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시인에게 물었네 ‘시시(詩詩)콜콜’

2005.07.11 08:49

미문이 조회 수:1364 추천:80


강은교 詩해설서 ‘詩에 전화하기’ 48명에 전화·이메일로 “詩가 무엇입니까”질문
죽은 사람과는 가상대화


“시를 쓸 때 나는 먼저 손을 씻고 교자상에 앉는다. 볼펜으로 원고지에 쓴다… 낮은 상에서 쓰는 것은 평상심을 낮은 상이 더 유지해주는 것 같아서이다….”(시인 천양희)

“메모를 안 하면 잊어버리기에 항상 메모지와 몽당 연필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마음이 놓입니다. 때로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하든가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나더러 잊지 말고 이런 것 쓰라고 하세요!’ 하고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시인 이해인)

한 시인이 여러 시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가 무엇이냐고, 시는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다. 강은교 시인(동아대 문창과 교수)의 독특한 시 해설서 ‘시에 전화하기’(문학세계사)는 그렇게 시인과 시인의 대화로 태어났다. “원체 저는 전화 공포증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 쓰기에 대한 답이 보이기도 하여, 점점 재미에 빠졌죠. 어떤 저녁엔, 거기에다 온 희망을 걸기도 했습니다.” 강 시인은 지난 5년 동안 매주 토요일 시 한 편을 비평적으로 음미한 기록을 작성하면서, 그 시를 쓴 48명의 시인들과 전화 혹은 이메일로 시 창작의 비밀을 주고 받은 대화록을 덧붙였다.

‘곰삭은 흙벽에 매달려/ 찬 바람에 물기 죄다 지우고/ 배배 말라가면서/ 그저, 한겨울 따뜻한 죽 한 그릇 될 수 있다면’(윤중호의 ‘시래기’)

지난해 48세로 타계한 윤중호 시인이 짧은 생만큼이나 짧게 토해 낸 시다. 강 시인은 그가 병상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시 ‘시래기’를 놓고서 이 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이 시의 구체적인 의미는?” “내가 쓴 시나 삶이 외롭고 허기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되었으면 고맙겠다는 얘기지요. 우리가 아무리 잘난 척하며 살아도 결국 우리는 모두 측은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시래기)이니까. 몸 안에 있는 물기(탐욕이나 욕심 같은 것)를 지워야 ‘따뜻한 죽 한 그릇’이 될 수 있겠지요.”

시인 황지우는 “감정의 소모가 많아 되도록 나는 다른 분의 시를 안 읽으려 하거나 읽기를 두려워 한다”며 “별로 안 좋은 시를 읽으면 언뜻 안도감이 들었다가 내내 짜쯩이 나기 때문이며, 좋은 시는 무한한 탄복과 함께 괜한 패배감이나 질투심을 유발하여 내 마음의 스케일을 시험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강 시인은 일찍 천상에 오른 시인들과 가상 대화도 가졌다. 1980년 보안사에서 억울하게 고문을 당한 후유증을 앓다가 폭음 끝에 생을 마감했던 시인 박정만에게 “시란 무엇이지요”라고 묻자 “당신의 가방 속에 있습니다. 그걸 꺼내세요. 그래서 당신이 가진 언어의 손수건에 얹으십시오”라는 상상의 답변이 울린다. 환한 꽃과 밝은 별의 이미지를 합쳐서 ‘꽃초롱 하나로 천리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라고 노래했던 박 시인이 했음직한 답변이다.

-조선일보 2005-05-02 박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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