가 대낮같이 밝다.

청정의 산하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만년설이 덮여있고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숲을 이뤄 세계 최고의 공기 청정지역이다. 이곳에 와서 처음 들은 단어가 피요르드(Fjord)인데 이는 그중에 제일이 게이랑에르 피요르드(Geiranger Fjord)다.
피요르드는 산위에 쌓인 만년설이 오랜 시간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바위등을 v자 모양으로 가르고 눈 녹은 물이 흘러 바닷물과 합수하는 모습을 말하며 여기에는 수십만  톤급에 크루즈들이 여객들을 싣고 오간다.
만년설 소복이 광경을 바라다보면서 시선 김삿갓의 ‘달도 희고 눈도 희고, 하늘과 땅도 흰데, 산도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의 수심도 깊다.(月白雪白 天地白 山心水心 客愁心)는 옛 시조 한수가 떠오른다.
조반 후 뫼사 호수가 자리 잡은 1994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 릴레함메르를 둘러보고 바이킹 스타일의 교회 모습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만년설의 산악지대를 통과하여 신비로운 비데세떼르의 피요르드가 맞다은 노르웨이 국립공원 내 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노르웨이는 만년 빙하의 나라이기에 가는 곳마다 폭포요, 정화시키지 아니하여도 즉시 마실 수 있는 청정수의 나라다.
산은 높고 물은 길고, 맑은 바람에 달은 밝다.(山高水長 淸風明月) 또 다시 보면 산은 겹겹 물은 굽이굽이(山重重 水曲曲)다. 솔숲에 내린 눈을 보며 송강 정철의 시가 떠오른다. 한 가지 꺾어 정인에게 보내고 싶다.

송림에 눈이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님에게 보내오져
님이 보신 후에야 녹아진들 어떻하리.   -송강 정철

특히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북극에 임하여 밤에도 자주 해가 밝게 뜨는 백야(白夜) 현상이 있어서 우리와 같이(晝夜 春夏秋冬) 사계절이 정연한 곳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 아니다.
숲속에 집들을 하나같이 소박하고 자그마하고 칼라플하여 마치 알프스산록을 여행하는 착각을 느끼게 한다. 사람의 자취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더러 만나더라도 그 표정과 행동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맑고 순박하다.
노르웨이는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를 보기 위하여 1,298미터 전망대에 올랐고, 다시 16 킬로메타에 이르는 물길의 게이랑에르-헬러쉴트 구간을 유람선으로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관람하였는데. 지나는 길목에는 일곱 자매 폭포가 마치 면사포를 쓴 모습으로 흘러내려 모두들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시인이요 묵객인 나도 붓을 들어 한수 읊었으니

<노르웨이에서>
게이랑에르 피요르드(Geiranger Fjord)
                                  정용진 시인
노르웨이 청정산하
머리위에 소복이 내린
만년 빙하를 바라보며
그리운 님 생각에
옥빛물결 방울방울
눈물로 흘러
굳은 바위 가슴을 가르고
연모의 발걸음을
바다를 향해 옮긴다.

옥구슬로 맺힌 속마음
폭포 소리로 살아
임 맞으러 달려온 바다 가슴에
포근히 안기는 피요르드.
청솔 숲속에서 자란
일곱 자매의 애달픈 율동이
빨주노초파남보, 면사포 자락
칠색 무지개로 피어오르네.

구름을 따라
물결을 따라
바람을 따라
밀려온 만리 여정
백야(白夜)를 밀고 다가서는
칠흑의 밤을 꿈으로 엮고
이른 아침 창을 여니
내 머리위에 덮인
고희(古稀)의 백발처럼
산허리에 피어오르는 설무(雪霧)속에
그리그의 솔베지송 선율이
석양빛 노을에 젖어
나그네의 가슴을 적신다.

