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하//시인의 특강 중에서//박경리 토지문화관에서
2006.11.15 15:36
그 시절 저는 하루 열 다섯 시간씩 시를 썼어요.
그래서 제 집사람이 어느 날 시커멓게 된 제 엉덩이를 보더니,
당신은 죽으면 엉덩이가 제일 빨리 썩을 거라고 그랬지요.
시 쓴답시고 오래도록 앉아 있으니까 시라는 게 몇 줄 되지도 않지만
한 문장 가지고 하룻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잖아요.
시라는 게 원고지가 팍팍 넘어가는 것도 아니면서
한 줄 두 줄 가지고서 밤을 새워야 할 때가 있다는 거죠.
제가 첫 시집에 썼던 <사마귀>같은 작품은 무려 아흐레 동안 계속 썼어요.
쪽수로는 겨우 두 쪽 분량의 시인데, 행으로 따지면 한 삼십 행쯤 되지요.
이 시를 아흐레 정도 썼다는 것이죠. 물론 계속 쓴 것은 아니고,
이틀 밤에 어느 정도 썼는데, 고치고 또 고치고 계속 들여다보며
수정을 한 것이지요.
아무튼 그렇게 열 몇 시간씩 앉아서 창작을 했는데,
그렇게 하다가 나가서 시인들 만나보니 나처럼 열심히 쓴는 사람이
손가락 꼽을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 내가 열심히만 하면 길이 있겠구나!
생각을 하며 문학을 해 왔는데 여기까지 왔죠.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