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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시문학의 특색과 가치

2004.08.23 18:43

박영호 조회 수:418 추천:24

미주 한인 시문학의 특색과 가치
ㅡ미주 이민 시문학 어디까지 왔는가ㅡ

1) 출항하면서
미주에서 최초로 쓰여진 미주한인 시문학 작품은 일찍이 1905년에 하와이 마우이 섬으로 이주한 최용운(崔龍雲) 여사에 의해서 쓰여진 시(4연 8행의 시, 제목 미상)가 미주에서는 최초로 쓰여진 시인 듯 싶습니다. 육당 최남선씨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가 거의 같은 시기인 1908년에 발표 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우리 미주한인 시문학도 고국의 근대문학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국의 근대문학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된 미주한인 시문학은 백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의 강물 속에서 미주 한인 이민역사와 함께 그 맥을 같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그 동안의 변화되어 온 과정에 대한 연구나 기록이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그래도 비교적 많은 자료 등이 수집 정리되어 가고 있고, 연구 또한 활발한 편이나, 미주 한인들의 이민 생활의 구체적 삶의 모습이나 민족정서 등 정신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문학작품에 대한 연구발표는 아직 미진한 편입니다. 다만 일부 문학활동을 위주로 한 부분적인 해설이나 자료에 대한 소개 등, 단편적인 연구 발표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은 부분적이고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연구 발표가 이루어 지지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연구 정리는 미주한인 시문학의 보다 큰 발전을 위해서 보다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겠고, 다양한 방법에 의한 구체적인 연구 발표로 미주한인 시문학이 지니고 있는 특색과 가치가 밝혀져야 하리라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 스스로가 미주 한인 시문학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우리 스스로 미주 시문학의 위상을 정립시켜 나가야 하리라 믿습니다.