나는 이 시간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사랑할 사람과
나를 미워하던 사람들을 생각느니
그간의 애틋한 사연들을
청옥 물결위에 띄워 보내며
만년설이 녹아내린 백옥 물결과
바다물이 서로 엉켜 춤을 추듯
동행하기를 바라네.

나 이제
그들을 용서하노라
사랑하노라.
잘 있어, 또 올께
아 아! 나의 사랑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 피요르드-만년설이 바위를 가르고 녹아내려 바다 물결과 합쳐 하나 되는 모습.

게랑에이드 피요르드 관광 후 피얼란드 터널을 지나 세계에서 가장 큰 빙원(氷原)을 거쳐 푸른 빙하라 칭하는 요스데달 빙하를 보고 피얼란드 빙하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만헬러-포드네스 유람선 구간은 계곡이 좁고 깍아 지른 천인단애(千仞斷崖)의 계곡이라 풍광이 수려하고 세계 최장의 205 킬로미터의 송내 피요르드와 1,308미터의 길이를 자랑하는 하르담에르 피요르드가 실로 장관이다.
총 길이 204킬로미터의 해안 쪽을 깍아지른 듯 파드러간 노르웨이 최장의 송네 피요르드를 건너 구드방겐으로 이동하여 폭포가 보이는 산중 호텔에서 유숙 하였다.
조식 후 플롬으로 이동하여 산악열차에 탑승한 후 요정이 도깨비와 같이 나타나서 춤을 추는 광경을 보라보고 산악 등산 열차가 잠시 멈춰서 주기도하여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그 후 세계 최장 터널(24.5킬로미터)을 통과 후스틸하임 전망대와 보스를 경유하여 노르웨이 제2의 항구도시 베르겐으로 이동하였다.
베르겐은 과거 독일의 한자상인(HANSA )들의 거점으로 한자동맹 시절의 목조 건물들이 원형대로 잘 보전되어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주위에는 어시장등 고물상점들이 어울려 있어 늘 붐비고 있다. 우리 내외도 찐 새우를 한주먹 사서 먹으면서 여심(旅心)을 달랬다.
베르겐은 과거 노르웨이의 수도였던 곳으로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지다. 이곳의 유명한 세인트 머리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다. 그 후 우리 일행은 릴르 룽게바르즈반 호수, 베르겐의 동화 속거리를 산보 하였다.
그리고 다시 노르웨이의 국민적 작곡가인 베르겐 태생의 그리그 생가와 유물 전시관을 방문하고  호수가에 아름답게 보전된 옛 작곡실과 그의 동상을 둘러보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베르겐은 세계적 작곡가 그리그의 탄생지다.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는 1843년 6월 15일 베르겐에서 태어났다.
그리그는 어릴 적부터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며, 15세에 독일의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하여 4년 간 작곡과 피아노 연주법을 배웠다. 1862년 졸업을 하자 다시 고향인 베르겐으로 돌아온 그리그는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 음악계에 정식 데뷔했다. 이듬해 코펜하겐으로 건너간 그는, 덴마크 음악계의 대가인 닐스 가데와 리하르트 노르들라크 등 민족주의 작곡가들과 사귀면서 노르웨이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연주 활동도 많이 펼쳤다.
이 무렵 노르들라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에서 「장송 행진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장송곡은 사람이 죽었을 때 연주하는 곡으로, 그의 「장송 행진곡」은 오늘날까지 많이 연주되고 있다.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음악 활동을 하던 그리그는, 나이가 들어 다시 고국인 노르웨이로 돌아와 오슬로 음악원 부원장과 필하모니 협회의 지휘자로 활동하며 작곡에 몰두했다. 