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오늘:
23
어제:
160
전체:
9,323

이달의 작가

세도나 / 수필

2021.07.08 19:15

민유자 조회 수:9

세도나Sedona

 

 세도나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산타페에 살고 있을 때다. 이름이 간단히 세 음절이고 된 발음이나 구르는 음이 없어서 얼른 기억하기도 쉽고 부르기도 산뜻했다. 위치가 로스앤젤레스와 산타페 중간에 있다고 하여 지도를 보니 큰 고속도로 40번에서 그리 멀지도 않아 오가는 길에 꼭 들러보리라 생각했다.

 

 그 후 다섯 번 정도는 40번 국도를 지나다녔다. 그러나 세도나를 지나칠 때마다 아쉬워하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국도에서 불과 30마일 정도 들어가면 되는 것을, 갈 길이 바빠서도 그랬지만 그만큼 그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다. 또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의 산수가 있는 곳인지도 몰랐다.

 

 그때 듣기로는 지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경치가 빼어나다거나 땅에서 기가 많이 솟는다는 명성을 들은 것이 아니다. 산타페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예술가 촌이 있고 그래서 갤러리가 많고 관광객들을 위한 상가와 음식점이 많아 상권이 활발하고 발전하는 곳이라는 얘기였다. 관광객 차원에서 특징을 들은 것이 아니고 발붙이고 살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 사업 터전을 닦아보려는 정보 차원에서 세도나의 이름을 들었다.

 

 잠시 외도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엘에이에 돌아와 살면서 매력 넘치는 곳 산타페와 그곳의 사람들을 그리워하다가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엘에이에서 산타페는 860마일이니 자동차로 운전시 간만 열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 중간에 기름도 넣고 식사도 해야 하니 실제로는 훨씬 더 걸린다. 돌아오는 길에 하룻밤을 중간에서 자기로 하고 플래그스태프에서 89번 도로를 따라 세도나로 향했다.

 

 입구로 들어가면서 소나무가 점점 더 울창하더니 개울이 흐르고 희고 검은 바위들이 층층이 쌓인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났다. 머리를 한껏 젖혀야 끝을 볼 수 있는 높은 돌산이 멀다가 가까이 다가들면서 입이 벌어지는 아름다운 경치가 계속됐다.  수량이 풍부한 시냇물과 빽한 나무와 높은 바위가 이루어내는 수려한 경관을 감탄하면서 숲속 좁은 골짜기를 따라 꼬불꼬불 내려가기를 한 시간여 만에 상가와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갤러리들이 나타났다.

 

 세도나 시내가 가까웠다고 느낄 무렵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저만치 거대한 붉은색 돌산이 한가운데 우뚝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녁 6시경이다. 여름 해가 지려면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비낀 볕의 조명을 받으며 정면에서 늠름한 모습으로 시야를 막아서는 선명한 붉은 바위의 자태는 그 색과 모양, 크기가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고 사암의 압도적인 붉은빛의 강렬함은 자못 위압적이었다.

 

 이 바위가 종 바위Bell Rock다. 산의 꼭대기가 좁고 둥글며 아래 로 내려가면서 넓어지는 부드러운 모양새가 종의 모양을 꼭 닮았다. 여기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종 바위를 돌아 비포장도로를 따라 좀 더 내려갔다. 여기저기 아름다운 산들이 세도나를 빙 둘러싸고 있다. 희고 검은 단단한 돌산도 있고, 부드럽고 곡선이 많은 붉은 돌산도 있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신기한 아름다움이다. 얼마 안 가서 상가도 인가도 끊기고 은 시야로 저 멀리 꼬리를 감추는 도로를 보고 차를 돌렸다.