2) 미주 시문학의 실상
1900년대 벽두부터 시작된 미주 한인 시문학은 초기에는 한정된 이민 인구와 함께 한정된 작품 발표 지면 때문에 별다른 큰 발전이 없이 그 활동이나 내용이 미미했으나, 미 케네디대통령의 뉴푸론티어 정책에 의한 개정이민법 (1965년 제정, 1968년 발효) 시행으로 1970년대 이후 한인 이민이 대량 유입되어 그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오늘날양적 질적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지요. 특히 1980년대 들어서서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미주 시문학의 내용이 종전까지 주류를 이루어 오던 고국의 전통적인 순수 문학적인 시의 세계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 등, 고국의 모든 문학 형태가 그대로 다양 하게 나타나고 있고, 특히 이민 시문학의 경우는 종전의 전통적인 모습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는 등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미주에는 약 150여명의 시인이 시작 활동을 하고 있고, 대도시를 중심으 로 20 여개의 년간, 계간 순수 문예지와 일간신문 지면등을 통해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작품활동의 구조적인 면을 살펴보면 생각보다는 꽤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음 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이민 1세들을 위주로 모국어를 사용하는 ‘미주한인 문학’ (Korean Literature of America)과 이민 1.5세나 2, 3세를 위주로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 소수민족 문학의 하나인 ‘한인 아메리칸 문학’(Korean American)이 있어서 이중적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용 언어도 그렇지만 내용 또한 이민 1세 문학은 주로 고국 지향적인데 반해, 이민 2,3 세 문학은 현지 지향적인 점이 상반된 점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 하나의 특색 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민 1세들의 시작 경향은 대체적으로 고국의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흐름을 따라 고국의 유명 시인이나 고국 시작풍조나 경향을 그대로 지향해 가는 형태이고, 작품 발표 또한 이곳 한인이나 고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이민 2,3세의 경우는 결국 이곳 본토 영어시문학 형태를 그대로 닮아가는 경우이고, 발표 대상도 현지인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근원적으로 각기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서로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민문학이지요. 다만 한인 1세를 위주로한 한인 이민문학은 과거인 고국에서 현재인 새로운 고향인 이국 문화를 찾아가는 것이고, 2.3세들의 이민 문학은 대체로 현재인 이국에서 과거인 조국을 찾아가는 경우이나, 여기에서 말하는 과거의 고향이나 새로운 고향은 모두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이민 문학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고, 주체성이나 정체성(正體性) 또한 모두 향수의 미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국을 찾아가는 길인 점에서는 결국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미주 한인 시문학의 특색과 가치
이처럼 미주 시문학의 구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민 사회의 복합적인 구조와 다름 없이 그 구성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여, 이민 세대에 따라 다르고, 표현 언어에 따라 다르고, 작품 속의 문화에 따라 다르지요. 이처럼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구조가 미주 한인 시문학이 지니고 있는 하나의 특색이라고도 할수 있지만,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세대차나 표현 언어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두루 나타나고 있는 이민문학 이라고 하는 시문학의 세계가 바로 미주 시문학이 지니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며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민시가 미주 시문학의 전부는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이민 시문학을 통해서 우리의 문학과 우리의 문화를 고국에 앞서 현지에 알리고, 아울러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도 앞장 설 수 있는 이민 시문학의 특별한 가치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캐시 송(Cathy Song)의 ‘사진신부’ (Picture Bride.1982) 라는 한편의 이민시나, 이창래의 ‘원주민의 소리’ (native Speaker,1995)라는 한편의 이민소설이 국내 어느 대가들의 작품에 앞서 이곳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문학과 문화를 소개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참작해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이민 1세들의 모국어 시문학이 미국문학에 접목되는 방법이 문제로 대두 되지만, 이것은 이차적인 문 제이고 또한 그 방법이 요원한 것만은 아닙니다. 자기 모국어로만 글을 쓴 노벨 수상자 도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손쉽게 이해가 가겠지요.
아무튼 이러한 이민시문학의 구실이 바로 미주 시문학의 특색과 특별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고, 이처럼 보다 손쉽게 우리 미주 시문학의 문학성을 높일 수 있는 이민시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이를 중심으로 한 창작과 연구에도 힘을 기울여야 하겠고, 민족 이민 역사와 함께 국문학사적인 측면에서라도 바른 평가에 대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제 오늘의 미주한인 시문학에 나타나고 있는 두개의 강물과도 같은 대표적인 두 갈래 의 유형 즉,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한국의 현대시와 고국에서는 볼 수 없는 이민 시문 학의 시를 중심으로, 오늘의 미주 한인 전통시와 오늘의 미주 한인 이민시가 어떤 모습 으로 변해가고 있는가를 ‘미주문학 2003년 여름 호’를 중심으로 살펴 보기로 하지요.

4) 철학적 사색과 서정의 조화
미주 한인 시문학에 나타나고 있는 한국시의 형태는 고국의 시문학의 축소판처럼 거의 모든 형태의 시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형태는 한국의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순수 서정시의 형태라고 하겠습니다. 시대에 따라서도 큰 변화없이 늘 큰 강물처럼 전해 내려오는 고국의 고전적인 서정시 형태가 이처럼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고국 지향적인 미주한인 1세 문학의 특색을 감안하면 당연한 귀추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유형의 시들 중에서 시의 본질적인 면에 충실한 시라고 여겨지는 고원 시인의 ‘별의 그림자’ 를 인용해 보았습니다.

별마다
그림자를 내림니다

죄많은 발이
그림자를 밟습니다

무섭네요
그런데도 즐겁습니다
고 윈 ‘별의 그림자’ (미주문학 2003년 여름호)