또 1867년에는 노르웨이 음악원을 세웠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리그의 작품이 유명해지자 1874년부터 노르웨이 정부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하여 연봉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만큼 국민적인 음악가로 대접을 해준 것이다. 그리그는 베르겐 근처에서 작곡과 연주 활동에 몰두하다가 1907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그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솔베지 송’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노르웨이는 자연경관이 빼어나 자연주의 화가들의 주요작품 배경이 된 곳이다.
우리 일행은 노르웨이 제2의 규모를 자랑하는 브림네스-브루라박 구간을 페리호에 탑승하여 하르당에르 피요르드를 유람하면서 1,500메타 높은 산에서 쏟아지는 장엄한 보링스 폭포와 세게달스 폭포를 감상하며 야일로로 향하였다.
조반 후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거울처럼 투명한 크뢰단 빙하호수를 바라보면서 오슬로로 돌아왔다. 노르웨이 오슬로는 표현주의 작가요. 회화의 대가인 뭉크의 탄생지로도 유명하다.
에드바르 뭉크(노르웨이어: Edvard Munch, 1863년 12월 12일 ~ 1944년 1월 23일)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이다. 노르웨이에서는 국민적인 화가이다. 그의 초상이 1000 크로네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신(新)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점묘의 수법을 사용하여 삶과 죽음에의 극적이고 내면적인 그림을 그렸다. 1892년 베를린으로 이주, 그곳의 미술 협회에 출품했다. 그는 나면서부터 몸이 약해 작품에도 그 영향이 드러나 있는데, 나치스는 퇴폐예술이라는 이유로 그의 그림을 몰수하기도 했다. 작품으로 <절규>, <병든 소녀> 등이 있다.
생과 죽음의 문제 그리고 인간 존재의 근원에 존재하는 고독, 질투, 불안 등을 응시하는 인물을, 인물화를 통해 표현했다. 표현주의적인 화풍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는 큰 도시는 아니지만 조용하고 깨끗한 이 나라의 정치, 문화, 교육, 상공업의 중심지로서 부동항이다.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프 바겔란의 작품 200여점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프로그네를 조각공원에는 인간의 탄생에서 성장, 갈등, 투쟁, 시기 질투를 거쳐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들을 600여개의 인물 조상(彫像)들로 만들어 놓았고 이를 감상하면서 주위에 꽃들과 잔디밭 보리수 가로수들이 아름다운 비겔란 공원을 산책하였다.
무엇무엇 하여도 오슬로 방문의 정수는 노벨 평화상을 직접 수여하는 시청사와 특별 연회장이다. 우리나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대화의 물고를 튼 공로로 2000년도에 여기서 명예롭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고, 공교롭게도 우리가 방문한날에 경찰졸업식이 있어서 내부를 볼 수가 없어서 몹시 안타까웠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조형미와 뛰어난 선박 기술을 말해주는 1,000년 거크스타트호가 보존되어 있고, 1904년 발굴된 바이킹 선박 3척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바이킹 박물관과 마틴 루터교회로서 유명한 오슬로 대성당, 1299년 하콘 5세가 오슬로 방어를 위해 짓고 17세기 크리스티앙 4세가 개축한 아케르후스 성과 오슬로 중앙역, 로얄 왕궁. 국회의사당 이 모여 있는 카를요한 거리를 산책하였다.
그 후 이번 여행의 종착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북해의 귀족적 유람선 DFDS SEA WAYS호에 탑승하였다.
여행 11일째 되던 날(6월11일) 덴마크에 도착하니 쾌청의 날씨가 우리의 여정을 축복하여 주었다.

