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6 23:44
나팔을 불려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금요반 박제철
올봄 어느 날 위층에 사는 젊은 부부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결혼한 지 7년 만에 쌍둥이 남매를 낳았단다. 지금까지는 어려서 걷지를 못했는데 돌이 지나다보니 제법 뛰어다닌다며 소음 때문에 잠 못 주무실까봐 이렇게 찾아 왔노라며 과일봉지까지 들고 왔었다. 쌍둥이남매는 이제 두 살이다. 새 나라의 어린이답게 아침7시경이면 일어나 달리기 연습을 하는지 제법 요란스럽게 뛰어 다닌다.
내가 아는 젊은 부부는 4살짜리 아들과 2살짜리 딸을 데리고 9층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이 뛰어 놀기 때문에 소음이 많이 난다며 아래층과 여러 차례 다투기도 했단다. 아이들을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어서 바닥에 두꺼운 소음방지용 매트를 깔았지만 그래도 시끄럽다고 성화를 댄다는 것이다. 다투기도 싫고 아이들의 자유로움을 너무 억누르는 것 같아 아예1층으로 가려고 집을 구하러 다닌다고했다.
집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며 동쪽에 대문 나고 서쪽에 우물이 있는 집에서 살려면 삼대가 적선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삼대가 적선을 해야 이웃인 위 아래층을 잘 만나는 행운을 잡을지 모른다. 예전에는 옆집이 이웃이지만 지금은 위아래 집이 이웃이다.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지가 생겨나기 전에는 이웃 간 소음으로 다툴 일도 없었다.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에 크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고 사회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소음은 아파트 층간소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말에도 소음이 있다. 사람이 말하고 다니는 것을 나팔 불고 다닌다고 한다. 나팔도 불려면 음률도 맞고 아름답게 불어야한다. 그렇지 않고 아무렇게나 불어댄다면 그것은 소음일 뿐이다. 남의 말을 좋게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흉을 보거나 나쁘게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음을 비유적으로 나팔 분다고 한 말인 성싶다.
며칠 전 7월 9일에는 시민사회운동의 대부이며 3선의 서울시장과 차기유력 대권후보라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별세했고, 뒤이어 10일에는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신화이자 한국전쟁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백선엽 장군이 별세하셨다. 이 두 분을 두고 각계각층에서 나팔 부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 분은 성추행으로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니 잘한 것도 없다고 하며, 또 한 분은 일제시대 만주군 장교로 간도 특설대에서 근무하면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사람으로 반민족 행위자였다며, 정치권에서는 합주나팔을 불기 시작했고 개인들 간에도 서로의 나팔이 아름답다며 계속 나팔을 불고 다닐 성싶다. 그 나팔소리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잘잘못은 따지되, 정쟁이 아닌 아름다운 합주곡으로 나팔을 불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소음인 나팔을 계속 불어대면 그 소리에 환청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는 말이 방망이면 오는 말은 홍두깨,’ 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라는 말도 있다. 한마디 내뱉는 말이 어떻게 돌아오는가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말로서 우리가 한 번쯤 되새겨 보아야할 속담들이다.
불교경전에는 하지 말아야할 계율의 조문이 30개가 있다. 그중에서 7개항목이 말조심하라는 조항으로 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악한 말을 말며, 연고 없이 쟁투를 말며,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지 말며,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지 말며, 비단같이 꾸미는 말을 하지 말며, 한 입으로 두말 하지 말며, 망령된 말을 하지 말라 등 7조목이다.
아름다운 나팔소리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악보를 보고 수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 아름다운 곡조의 나팔은 불고 다니고 소음인 나팔은 불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나팔소리로 가득하지 않겠는가?
(202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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