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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05.26 03:30

청맹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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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맹과니



                                                                 이 월란



사지멀쩡하게 태어난 날
두 눈은 쉴새 없이 초점을 맞추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가 전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지
처음엔 기가막혀
어릴 때 숨바꼭질 하듯 장롱 속으로 기어들어가 숨고도 싶었는데
이젠 정상인처럼 눈을 깜빡이는 법도
소리를 따라 굼뜬 시선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도
육감의 지팡이로 살얼음 낀 땅을 비껴가는 법도
어렴풋이 익혀가는 요즈음
이젠 헛손질도 숨쉬기만큼이나 만성이 되었지
짐작컨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앞이 안보인다는 사실을
어림재기로 알 것도 같아
서로의 덧막대기들이 흔들리다 부딪치기 일쑤였고
엉켜 넘어지고, 넘어뜨리는 장님들의 세상인거야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이같은 세상을 더듬어
지난 밤 암흑 속에 슬쩍 지나간 꿈 얘기로 이판사판 다투었고
서로를 볼 수 없음에도 서로 더 잘낫다고 골목마다
사생결단 아귀다툼이 끊이지 않았지
한번씩 쥐죽은 듯 조용했는데
어지럽게 휘적이며 부딪쳐오던 지팡이가 땡그렁 떨어지면
짐승의 사체같은 묵직한 물체가 발길에 차였었지
오늘도 난 나의 덧막대기가 어디 부러지진 않았는지
매끄럽게 닦아 놓고 기다려
땅을 짚어내지 못하면 난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2008-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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