지상의 낙원 덴마크

행복 만족지수가 최고인 나라 2차 대전을 치르고서 세계 경제가 파탄 지경일 때 독일에서는 ‘물질에서 잃은 것을 정신에서 찾자.’외치면서 경제 부흥의 깃발을 들고 ‘너희나라 청년들을 내게 보여 다오. 네 나라의 내일을 점치겠다.’고 비스마르크는 외쳤고, 덴마크의 정신적 지도자 그룬트비히와 달가스는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외치면서 국가재건에 앞장을 섰다.
우리나라에도 충무공이나 김구, 도산 안창호 같은 민족의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7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설 수 있는 것과 같다.
북유럽 노르웨이나 스웨덴에 산이 많은 것에 비해 러시아와 덴마크는 광활한 평야 국가다.
북유럽은 종교 개혁자 마틴루터의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국가들이 개신교 국가인데 동서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캐톨릭 국가인 것과 크게 대조적이다.
북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입헌군주제의 왕을 두고 있는 것 또한 큰 특징 중에 하나다.
그룬트비히는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로 숭앙을 받고 있다. 그룬트비히(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는 지금도 세계 곳곳의 농촌운동가들과 신학자들이 그 이름을 외치고 있는 인물이다. 1783년 9월8일 덴마크의 우드비에서 태어난 그룬트비히는 “힘이 아니라 국민성으로 위대한 국가를 건설하자”고 외치며 국민 성격개조 운동과 농촌부흥운동을 벌여 오늘의 선진 낙농국가인 덴마크의 기초를 마련했다. 덴마크라고 하면 지금은 누구나 깨끗하고 아름다우면서 부유한 나라를 떠올리지만 그룬트비히가 살던 19세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덴마크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프러시아(지금의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주고 유럽대륙 북부의 곡창지대인 슬레스빅, 홀슈타인 지역을 넘겨준 상태였다. 남겨진 스칸디나비아 땅은 북해와 발트해의 바닷바람에 시달리며 돌과 모래, 잡초만이 무성한 황무지였다. 국가 경제는 당연히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중앙은행이 파산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덴마크 국민은 좌절과 실의에 빠졌다. 어두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이 늘어났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그룬트비는 덴마크 국민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는 국민이 실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하는 의식개혁운동을 주창했다. 그 바탕은 루터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이념이었다. 그룬트비히는 또 덴마크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선 스칸디나비아의 기후와 풍토에 맞는 새로운 낙농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룬트비히는 ‘국민의식 구조가 개혁돼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덴마크 역사상 최초의 성인기숙교육학교 설립을 주장했다. 이것이 국민고등학교다. 기숙학교는 자발적으로 입학한 학생들에게 먹고, 자고, 일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생활을 통해 소극적인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개척정신을 갖도록 가르쳤다. 국민고등학교는 덴마크 전역으로 확산돼 덴마크 국민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국민고등학교를 마친 사람들의 삶을 목격한 덴마크 국민 사이에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룬트비히가 내세운 ‘하나님을 사랑하자, 이웃을 사랑하자, 땅을 사랑하자’는 3애(三愛)정신은 곧 덴마크 국민의 구호가 됐다. 그 정신은 지금도 덴마크 사람들의 마음 저변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역사에는 우연이 없다. 기적도 없고 요행도 없다. 오로지 노력하는 사람만이 거둘 수 있다는 자연의 진리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룬트비히는 덴마크 국민에게 깨우쳐준 것이다. 그룬트비히는 낙농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전국의 목사들을 먼저 설득했다. 그룬트비히는 목사들이 주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전령이 돼야 한다며 3애정신과 함께 낙농기술을 가르쳤다. 