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수필 - 구부러짐에 대하여 / 김영교

2017.01.09 05:35

김영교 조회 수:54

부러짐에 대하여 / 김영교

 

젓가락을 나는 좋아한다. 두 개의 직선이 절묘한 조화를 누리며 기능을 다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교 11회 졸업생이고 해마다 11월 11일은 동창 모임이 있다. 또 직선 두개 나란한 11월을 좋아한다. 지금은 헐벗은 작대기 두 개지만 언젠가 마주보는 두 그루 나무는 잎을 싹틔우는 희망이기도 하다.


구부러짐은 곡선이다. 직선을 좋아하는 내 이야기가 아니고 남편 자세 이야기를 엮는다. 그는 직선이었다. 큰 키에 똑 바른 자세라 내가 팔짱을 낄 때 편했다. 그는 늘 단단한 직선의 버팀목으로 옆에 있다. 지금은 남편이 곡선이다. 바로 목부터 허리로 흐르는 등골 그 선이 굽어있다. 목을 찾아오는 바람도 구부러져 닿는다. 곡선으로 완곡하게 그려지는 포물선 그림이 그이 뒷모습이다. 유연하게 구부러진 남편의 등선, 그토록 늠름하던 남편의 구부러진 목과 등은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남편의 사다리 낙상 후 들이닥친 통증 때문에 구부러져서라도 아프지 않으려 온 몸이 애쓰는 비상상태다. 아우성치는 내부의 통증이 예리하게 괴롭힐수록 그의 목 곡선은 허리 하단까지 완곡하게 구부러져 적응되어갔다. 따라 내 시선도 부드럽게 적응 되간다. 기대고 싶은 마음 대신 이제는 안아주고 싶다. 남편은 통증을 관리하느라 외모는 관심 밖이 되었다. 뻣뻣하지 않고 완곡해서 사람이 부드러워 뵈서 좋고 옷까지 느슨한 케쥬얼로 따라와 준다.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갈 때 구부려진다. 햇볕도 튀지 않고 스며들듯 해 부드럽고 푹신해 뵌다. 악보를 보는 지휘자의 부드러운 지휘 같아 금방 음악이 나올법하다. 그래도 나는 안타까워 침 치료차 LA까지 운전도 앞장섰다. 카이로 프랙터 병원도 동행, 한약도 복용, 산행도 시도했었다.


살다보면 생기는 사고는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사고 전에는 남편이 옷을 입으면 태가 나고 늘 멋있어 보였다. 그토록 자연스럽던 곧음이나 바름의 멋스러움도 통증 앞에서 멀리 밀려 날 수밖에 없었다. 느슨하고 헐거운 옷이 긴장을 덜어주는지 옷도 신발도 생각도 편한 쪽으로 기울었다. 늘 긴장 가운데 정점과 정점을 오가던 나는 한 박자 늦추어 남편의 속도를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덜 피곤하다. 덜 신경을 곤두세운다. 안 그래도 민감해서 날 세우는 피곤에서 한발 물러서는 우리의 나이다. 이제는 조금은 완곡하게 느리게 살고 싶어진다.

 

『토끼와 거북이』예화에서 누가 이겼는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빨리 간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끝없는 감사와 희망으로 험난한 자갈밭이라도 즐기면서 갈수 있다면 종내 행복한 주자의 발걸음이 되지 않겠는가. 요즈음 속도를 선호하는 나의 직선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 구부러져서, 휜 다음 돌아가서 느린 것이 ‘여유’라는 건강한 리듬으로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직립 보행 인간의 기본자세는 몸이 반듯하거나 발걸음이 곧다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통증과 타협하느라 몸이 구부러진 것을 전후 따져서 무엇 하겠는가. 피치 못하게 자연 발생적이었다고 믿으면 생명을 담은 몸의 메카니즘이 이해가 간다. 신기한 것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는 인지능력이 곡선 외모에 직선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타협도 양보도 건강으로 바로 직진하는 지름길, 생명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가치라는 인식이 재확인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절충을 해도 좋고 절연을 해도 좋다. 거기에 따라오는 감사와 기쁨이 쌍곡선을 그리며 마음 한가운데 자리 잡는다.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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