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수필 - 서정의 물레방아 / 김영교

2017.01.09 05:05

김영교 조회 수:130

서정의 물레방아

 

금년 마지막 8월 주말은 특별했다. 9순 노모를 모시고 사는 동아리 멤버의 자기 집 초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참석하기로 약속하고 다 모이는 날이라 마음에는 이미 날개가 붙었다. 사업체 돌보랴 취미생활 하랴 참으로 부지런한 서정 선생이다. 내 아호가 남정이라 또 약학전공의 죽은 누이와 동문이라 나를 누님이라 부른다. 그가 틈을 내 자기 집을 팀 멤버들에게 오픈한다는 의미는 단합대회 차원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텃밭* 전체를 공급 받은 듯 환성을 터뜨린 우리들이었다. 금년은 현지답사 설렘을 안고 그 화창한 날씨에 그 현장에 달려갔다. 재충전을 위한 작은 소풍( field trip)이었고 침체를 소통하는 환기 작업이었다.

 

Los Angeles K 타운 도심 한 복판 주택가에 자연 농장이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으리라고는 짐작이나 했겠는가. 뒷마당 닭장엔 암탉이 4마리, 진돗개가 3마리, 7,8년 정붙이 50마리 남짓한 각가지 잉어들, 홍고, 노고, 백고, 중고, 흑고등 골고루 종류대로 사이좋게 수련사이를 몰려다닌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물레방아는 필터작업을 하고, 햇볕이 기웃대는 지붕 끝에는 풍경이 제구실을 하며 운치 있는 이 작은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행복한 물레방아였다. 순간 행복하지 못한 나도향의 단편소설 <물레방아>가 떠올랐다. 여기는 뒷마당 전체가 텃밭이고 닭장이고 과수원이다. 서정선생의 이 아담한 연못은 주위와 어울리는 행복한 물레방임을 금방 알아차리게 했다. 봄이면 백도 복숭아와 블랙 체리나무, 감나무들과 대추나무에는 지금 과실들이 빽빽하게 달려있고 적당한 볕과 그늘이 오가며 호박넝쿨, 오이, 포도, 도마도, 고추, 옥수수, 깻잎 등등 거기에 수석수집도 한 몫 보태어 자연 농장 축소판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가 가족이었다. 사계절을 연주하는 모두가 음악이었다.

 

자연농법도 배우고 과수들의 내력도 듣고 나무를 파 다듬고 베는 목각서예 강의도 들었다. 전통된장 요리강의도 곁들여 들었다. 새들도 날아와 재잘댄다. 빨강 고추잠자리도 보였고 풍뎅이 따라 붕붕 구름 없는 하늘에 올라도 갔다. 시야 가득 늦여름의 파란 하늘이 와서 안겼다. 쑥 송편과 쑥떡, 선인장 쥬스에 뒤뜰 농작물로 꾸민 참으로 친환경 식탁이 아름답게 우리들 가슴으로 확대되었다. 싱싱한 상추쌈, 호박된장 찌개, 부추 부치게 등 행복한 입맛은 어릴 적 고향의 엄마를 기억나게 했다. 정성담긴 이 여름식탁을 우리는 오래 오래 기억할 것이다. 입맛도 재료도, 우정도 모두 무공해, 친환경 신토불이였다. 많이 웃고 즐거웠다. 느슨해진 일행은 건강으로 발 돋음 했고 생명이 춤추게 했다. 모두에게 된장 조금씩 안겨줬다.

 

뒤뜰 한 귀퉁이 나무 밑에 안고 오신 화분 2개를 내려놓으신 게 눈에 뛰었다. 멀리 사는 이 목사님이시다. 알고 보니 섬세한 흙손을 필요로 하는 화분인데, 하나는 주인 농부에게 나머지는 내 몫이라 구별해 주셨다. 그 목사님이 정성스레 안고 오신 잘생기지 않은 화초지만 싱싱하고 순해보였다. 그 약초이름은 <바나바>. 처음으로 바나바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성경에나 나오는 바울의 동역자 사람 바나바와 새로 우리 집에 입양된 식물 바나바가 앞바퀴 뒷바퀴로 팀을 이룬다. 나의 일상을 신나게 이어갈 것을 확신하며 내 너를 잘 키우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이 두 바나바를 알고 지내는 나의 기쁨이 작지만 예사롭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역사 속에 강력하게 살아있는 사람 바나바, 뒷뜨락에 내려서기만 하면 나를 사로잡는 화분속의 바나바 쌍떡잎... 암에 좋고 당뇨에 특효라는 약초! 나의 병력을 가늠한 배려였다. 이렇게 우정을 다지고 문학을 논하고 지금은 건강에 서로 신경 쓰는 동아리가 되었다. 관심의 눈빛을 주고받는 이웃들이 있어 살맛나는 세상, 감사의 농장 주말 나들이였다.

 

부언하면 단편 물레방아는 1920년대를 풍미한 나도향의 대표 단편소설이다. 우리의 현실을 잘 묘사해서 그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투철한 작가정신을 내보였다. 그가 25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 눈 감을 때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물레방아>는 대표 단편소설이다. 평창에 살고 있는 친구 두이네 ‘허부나라’에 머물 때 강원도 봉평을 방문, 엄청 큰 물레방아를 직접 찾아갔다. 그 때 그 설렘의 맛은 향토적이었고 훨씬 향내가 짙었다. 서정의 물레방아는 연못과 어울리는 관상용 아담형이라 면적도 그리 크게 차지하지 않았다. 더 친근감이 솟는 서정의 물레방아는 콩콩 돌아가는 물줄기가 기억속의 마을 앞 기슭을, 역사를 스친다. 아늑한 농촌을 배경으로 가난했던 우리 농촌의 정서와 토착 냄새를 물씬 풍겨주는 나도향의 물레방아, 달밤에 처다 본 초가지붕의 박 넝쿨, 가슴이 싸 아플 정도로 아름다웠다.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물레방아를 지금 K 타운에서 만나다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풋고추, 애호박, 호박잎, 도마도, 포도, 깻잎, 홍상추, 오이등 무공해 채소들, 달걀, 대추, 감, 복숭아 등등 1/9/2017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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