각 지역의 교회는 낙농기술을 가르치는 주민 센터가 됐다. 교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농업운동이 확산됐다. 덴마크의 위대한 중흥이 시작됐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한 새마을운동도 그룬트비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새마을운동의 초기 주창자들은 그룬트비히의 사상과 그의 실천적인 성인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활용했다. 새마을운동의 의식개혁 및 품종개량 운동 등이 모두 그룬트비히의 활동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도 그룬트비히의 3애정신과 비슷한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그룬트비히와 함께 덴마크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엔리코 달가스다.
엔리코 달가스(Enrico Mylius Dalgas, 1828년 6월 16일 - 1894년 4월 16일)는 덴마크의 부흥 운동의 아버지다.
1864년에 덴마크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지고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면서 황무지 개간에 앞장섰다. 그의 열성에 감동한 국민들이 그와 함께 모래땅에 나무심기를 거듭한 끝에 거친 국토는 푸른빛으로 바뀌었고, 이로써 덴마크 부흥의 기틀이 다져졌다.
덴마크(Denmark)는 유럽 북부에 위치한 나라로 면적은 4만3,069km, 인구 512만, 수도는 코펜하겐, 그리고 종교는 기독교국이다. 덴마크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기름진 땅을 모두 빼앗기고 풀이 나지 않는 황무지만 남게 되었으며 기후적으로 북해의 혹독한 바람이 항상 불어 여름에도 서리가 내리고 아무런 자원이 없어 희망이 없는 나라가 되었다.
전국에서 기후가 가장 좋다는 수도 코펜하겐은 1년에 4분의 1은 깊은 안개에 싸여 있어 모든 가축이 9개월 동안 우리 안에 갇혀 있어야 하며, 가축과 농사를 지을 아무런 여건이 되어있지 않았다.
덴마크가 전쟁에 패하고 국민들이 모두 실망에 빠져 외국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처지였다. 이러한 때에 달가스라는 사람이 나타나 부르짖었다. “우리는 좋은 땅을 모두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달가스는 국민들에게 나무 심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며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덴마크보다 더 추운 노르웨이 전나무를 가져다 전국에 심었다. 그리고 전나무 사이에 알프스에서 자라는 풀을 심어 전국이 무성한 나무와 푸른 숲의 나라로 달라진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래서 앞으로 머지않아 집을 지을 재목을 얻을 수 있다고 호소하였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가 지금 먹고 사는 것이 시급하나 후손들을 위하여 나무 심는 일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운동으로 전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성벽이 되어 바람에 날아오는 모래를 막을 수 있었으며, 내리는 서리를 사라지게 하였고, 큰 홍수를 예방하게 되었다.
달가스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고 곡식을 심어 추수를 하였으며, 나무를 찍어다가 집을 짓고, 곡식을 저장할 창고를 지었다. 이 운동이 일어난지 30년 후에 달가스는 세상을 떠났으나 덴마크는 산림의 나라로 번창하였으며 모든 땅이 옥토가 되어 잘살게 되었다.
나는 농고 시절 임학을 전공했다.(여주 국립자영 농업전문학교) 일본의 압제로부터 나라가 해방이 되고 우리 민족이 지닌 것은 가난과 붉은 산 뿐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여주 일원에 손수 나무를 심고 식수 감독을 한 것을 헤아리면 넉넉히 100만주는 되리라고 자부한다. 가끔 모교를 방문해 보면 우리가 심은 소나무들이 아름드리로 자란 것을 보면서 가슴이 뿌듯해진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제일의 조림 성공 국가로 뽑힌다. 모르면 몰라도 식목일이 있는 나라는 한국 뿐일성 싶다. 산이 풍요로워야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져 풍년이 들고 국가가 부강해고 민족성이 풍성해 진다.
우리나라의 식목을 강조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포함시키도록 권면한 분은 전 서울농대 교수로 계시던 유달영 교수로 안다. 그는 농촌 계몽과 산림녹화가 부국의 길이라고 역설한 한국의 달가스요, 한국농촌 계몽의 아버지다. 그의 시 한수를 여기에 옮겨 놓는다.