이 얼마나 간결한 표현입니까
단 열마디의 단어와 세연 여섯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산이나 바다보다 더 높고 크고 깊습니다. 자연과 인생, 그리고 신앙이라는 무겁고 깊은 철학적 사색을 손쉬운 단 몇 마디의 언어로 별빛처럼 밝고 아름답게 그리고 손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단조로운 시라고 하기엔 오늘날의 시가 시의 본질의 하나인 ‘상징과 생략’ 이라는 점에서 너무 멀리 떠나와 있다고 하겠고, 요사이 많이 쓰이고 있는 언어의 유희나 지나친 치장으로 시의 본질인 리듬을 잃어가는 난해한 장문의 시들에 대한 하나의 본보기 가 될 수도 있겠지요.
별의 가장 큰 의미는 상징성일 것입니다. 별처럼 많은 상징성을 지닌 어휘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의 모든 사물일 수도 있고, 무한한 수의 개념일 수도 있고, 각기 지니는 아름다움일 수도 있고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영원과 생명을 상징하는 빛과 신앙일 수도 있고, 그래서 시인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아무튼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별이 내리는 그림자는 신의 섭리이고 자연이며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일 수도 있습 니다,
그래서 자연과 신에 대한 인간의 회한(悔恨)을 죄 많은 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죄많은 발로 인해 자연과 신에 대한 외경(畏敬)스러움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다시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새 생명의 발견에 대한 즐거움을 느낀다는, 자연과 신에 대한 외경스러움과 함께 새 가치의 발견에 대한 미학적 환희가 이 시의 주제로 나타나고 있지요, ‘별의 그림자’라는 전혀 꾸밈이 없는 표현으로 이처럼 무거운 자연과 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표현하기란 그렇게 손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원 시인의 많은 시가 이처럼 별이 중심 소재가 되고 있는 점을 참작하면 우리는 고원 시인의 시의 세계를 이 짧은 한편의 시를 통해서도 손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별의 시인’ 바로 그렇습니다. 평생 별빛을 찾아 우주를 떠도는 고원 시인이 바로 별의 시인입니다.
이정표가 없는 정거장을 떠난 고원 시인의 별을 향한 시의 세계가, 꿈과 새로운 고향을 찾아 무수한 별그림자 속을 떠돌다가, 결국은 다시 별의 고향으로 되돌아와, 별의 그림 자를 밟고 서서 회한과 경외의 심정으로, 다시 영원한 꿈과 생명을 향한 우주 정거장을 향해 궤도없는 여행을 꿈꾸는, 즐거운 동심의 세계가 바로 고원 시인의 별의 역정 (歷程) 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의 형식 또한 단순하고 손쉬운 구성으로 이원식 대치법에 의해 시의 내적 외적 리듬이 잘 정리된, 시의 구성원칙에도 충실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꾸 간결하고 단순해지려는 고원 시인의 시작 경향이나 의도가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시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무언가 바르고 깊은 생각을 우리에게 아름다운 감동으로 바꿔줄 수 있는 것이 시의 구실의 하나라고 한다면, 이러한 구실에 충실한 ‘별의 그림자’ 같은 시가 결국 우리가 찾는 표본과 같은 좋은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처럼 이지적이고 관념적인 생각을 서정적 감동으로 조화시킨 유형의 시를 한편 더 살펴 보지요. 최선호 시인의 ‘가을 풀잎’ 입니다.

ㅡ 전략ㅡ
이제 남겨야 할말은
무엇이며
흔들고 싶은 마지막 깃발은
어디 있느냐

가을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너의 넋은
몇만 가슴 흐느껴야
이땅에 가득할
새싹으로 태어나느냐

빈들에
떼죽음 당하는 목숨들아
최 선호 ‘가을 풀잎’ 에서(미주문학 2003 여름호)

이 시 역시 자연을 통한 인생과 신앙에 대한 관조의 세계를 자연과의 상호 교감 (交感)에 의한 대중적이고 사회적인 회한(悔恨)과 함께 참된 인간 사회와 가치있는 생명 에 대한 열망이 잘 나타나 있는 신앙적인 주제가 담긴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 고원 시인의 시의 내용이 개인적이고 명상적인데 비해 최선호 시인의 시는 대중적이고 교화적 (敎化的) 이고 호소력있는 동적 리듬으로 구성된 시라고 할 수 있겠고, 두분의 시가 역시 비슷한 철학적 관념의 세계를, 별이나 풀잎 등 자연이라는 같은 매체를 통해서, 가벼운 서정으로 순화시킨 그 기법이나, 우리의 생명과 삶에 대한 가치를 자연과 종교를 통해 관조하며 반성을 통한 참된 생명의 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한 주제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이 두분의 시처럼 인간의 바른 가치나 바른 생각 등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주제가 정서적으로 잘 표현된 시가 비교적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5) 인간에게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
우리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 하나는 바로 앞서 두분의 시에 주제로 나타나 있는 인간의 바른 생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착하고 고운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 이라 고 할 수 있겠지요.
앞에서 밝힌 두분의 시가 우리 인간의 삶에 대한 바른 자세나 바른 생각을 표현한 시라고 한다면, 다음에 인용하고 있는 시는 우리 인간의 진실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의 정서를 나타 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략-
애석도 하여라
그 다음해 찾아간 산소
몸부림치며 뿌린 눈물로
풀썩 자라버린 묏자리 잔디
막내야 막내야 부르시며
쑥쑥 헤집고 나오시어
내 등을 쓰다듬어 주시네

