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환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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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한마디 외 8편

2021.04.10 15:38

Jonghwan 조회 수:61

한마디

 

연주가 아니라

연주하게 하려고

60년 넘게

피아노 앞에 앉고 있다

 

조율,

올림과 내림의 타협

 

음 하나 이웃 음들 없이는

소리가 될 수 없음을 

 

모르거나

흑백 건반들,

청중을 알지 못하는 

연주자 불평 불만을

숨죽인 조율로 승부하며

피아노로만

사랑받는 조율사

 

연주자 최고 연주

객석 "브라보"를 위하여

무대 뒤에 서서

내일의 조율을 다짐하면서

 

"할만하다"

 

 

 

다니엘 미소

 

더 내려갈 수 없는

가장 낮은 자리,

바다

 

태평양

인도양

일본해가 아닌 동해

지중해

캐리브해

걸프만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모자람도 모른다

 

강들이 괴롭히더라도

맞대응 않고

품 안에 껴안는다 

해변도 만들어 준다

 

9개월 다니엘

방긋 방긋

고운 웃음처럼.

 

 

 

신호등 앞에서

 

2월, 

폭설이 내려

 

살짝 얼어 붙는 길을

조심 조심 운전하며

핵켄색 강 다리를 건너

이웃 동네들을 지나

공장 4차선 도로를 달린다

 

또렷하지 않은

신호등 불빛이 흔들린다

 

40년 넘게

싸우면서 풀어졌다. 그래서

벗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벗에게는 어떤 괴로움도

없다고 믿었으며,

몸과 맘 사이가 떨어질 때도

나는 잘 잘못을 따졌다

 

벗의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벗을 볼 수는 없게 되었다

 

벗의 모습을

떨어지는 물방울들 속에서 

지금, 보고 있다

 

흩어지는 눈송이들,

벗의 눈웃음이

와이퍼로 씻겨 나간다

 

크랙션 소리에

갑작스레 얼굴 들어보니

신호등 불빛, 

이미 바뀌었다.

 

 

SNS

 

아침 일찍 일어나

밤 늦게 잠들 

시간도 지나

 

꿈 속에서

 

이리 저리 맴돌며

나를 지배하여도

 

네가 할 수 없는

한가지

 

그것은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

 

 

 

상상의 날개

 

문 두드리는

소리

누구일까

 

사람은 아닐텐데...

 

무엇이

여기에

 

바람,

사슴 가족,

나무가지들

 

잘못 들었나

 

똑.똑..똑...

 

문을 열자

한가락 곡조로

산을 넘는다

 

나와 함께.

 

 

 

기다림

 

영하 20도 겨울 밤

아스팔트 길 옆

어린 나무

하나 서 있다

 

자동차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곁을 지나쳐 간다

눈여겨 보는 사람

아무도 없다

 

불빛으로 

빨강 나무 되기도 하고

눈이 와 쌓이는 날

흰 머리카락 휘어진 가지들

오래 묵은 나무 된다

 

흰 머리 빨강 고목은

고급 승용차, 경찰차, 공사차량에

밟히고 또 밟혀도

찢어지지 않는 그림자로

바라보고 있다

 

길 건너

다가오고 있는 봄을.

 

 

 

다가오는 봄

 

눈 장난하며

겨울이 좋다고

사람들 떠들었다

 

겨울하면 눈이지만

녹는 눈 속

겨울은 없다

 

'눈 온 뒷 날 빨래 한다'

 

도로 곁으로 치워져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쓰레기 먼지 뒤집어 쓴

살아남은 눈더미와

손잡고 봄은

저만치서

마중 나오고 있다.

 

 

 

할 수 없을지라도

 

같은 자리에서

음악을

같이 들을 수 없고

 

똑같은 때

손잡고

거리를 걸을 수 없고

 

오지 않은 앞날을

한 침대에서

상상하지 못해도

 

지금에서 영원으로

가는 이 순간

 

사랑합니다.

 

 

 

나도

 

공포에 떨고 있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수억 개 함박눈이 떨어진다

 

                                   어젯밤부터

                                   지치지 않고 쏟아진다

 

콘크리트 바닥 

                     보일 때까지 치우고 치웠는데

                     뒤돌아 보면

                                       다시 쌓이고 있다

                                       아침에서 저녁까지

 

높고 넢은 하늘에서

                              낮고 좁은 여기까지

쉬지 않고

수천 마일 달려온

                          눈송이 하나 뺨에 닿자

                          간지러울 뿐

 

눈썹 위 내려 앉아도

무겁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

                    눈물 되어도

                    슬프지 않다

 

누군가 뺨에

그렇게 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