"젊은 하루“
                 류달영

그대 아끼게나 靑春을
이름 없는 들풀로
사라져 버림도 永遠에 빛날
삶의 光榮도 젊은 時間의
쓰임새에 달렸거니 오늘도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젊은 하루를
뉘우침 없이 살거나                -전 서울농대 교수.

인류의 역사는 앞서가는 정신적 지도자에 의하여 성장하고 발전한다. 대중은 항상 빵과 써커스면 족하기 때문에 오늘에 만족하고 내일을 예비하지 아니한다.
류달영 교수는 채용신의 전기 ‘눈 속에 잎 피는 나무’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덴마크의수도 코펜하겐에 도착하니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푸른 공원과 함께 유서깊은 궁정, 교회 건축물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덴마크는 산이 별로 없는 평지의 나라로서 낙농이 산업의 핵심이다. 입헌 군주제를 택한 나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갖추고 실업율이 가장 낮은 나라이며 사회 보장제도의 선두를 달리는 북극의 작은 나라이다.
그러나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 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이다.
세금을 국가에 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지만 유치원으로부터 박사학위에 이르기 까지 학비가 무료이고, 심지어는 장례비용 까지 국가가 부담한다고 한다.
코펜하겐은 북유럽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이며, 미술관, 박물관이 많고  학회 및 연구기관의 본부가 많기로 유명하다.
시내 중심가에는 중앙역과 코펜하겐의 창설자 압살론 주교가 1167년에 세운 궁전은 현재 정부청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왕 알현실과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크리스티안보그 성이 있다.
로코코풍의 아멜리엔보그 성은 왕가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코펜하겐의 상징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델센의 동화 인어공주는 랑겔리니 공원 호수가에 세워져 있다. 안델센은 1805년 덴마크 오덴세에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안델센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많은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1819년에는 연극배우의 꿈을 품고 코펜하겐으로 갔으나, 변성기 이후 목소리가 탁해지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가난 때문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그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본 요나스 콜린의 후원으로 1828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몇 편의 희곡,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의 재능을 드러낸 안델센은 즉흥시인으로 문학계의 호평을 받았다. 1835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동화로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일부 문학 비평가들은 어린이를 속이는 이야기나 쓴다는 가혹한 비난을 하기도 했다. 1872년까지 총 160여 편이 넘는 동화를 남겼고, 그의 대표작으로는 '눈의 여왕', '인어 공주', '미운 오리 새끼', '벌거벗은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등이 있다.
우리 일행은 계속하여 힐레로즈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60년에 걸쳐 개축된 성 프레데릭보르 성과 중세풍의 정원을 둘러보고 코펜하겐 시청 청사를 둘러보았다.
중세 종교개혁의 위대한 유산과 개혁의 의지를 물려받은 마틴루터 개신교회의 전통과 신앙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북유럽 종교 개혁의 현주소이며 세계 기독교인들의 방문 희망 교회로 알려진 덴마크의 그룬트비히 교회는 파이프 올갠 식으로 드높게 건축되어 있는데 웅장한 외부에 비하여 검소한 내부 장식을 보고 우리 여행자 일행들은 감동을 먹고 할 말을 잊었다. 과연 이것이 덴마크인들의 정신적 사고방식이요. 선구자 그룬트비히의 청순한 민족애구나 절실히 깨달았다.
여행 시간이 촉박하여 보고 싶었던 덴마크 야외의 낙농업 현장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것으로 11박 12일의 북유럽 여행을 끝내고 6월11일 코펜하겐에서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을 거처 로스엔젤레스 공항, 그리고 샌디에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은 바로 여심(旅心)이며 곧 여심(餘心)이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면서 마음속 깊이 남겨두는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이다. 참으로 맑고 행복한 여정 이었다.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여행이란 나그네가 되어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맑은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허심탄회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과 가슴을 크게 비울수록 더 많고 더 큰 세계를 담을 수 있다.
지상에서 하나같이 일회적으로 주어진 삶을 아름답고 긴 여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여행의 기쁨을 누리면서 여유롭게 살아가자.
옛 말에 앉은 유식자보다 나돈 무식자가 지식이 더 풍부하다는 말이 있다.
여행은 인간을 활동적이고 행복하게 하여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한다. 이번에 함께 여행하신 모든 분들이 다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삼가 기원한다.      <大尾>