벌초하시는 오라버니 손을
한사코 말리고 싶었네
햇빛 눈부신 파아란 풀잎들 사이
어머니 얼굴 너무나 선명하여
더듬어 어루만지며 통곡을 쏟았네

세상 모든 이름 위에
항상 빛나는 이름 석자 ‘어 머 니’
내 가슴 가장 높은 곳에 있네
김 영교 ‘어머님 전 상서’에서 (미주문학 2003 여름호)

이 시는 달리 해설이 필요치 않게 아주 손쉬운 표현으로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감동입니까? 이 시인은 비교적 물방울 같이 영롱 하고 조약돌처럼 단단한 어휘들로 마치 구슬을 엮어내듯 시를 엮어가는 분인데도 이 시에서는 전혀 그런 흔적이 없이, 시의 상징성이나 수사적인 기교조차도 전혀 없는 묘사 가 아닌 차라리 서술에 가까운 표현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까닭은, 바로 이 시가 시 의 가장 소중한 생명의 하나인 우리의 ‘아름다운 마음의 서정’이 전혀 꾸밈이 없이 진솔 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지요. 이처럼 꾸밈이 없는 진솔한 시가 더러는 지나 치게 치장된 한 편의 시보다 더 감동을 주지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러한 서정의 미학이 우리 인간사회 가치의 근원이 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며, 만일 그러한 가치가 부정되는 사회가 있다면 인간 본연의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경우가 되겠지요. 현대시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시가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의 하나가 아마도 이러한 시의 본질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용된 시들 이외에도 여러 형태의 현대 한국시가 많이 있고, 좋은 시도 많이 있으나 그러한 시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이제 미주한인 시문학의 특색과 가치가 되고 있는 이민시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6) 변모되어 가는 향수의 미학
1900년대 벽두부터 시작된 우리 이민 시문학은 1970년대 대량 이민 유입이 시작된 19 70년대까지,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10여년이 훨씬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도 이민 시문 학은 그 소재나 주제가 이민 초기와 별 다름없이 주로 이민 생활의 고통이나 애환이나 갈등과, 그래서 나타나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귀향의 꿈같은 극히 근원적이고 개인적인 내용이 주로 자전적, 실상적(實狀的), 그리고 주로 서사적(敍事的)인 표현 방법에 의한 이민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지요. 이러한 일반적인 향수의 미학은 우리가 숙명적으로 지니고 살아가야 할 원천적인 것이고, 그래서 이민행렬이 그치지 않는 한 이런 이민시 의 형태는 앞으로도 계속 쓰여질 것입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표뵨처럼 쓰이는 일반적인 이민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한 편의 시를 인용해 보지요.

-전략-
죽으면 비가 되어
아직도 남아있을 아버지의 노래에
장단 맞추며
고향집 양철 지붕을 두드리리라

비가 되면
내가 자주 걷던 그 시냇가
이끼낀 바위틈을 흘러 바다로 가서
호수같은 고향바다 반짝이게 하다가,

이른 아침 안개되어
하늘로 오르리라
그리고 다시 비되어
마음에 묻어둔 고향 땅 다시 적시리라

김 옥례 ‘비의 노래’에서 (미주문학 2003년 여름호)

