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05 15:33

걸어다니는 옷장

조회 수 209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걸어다니는 옷장


                                                                 이 월란




그녀의 옷장엔 색색가지의 운명이 걸려 있어
그녀는 매일 운명을 갈아 입지
아침마다 야외 무도회에 나가듯
새로운 가면을 망토처럼 온 몸에 두르고 나간다는데
그녀가 새로운 변장을 서둘러 총총 사라지고 나면
쇠털같은 세월로 짠 쥐색 카디건
트인 앞자락에 누군가의 눈동자같은 단추가 쪼르르 눈을 감고
낙엽의 천으로 지은 바바리 서늘한 가을바람 소릴 내지
건드리면 바스라지는 노목의 진 잎처럼
추억의 조각천으로 꿰매진 자리마다
몽친 실밥덩이 애가 말라 비죽이 나와 있고
꼭 끼는 옷일수록 그녀는 차라리 편했다는데
이 넓은 세상이 꼭 끼지 않던 순간이 언제 있었냐고
저 헐렁한 지평선도 내 몸에 꼭 끼는 옷의 솔기였을 뿐
그래서 봄타듯 여기저기 늘 근질근질하였다고
봉합선이 튿어진 자리마다 낯뜨거운 맨살의 기억
씨아질 하듯 목화솜처럼 흩날리면
벽장 속에서도 혼자 노을처럼 붉어져
말코지에 걸린 모자 속엔 말간 기억도 자꾸만 좀이 쓸고
날개가 퇴화되어버린 벽어 한 마리 질긴 씨실에 갇혀 있지
널짝같은 그 옷장엔 흰 옷이 자꾸만 늘어
수의가 흰색이었지, 아마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3 부동산 공식 김동원 2008.05.06 304
» 걸어다니는 옷장 이월란 2008.05.05 209
501 사람, 꽃 핀다 이월란 2008.05.04 221
500 통성기도 이월란 2008.05.02 172
499 아름다운 비상(飛上) 이월란 2008.05.01 214
498 밤 과 등불 강민경 2008.04.30 119
497 시나위 이월란 2008.04.30 261
496 동굴 이월란 2008.04.29 130
495 미음드레* 이월란 2008.04.28 205
494 가슴을 이고 사는 그대여 유성룡 2008.04.28 189
493 진실게임 2 이월란 2008.04.27 171
492 흔들리는 집 2 이월란 2008.04.25 353
491 증언------------구시대의 마지막 여인 이월란 2008.04.24 265
490 내 마음의 보석 상자 강민경 2008.04.22 294
489 새벽길 이월란 2008.04.22 154
488 꿈길 이월란 2008.04.21 221
487 침략자 이월란 2008.04.20 110
486 도망자 이월란 2008.04.18 159
485 춤추는 노을 이월란 2008.04.17 115
484 어떤 진단서 이월란 2008.04.16 109
Board Pagination Prev 1 ... 84 85 86 87 88 89 90 91 92 93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