정용진(鄭用眞) 詩人의 약력
(yong chin chong)
39. 경기 여주출생(아호 秀峯)
1971 년 도미. 지평선 시인동인
미주한국문인협회협 이사장. 회장 역임.
한국 크리스챤 시인협회. 민족문학 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행문회 회원.
Pen USA.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s VIP회원.
미주문학상. 한국 크리스챤문학상 대상. 수상
Outstanding Achievement Award.(07.08)
(The International Society of Poetry)수상.
The Best Poems & Poets (05.07) 선정됨.(미국. 국제시인협회)
시집 : 강마을. 장미 밭에서. 빈 가슴은 고요로 채워두고. 금강산.
너를 향해 사랑의 연을 띄운다(한영). 설중매. (미래문화사)
에세이 : 마음 밭에 삶의 뜻을 심으며. 시인과 농부.
문예창작교본 : 시는 언어로 그리는 영혼의 그림.
샌디에고에서 에덴농장 경영. 샌디에고 문장교실 운영.
정용진(鄭用眞- Yong Chin Chong)
9109 Huntley Rd. Fallbrook, Ca 92028 U. S. A.
(760)723-7673(H)   (760)799-2888(C)
E-mail yongchin.chong@gmail.com
Home Page.
my home mijumunhak.com/chongyongchin/
Cafe.daum.net/chongyongchin/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허경옥의 문학서재가 개설 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23.09.17 565
공지 '차덕선의 문학서재'가 개설 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22.05.21 632
공지 김준철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2] 미주문협 2021.03.18 40646
공지 정종환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21.03.17 15897
공지 민유자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21.02.24 911
공지 박하영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21.02.24 52493
공지 ZOOM 줌 사용법 미주문협 2021.01.04 808
공지 줌 사용법 초간단 메뉴얼 미주문협 2021.01.04 816
공지 안규복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9.09.10 930
공지 박복수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9.06.26 1364
공지 김원각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9.02.26 1018
공지 하정아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3] 미주문협 2019.01.21 1282
공지 안서영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3] 미주문협 2019.01.21 1042
공지 '전희진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1] 미주문협 2019.01.09 1111
공지 김하영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8.09.26 1033
공지 신현숙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8.09.26 1020
공지 최은희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1] 미주문협 2018.06.16 1199
공지 '이신우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1] 미주문협 2018.04.27 963
공지 이효섭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7.12.14 1232
공지 이만구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1] 미주문협 2017.12.14 1844
공지 양상훈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7.12.04 1056
공지 라만섭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7.12.04 1003
공지 김태영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3] 미주문협 2017.08.01 1209
공지 '조형숙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1] 미주문협 2017.07.07 1168
공지 '조춘자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3] 미주문협 2017.07.07 1137
공지 '이일영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7.05.08 1096
공지 '이산해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7.04.10 1100
공지 강화식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 2017.02.24 1130
공지 최선호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6.11.30 1636
공지 강신용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6.07.21 1073
공지 정문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6.06.23 1053
공지 강창오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6.04.04 1204
공지 '이원택의 문학서재'가 개설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9.08 1215
공지 '장선영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9.08 1071
공지 '강성재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8.07 1111
공지 '김영수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8.07 1048
공지 '박무일의 문학서재'가 개설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21 1095
공지 '임혜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8 1065
공지 '백남규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8 1016
공지 '최익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47
공지 '오영근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38
공지 '이기윤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1008
공지 '윤금숙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73
공지 '구자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59
공지 '신영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976
공지 '박정순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05
공지 '박경숙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18
공지 '김혜령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57
공지 '조정희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34
공지 '김사빈의 문학서재' 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25
공지 '배송이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45
공지 '지희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6 1042
공지 '정어빙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5 1024
공지 '권태성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5 1052
공지 '김동찬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5 1114
공지 '서용덕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5 1089
공지 '이상태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4 1063
공지 '백선영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4 1055
공지 '최향미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4 1072