이 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죽어서라도 고향을 찾아 가겠다는 죽음을 초월한 절대절명의 귀향의 의지를 나타낸 망향 서정시로, 이민시의 가장 근원적이고 표본과 같은 시입니다. 이민 사회의 모습이나 삶에 대한 그 어떤 표현도 없이 그저 원천적이고 숙명적인 것으로 향수를 피닉스적인 미학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지요. 더욱이나 마지막 4연에서는 내린 비가 다시 구름 되어도 다시 비가 되어 고향에 내리고 싶다는 영원을 향한 귀향의 열망을 표현하고 있고, 그 표현 방법 또한 내린 비가 시내에서 강으로 흘러 바다로 흘러가듯 전체적인 리듬의 효과가 단숨에 거침없이 흘러 내리고 있고, 특히 둘째 연에서의 청각적인 리듬의 효과는 정말 소나기 소리가 양철지붕 위에 바로 떨어지고 있듯 경쾌하고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네요.
아무튼 이러한 이민시는 향수와 귀향의 의지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시로서 지금까지 가 장 널리 쓰이는 형태이고, 이민시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이라고 하겠지요.
이러한 일반적인 모습의 이민시가 1980년대부터는 종전의 일차적인 모습에서 한 걸음 발전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민의 삶이란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새로운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떠나온 고향이나 찾아가는 고향은 같은 것인데, 새로운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더러는 우리 가슴에 지니고 있는 고향에 대한 회의(懷意)등, 그 모습이 바뀌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고향을 찾아 가기 위한 몸부림이며 당연히 겪어야할 숙명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진정 우리가 찾아가는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향수의 미학은 우리의 영혼속에 녹아있는 생명의 근원이며 꿈의 근원이긴 하지만, 이것이 폐쇠적이고 부동적이어서는 안되고 미래를 향해서 늘 움직여 변화되어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로 이중문화에서 발생되는 충돌이나 혼란과 갈등 속에서 나타나게 되지요. 그래서 변화되어가는 고향의 모습과 함께, 민족 정체성 같은 새로운 문학 개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민시의 새로운 모습은 우리 이민사회의 발전과 함께 이민 시의 세게가 일반적인 모습에서 이제 이차적인 발전적 단계에 진입되어가는 현상으로 볼 수 있지요. 어떤 필자는 이러한 변화가 대량 이민 초기인 1970년대 중반부터 이미 이민 1세의 작품 속에서 정체성의 문제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시기만 해도 떠나온 과거인 고국을 잃지 않고 붙들고 살아가려는 이민 1세들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 싶습니다.
이제 미주 한인들이 발표하고 있는 이민시들 중에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시를 인용해서 그 모습을 살펴 보기로 하지요.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면 못 자도록 아프고 곪는다. 끓는 기름에 물방울이
튀면 길길이 뛰며 되튕겨낸다. 백인촌에 흑인이나 멕시칸, 황색인이 이사
들면 집값이 뚝 떨어진다. 이물질끼리 섞이면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인간과 짐승 사이에 양다리 걸친 원숭이. 천만 년이 지나도 인간도못되면
서 인간 흉내의 천재, 줄만 보면 남사당, 제 몸에 이 방목하고 잘근 잘근
씹어먹는 야만족, 어쩌자고 꼬리밑의 빨간 뒷부분은 만년 노출증인지.원
숭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해종일 무재수의 기분에 사로 잡힌다.

- 후략 -
김병현 ‘동류’ 에서 (미주문학 2003년 여름호)