 

 그럴듯한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나오니 벌 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더 무엇을 볼 새도 없이 서둘러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그 이후로 나는 세도나에 다시 가기를 소원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마음이 잘 통하는 글모임 친구들과 셋이 떠났다. 관광회사를 통해서 가니 자유로이 다닐 수는 없다. 내가 처음 갔던 때와는 반대방향으로 들어가서 처음에 들어갔던 길로 돌아 나왔다. 종 바위를 보는 감격이 처음만 같지 못했다. 역시 플래그스태 프에서 89번 A도로를 따라 들어가며 감상하는 맛이 더 좋았다.

 

 종 바위 아래를 돌아 뒤쪽으로 30분쯤 걸어 들어갔다. 명상하기 좋은 장소라 했다. 우뚝우뚝 선 붉은 바위산의 중간쯤 올라가서 넓은 자리에 서니 사방으로 굴곡이 예리한 아름다운 붉은 산들이 둘러쳐 있다. 왼쪽에 있는 높은 바위산은 부분이 붉은 바위와 흰 바위가 시루떡같이 켜를 이루고 있다. 중간쯤부터는 급히 경사진 곳에 피뇽 소나무9)가 무성하고 아래는 완만해지면서 푸른 풀이 곱게 돋아난 것이 붉은 상의에 연두색 치마를 두른 당당하고 화려한 스페인 무용수를 생각나게 한다.

 

 저 멀리 앞쪽에는 멀고 가까운 산들의 굴곡 많은 능선이 음영을 달리하며 겹쳐 있고, 그 위에 눈부신 흰 구름은 투명한 푸른 하늘을 더욱 푸르게 한다. 오른쪽은 주름이 많이 진 붉은 바위산이 무대장치 배경으로 세워놓은 병풍처럼 우뚝우뚝 서 있다.

 

 이 땅은 볼텍스Vortex 기가 많이 솟는 땅이다. 바위산 중턱에 붉은 바위를 등지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잠시 눈을 감는다. 아니 이 천혜의 명당자리에서 아름다운 시야를 두고 눈을 감는 것이 아까워 다시 눈을 뜨고 찬찬히 경치를 바라본다. 코끝에 스치는 솔바람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도 상큼하다. 알 수 없는 원기가 몸속에 차는 듯함은 빼어난 산세의 경치가 주는 아름다움에 있을까? 아니면 듣던 대로 철분을 많이 함유한 붉은 바위에서 뿜어 나오는 기에 있을까?

 

 종 바위 저만치 옆에는 대법원 바위라는 큰 돌산이 있다. 이 산은 희고 검은색의 화강암 바위로 마치 대법원 건물의 을 닮았다 하여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버스를 타고 어느 계곡을 한참 돌아가니 뾰족한 두 바위 사이에 기술적으로 세운 작고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 여기에는 붉은 바위 입석들이 조형물의 전시장을 이루며 둘러있다. 그중에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상 모양의 석상 이 뚜렷이 보여 눈길을 끌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서 초에 불을 붙이며 소원을 빈다. 나도 잠시 눈을 감고 같이 간 친구의 건강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세도나 시내로 들어가서 포타벨라 버섯으로 만든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손바닥 크기의 포타벨라 버섯에 올리브기름을 발라서 굽고 빨간 피망과 노란 피망을 구워 곁들인 이탈리아식 더운 샌드위치이다. 두툼한 버섯에서 달고 쫄깃한 육질의 풍미가 입맛을 당겨 고기가 들어간 다른 어느 음식에 비할 바 아니게 맛이 좋다. 음식점의 넓은 패티오는 아름다운 돌산의 경치가 사방으로 잘 보인다.

 

 볕은 상당히 따가워도 건조하고 산뜻한 산들바람이 기분 좋다. 눈을 시원하고 즐겁게 하는 경치를 바라보며 먹는 점심 맛에 더없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세도나는 어느 곳에서 어느 쪽으로 보아도 사진에 담고 싶을 만한 아름다운 돌산의 경치들이 널려 있다.

