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유자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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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초여름의 바다 축제 / 수필

2021.07.09 11:30

민유자 조회 수:11

초여름의 바다 축제

 

 벤추라로 낚시를 갔다. 나는 낚시에 별 지식이 없을 뿐 아니라 취미도 없다. 남편이 간다니까 오랜만에 바다 구경도 할 겸 흔쾌히 따라 나섰다. 이번에 안 갔다면 계획을 했던들 이처럼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떠났다. 아침 낚시만 두세 시간 하고 덥기 전에 돌아올 심산이다. 짧은 시간을 알차게 즐기려고 어제저녁에 낚싯바늘을 묶어서 나란히 꼽아두고 미끼로는 마켓에서 새우를 반 파운드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도미는 새우를 좋아한다고 들어서다. 낚시와 도구들을 차에 미리 실어놓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두고 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샤워도 않고 양치질만 하고는 옷을 주워 입고 모자를 하나씩 눌러쓰고 곧바로 떠났다.

 

 우리 집은 Fwy 5와 Fwy 126의 교차지점에 있다. Fwy 5는 미국의 최남단 샌디에고에서부터 캐나다의 밴쿠버까지 이어지는 남북 고속도로로 골든 스테이트라 불린다. Fwy 126은 태평양 바닷가를 따라가는 남북 Fwy 101과 내륙의 Fwy 5를 이어주는 동 서 프리웨이이다. 이 길 이름이 한국 참전 용사의 길Korean War Memorial Veterans’ Rd이다. 이곳은 도로의 양옆이 모두 오렌지 밭이다. 발렌시아 오렌지의 본고장이다. 이 길의 중간쯤인 시골 마을 모어에는 우리가 늘 들르는 도 가게가 있다. 오늘도 이곳에서 커피와 도넛을 사려고 들렀다. 1년에 몇 번 정도지만 20년을 두고 한결같이 다녔는데 오늘은 도넛이 신선하지 않았다. 주인을 불러서 아침에 만든 것으로 달라고 했으나 바꿔준 도넛도 역시 신선하지 않아서 한 입 먹다가 나머지는 버렸다. 주인이 바뀌었다. 이제 다시는 그 집에 들르는 일이 없으리라.

 

 아뿔싸! 여기서 우리는 냉장고에 넣어둔 새우를 가져오지 않은 걸 생각해 냈다. 아무리 낚시를 완벽히 준비했어도 미끼가 있어야 했다. 이 시간엔 마켓이 문을 열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도리 없이 짙은 안개 속에서 한 시간을 덤으로 허비하고 부옇게 날이 밝은 6시가 넘어서 벤추라 바닷가에 도착했다.

 

 음력으로는 오늘이 초하루다. 바닷물이 멀리 나가 있었다. 벤 추라에는 바다 쪽으로 향한 50야드 정도의 긴 돌무더기 방파제가 드문드문 있다. 남편은 이 돌무더기 끝에서 낚시를 하려고 바다 쪽을 향해 성큼성큼 저만치 앞서갔다.

 

 이런? 모래밭이 끝나고 돌무더기 앞에 서자 전에 없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이 돌들은 다듬지 않은 화산재 돌이라 저 생긴 대로 경사졌고 또 돌이 크니까 돌과 돌 사이의 틈새도 넓고 높낮이도 제멋대로다. 예전 같으면 훌쩍훌쩍 쉽게 뛰어넘었으련만. 그만큼 다리가 약해졌나? 안경에 이중 렌즈를 넣어서 그런가? 스레 이런 곳에서 다쳐서 고생하기는 싫었다. 안전이 제일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건너가는데 남편은 벌써 미끼를 끼워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파도는 가다가 한 번씩 크게 쳐 올라서 예상 밖의 큰 물보라로 우리는 흠뻑 젖었다. 자칫 잘못하면 중심을 잃고 어 내리는 파도에 휩쓸려 바다로 떨어져내릴 수도 있겠다 싶어 무서웠다.