3 연으로 구성된 김병현 시인의 동류(同類)라는 제목의 산문시에서 첫째연과 두째연을 인용 했습니다. 시인은 3연의 시의 내용을 3막으로 된 연극처럼 꾸며쓰고 있습니다.
첫째연의 막이 오르면 동류(同類)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순리를 역행 하는데서 나타나는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시인은 손톱 밑에 박힌 가시로까지 그 아픔을 호소하고 있고, 이민의 삶과 인종 문제, 그리고 문화적 충돌 등, 모든 이질적인 요소들이 근원적으 로 화합이 될 수 없다고, 거부 반응이라는 물리적 현상까지 들어가며 이민사회의 모습을 무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인종 사회란 원천적으로 종족의 화합이나 문화적 조화가 이루지기 힘들다는 극히 부정적인 견해가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지요.
다음으로 두째연의 막이 오르면 원숭이가 등장하고 남사당의 줄넘기를 시작합니다. 원숭이라고 하는 알레고리를 통해서 냉소적인 표현으로,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듯이 우리 미주 한인이 결코 미국인이 될 수 없다는, 이민의 삶에 대한 부정적인 회의와 우리 자신에 대한 자각을 밝히고, 동족끼리 기생 (寄生) 또는 방목(放牧)해서 해를 끼치고, 이 곳 저곳에 빨갛게 치부를 드러내는 야만족이라고 울분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야만인의 집단은 이곳 미주 교포들을 지칭한 것일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가 매일같이 바라보는 바다 건너 원숭이들이고 남사당인 고국의 일부 모습이나 집단일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지나친 냉소나 울분은 결국 우리 동족을 아끼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 는 동류의식의 소산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결국 이 시 속에 나타나고 있는 모습은 향수의 미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중문화나 이중국 적의 인간성이나 사회에 대한 갈등과 혼란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이나 모순 속에서 나타나는 자각이나 비판의 자세가 결국 보다 큰 화합이나 조화에로 접근을 가능케하는 계기가 될수 있다고 하겠지요.
다음에 인용하는 김신웅 시인의 ‘흔들리는 향수’도 역시 이와 비슷한 모습을 나타나고 있습니다.

밤마다 귀에 들리는 빗소리
머언 산에서 눈으로 쌓이고
가슴에서 강으로 모여 바다로 간다
빗방울 하나 눈송이 하나
큰바다 되어 거기 그려지는 소나무
학이 날고 참새들 와 쉬는데
그 언덕에 세워지는 탄탄한 향수
가슴으로 역류해 오면
다시 머언 산에서 몸풀어
만나는 바다에 바람이 일고
그 언덕 소나무위 학을 쫒아
탄탄하던 향수마져 흔들어 놓는다.
김신웅 ‘흔들리는 향수’(미주문학 2003년 여름호)

시인은 밤마다 귀를 열어 고향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먼 산에 쌓이는 눈을 보고 강을 보고 바다를 봅니다. 이처럼 가슴을 통해 그려보고 느끼는 고국의 모습이 움직이는 영상처럼 상상이나 환상을 통해 꿈속같은 고향 동산 언덕에 소나무가 서고 학이 날아 오릅니다. 이처럼 가슴속에 깊게 짙어만 가는 향수가 바다에 바람이 일어 가슴 속의 향수가 흔들린 다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향수를 흔드느 바람은 고국에서 역류해 오는 실망스러운 모습일 수도 있고, 또 현지의 모습이거나 아니면 시인 자신의 마음에 이는 바람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는 시의 제목처럼 향수의 세계가 흔들리는 과정이 서경적(敍境的)인 서정의 흐름을 통해 흔들림이 나타나고 있는 모습으로, 김병현 시인의 ‘동류’(同類)와 비슷한 동류의 주제가 나타나고 있는 동류의 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위에 인용한 두 시의 세계는 앞서의 ‘비의 노래’ 와 같이 고국에 대한 향수나 이민의 삶에 대한 실상의 서정을 노래한 일차적인 이민시들과는 퍽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지요. 이렇게 변화되어 가는 모습은 바로 미주한인 이민시가 한걸음 발전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세계가 바로 앞으로 우리 이민시가 지향해 가야할 새로운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이물질이 섞이면 당연히 거부반응이 나타나지만, 더러는 화학적 반응에 의해서 나타나는 새로운 소재(素材)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소재가 결국 물질 문명을 향상시켜 나가듯, 우리도 우리가 부딪치는 문화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거부반응 같은 혼란이나 갈등내지 자각을 통해서, 새로운 화합과 동화나 조화가 이루어 진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조화된 이중 문화인이나 이중 문화가 나타나게 되고, 나아가서 새로운 세게문화 창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미주 이민 시문학도 이러한 미래를 향해서 꾸준히 변모 발전되어 가리라고 믿으며, 현재에도 부분적으로니마 그러한 미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주 한인 이민시의 미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로 미루고, 이제 우리 미주한인 이민 시문학이 이땅에 꽃을 피우고, 새로운 고향을 이룩해 가리라는 밝은 미래를 기약하면서 이 글을 끝맺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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