 

 점심 후에 갤러리에 들러서 현지 작가들의 작품들을 둘러봤다. 토속적인 인디언풍의 작품들과 붉은 돌산과 바위, 나무, 꽃, 풍경을 소재로 한 이곳의 특징적인 자연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 대리석이나 유리 공예품도 있다. 대체적으로 색상이 화려하고, 짙은 향토색을 풍기고, 아이디얼한 작품들로 마음을 터놓고 본다면 욕심나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러나 서민들이 꿈꾸기에는 값이 만만치 않아서 감히 엄두를 못 냈지만 눈요기만으로도 상당히 즐겁다.

 

 지질학자의 말에 따르면 세도나의 절경들은 2억 3천만 년 전에는 다른 서부 지역처럼 바다 밑이었다. 오랜 세월 육지에서 내려간 모래가 가라앉아 쌓이고 그것이 활발한 화산 활동으로 지표면의 기와 침몰이 거듭되다가 지금으로부터 800만 년 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다음 빙하기 때 얼음으로 뒤덮인 지표면이 얕은 곳은 얼음의 무게로 깎아져 내렸다. 얼음이 많이 쌓여 아주 무거워지면 그 압력으로 밑바닥의 얼음은 액체로 변하여 빙하가 되고 그것이 천천히 흐르면서 지표면을 깎아내려 깊은 계곡을 만들었다.

 

 높은 산은 해와 바람과 비에 약한 부분이 패이고 강한 부분만 남아서 오늘날의 기기묘묘한 모양이 되었다. 화강암의 흰 바위와 화산재의 검은 바위 그리고 철분이 많은 토질의 붉은 바위는 무한대의 기와 원적외선을 뿜는다.

 

 길도 생기기 전, 여기에 처음 발을 딛고 정착한 사람은 J. J. Thompson 형제라 한다. 그들은 아무도 살지 않던 황무지인 이 곳에서 사과밭을 일구기 시작하여 80에이커에 달하는 사과농장을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주민이 늘어 200여 명 살게 되었다.

 

 1902년 우체국에 정식으로 지명을 등록하고자 이름을 지어 신청했으나 그 이름이 너무 길어 적합하지 않다고 허가를 받지 못했다. 다 함께 고심하던 중, 언제나 헌신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대모 역할을 해온 자기의 형수 즉 Thompson 부인의 이름을 따면 어떠냐는 시동생의 의견에 모두 기꺼이 찬성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으로 다시 신청하고 정식 허가를 받아서 그때부터 세도나로 불렸다.

 

 세도나는 화란에서 이민 온 화란 여자였다. 멀리 타국에서 건 너온 그녀가 자기의 삶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는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키가 컸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손은 확실히 컸을 테고, 얼굴은 예뻤는지 알 수 없지만 눈매는 분명히 예뻤을 거다. 목소리가 고왔는지는 모르지만 마음씨만은 단연 고왔고, 많이 배웠는지는 모르나 정작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발이 아름다운지는 모르되 그녀의 뜻과 마음을 담은 발길은 분명 아름다웠고, 말보다는 행실이 반듯했으리라. 좋은 것을 누리기보다는 좋게 이루어내는 데 정성을 쏟고 힘써 노력했다고 생각된다. 허랑방탕한 사람에겐 무섭게 강하고, 약하고 병든 자에겐 어머니같이 누님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웠을 것 같다. 그녀에게서 향긋한 향수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건강하고 싱싱한 땀내가 오히려 가슴속 깊은 곳에 생기를 전했으리라.

 

신비의 땅 세도나! 두고두고 아름답게 빛날 그 이름!

 

고향을 등지고 흘러 들어온 사과밭 노동자들의 메마른 향수를 달래주고, 그들의 지친 발걸음에 활기를 더해 주었을 그녀. 맑고 투명한 그녀의 통 큰 웃음소리가 골짜기를 휘돌아 메아리쳐 들리는 듯하다.

 

  

9) 피뇽 소나무 - 잣나무 일종으로 껍질이 얇고 둥글며 이 야생 잣은 조금 더 달짝 지근하고 알이 통통하고 실하다.

https://youtu.be/czFyaHbseF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