공지 '김인자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4 1071
공지 '정해정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4 1065
공지 '이영숙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3 1133
공지 '안선혜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3 1011
공지 '박효근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1 1040
공지 '장정자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1 1027
공지 '미미박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1 1030
공지 '최영숙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0 1038
공지 '이성열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0 998
공지 '정찬열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10 1015
공지 '장효정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09 1068
공지 '손용상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09 1070
공지 '오연희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06 1127
공지 '이윤홍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05 1076
공지 '차신재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05 1016
공지 '윤혜석의 문학서재'가 개설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7.01 1079
공지 '김명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30 1073
공지 '고대진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30 1080
공지 '최상준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30 1057
공지 '전지은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27 1036
공지 '박봉진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27 1149
공지 '홍인숙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27 1194
공지 '기영주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20 1058
공지 '최문항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15 1040
공지 '김현정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14 1067
공지 '연규호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12 1093
공지 '홍영순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12 17095
공지 '이용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08 1030
공지 '김태수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07 1067
공지 '김수영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05 1097
공지 '김영문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05 1045
공지 '김희주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04 1058
공지 '박인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5.04 1061
공지 '노기제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30 1078
공지 '김학천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30 1095
공지 '이용우의 문학서재'가 개설 이전 완료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30 1061
공지 '최미자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9 1044
공지 '김영강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9 1112
공지 '조옥동, 조만연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8 1507
공지 '성민희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7 1072
공지 '전상미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7 1055
공지 '한길수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7 1077
공지 '박영숙영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4 1125
공지 '채영선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3 1352
공지 '강학희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3 1088
공지 '정국희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22 1086
공지 '성영라의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2] 미주문협관리자 2015.04.17 1128
공지 '안경라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17 1192
공지 '고현혜(타냐고)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4.14 36335
공지 "김영교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3.25 1123
공지 "석정희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3.24 1187
공지 "장태숙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3.23 1084
공지 "이월란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4] 미주문협관리자 2015.03.22 1151
공지 '문인귀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3.21 22587
공지 '정용진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3.20 1085
공지 '이주희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3.19 1216
공지 "유봉희 문학서재"가 이전 완료 되었습니다. 미주문협관리자 2015.03.18 1209
1808 시인들의 시로 쓴 자화상/샌디에고 문장교실 강론 초록/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2.10.14 949
1807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윤철 김학 2013.12.16 937
1806 꽃의 시학(詩學)(2)) 꽃은 사랑이다./鄭用眞 詩人/증보편/ 정용진 2012.09.23 875
1805 아름다운 고국 8도 기행.2/정용진 시인(2) 정용진 2014.02.27 869
1804 꽃의 시학(詩學) 3.(꽃은 희망이다.) 정용진 2009.08.28 864
1803 꺼꾸리/김효순 김학 2013.08.02 856
» 북유럽 기행( 러시아. 핀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정용진 시인 정용진 2014.07.01 855
1801 꽃의 시학(詩學) 2.(꽃은 사랑이다.) 정용진 2009.08.28 835
1800 초상화 그리던 시절의 박수근 / 박완서(朴婉緖, 1931-2011 ) 김영교 2011.01.23 828
1799 한국 대전 방문한 석정희 시인 내외분, 한국 일간지 충남일보 연재소설 '대흥동 연가'에 소개 화제 나은 2007.06.11 824
1798 꽃의 시학 (2) 꽃은 사랑이다 정용진 2008.02.05 805
1797 秀峯 明心寶鑑/증보편/秀峯 鄭用眞/(1) 정용진 2011.04.03 805
1796 전북 임실군 삼계면 박사골은 142명 박사 배출, 면단위 전국 최다 김학 2009.10.05 804
1795 오늘 현재 460만명이 읽은/죽음의 시학/'구글 한글에 들어가 '죽음의 시학'확인/정용진 정용진 2011.12.06 802
1794 꽃의 시학(詩學)(1) 꽃은 시다./鄭用眞 詩人/증보편/ 정용진 2012.09.23 800
1793 본관별 족보 김학 2012.03.14 7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