 

 짙게 깔렸던 안개는 거의 다 걷혔다. 남편에게 너무 방파제 끝 까지는 가지 말라고 당부하고 멀찌감치 피해와 고기는 잡을 생각도 없이 그냥 낚시를 얕은 물에 던져놓았다. 별 생각 없이 멀리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본 순간 내 머리의 수직 위에 뒤로부터 물새 떼가 나타났고 내 눈은 자연스레 새떼를 좇았다. 한 마리를 꼭짓점으로 삼각형 대열을 지은 물새들이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앞으로 날아간다. 둥근 부리를 앞으로 쭈욱 내밀고 목을 길게 늘여서 몸을 수평으로 만들어 정연한 모습으로 소리 없이 날아간다.

 

 무심하던 나는 이 광경에 눈길이 새를 쫓며 내 몸도 나는 듯했다. 내 발이 돌벼랑 위를 딛고 있지 않은 듯 발바닥엔 몸무게의 중력이 없다. 마치 물새 대열의 하얀 날개에 보이지 않는 자력의 끈이 달린 듯 딸려가는 느낌이다. 파도의 물이랑을 넘어 바다의 물비늘 위를 나는 기분이다.

 

 잠시 신비한 비행을 경험하면서 나도 모르게 높은 음의 “우우” 소리를 질렀던가 보다. 저쪽에서 남편이 이쪽을 보며 “근사하지?” 하며 싱긋 웃는다.

 

 10시가 가까워지자 벌써 물이 많이 들어와서 우리는 돌무더기의 중간쯤으로 밀려나와 있었다. 고기도 잘 잡히지 않았고 낚싯 바늘만 몇 개 잃어버린 나는 낚시를 그만두고 엎드려 바위틈에서 숨바꼭질하는 게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만조 때는 물에 잠기므로 돌에는 홍합과 작은 조개류가 가득 붙어 있고 손바닥 크기의 붉고 누런 별 모양 말미잘과 이름 모를 패류들이 붙어있다.

 

 그때 갑자기 남편이 소리를 지르며 바다를 가리켰다. 서남쪽 해안과 수평선 중간쯤이다. 수면 위로 검은 물체가 나왔다가 없어졌다. 저게 가 생각하는데 이어서 연속으로 두 개 그리고 또 세 개가 물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크고 검은 몸통에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삼각 지느러미를 달고 물 위를 반원형으로 뛰어올랐다가 잠기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고래였다. 고래 떼가 남쪽으로부터 해안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서히 여유롭게 알라스카로 북상하는 중이었다. 앞뒤로 여기저기서 두세 마리 또는 대여섯 마리가 연속으로 뛰어오르는 걸 보면 물 밑에 수십 마리 아니 그 이상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방향이 나를 등진 정면일 때는 너울대는 꼬리지느러미를 높이 치켜 올리고 서서히 물속으로 잠겨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시야에서 가물가물 사라질 때까지 20분 정도 지켜봤는데 꼭 발레의 군무를 보는 것같이 무리져 돌고, 모였다 흩었다를 반복하며 진기한 묘기를 펼쳤다.

 

 오늘의 낚시 수확은 좋은 편이 못 됐다. 15인치 정도의 상어 새끼 두 마리는 놓아주고 25인치는 됨직한 상어를 한 마리 더 힘들게 끌어 올렸는데 낚싯바늘을 빼지 못하고 그냥 바다에 던져 넣었다. 입을 벌리고 뻐끔뻐끔하는데 바늘을 너무 몸속 깊이 삼켜 버려서 도저히 빼낼 수 없었다. 아마도 이것이 원인이 되어 앓다 죽든가 아니면 평생을 몸속에 두고 아파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밀물의 물보라로 흠뻑 젖은 우리는 온몸이 떨리고 배가 고팠다. 결국 12인치 정도의 도미만 한마리 잡아가지고 돌아왔다.

 

 평소 습관대로 그냥 주저앉았다면 오늘과 같은 멋진 초여름의 바다 축제를 놓쳤으리라. 눈을 감으니 고래들이 물결 건반 위에서 춤을 추며 온몸으로 연주하는 음악이 들린다. 물새들이 하늘 에서 열을 지어 꼭짓점 댄스를 춘다. 어느새 나는 다시 바다 위를 시원스레 날고 있다.

 

https://youtu.be/oa-tGo_Siv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