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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금혼식을 맞으며
2007.04.17 08:45
금혼식을 맞으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고급) 김세웅
고향에 내려와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들이나 그 밖에 인연을 맺었던 이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 가운데는 불행하게도 상배(喪配)해서 재혼을 했거나, 아니면 쓸쓸히 홀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른바 홀아비가 의외로 많았다.
오늘 날 여성들의 평균수명이 남성들보다 월등 길다고들 하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의아한 일이다. 그들은 나를 복 많이 받은 사람이라며 아내를 업고다니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부러워하는 눈치였고, 유명(幽冥)을 달리한 자기 아내를 생각하는 애절(哀切)함이 엿보였다. 자신이 지니고 사는 평범한 조건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것을 자괴(自愧)하는 일이기도 했다.
친구들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아내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다. 마땅이 존중하고 극진히 보살펴야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만났기에 서로의 피를 섞은 사랑스런 자손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선
물받을 수 있었고, 냉엄한 세상의 거친 파도를 헤쳐 온 것이다.
우리부부는 26세 때 결혼해서 어느새 올해로 결혼생활 50주년을 맞게 되었다. 물리적인 시간으로야 반세기나 훌렁 지났으니 까마득한 세월이지만 내 느낌으로는 도무지 그리 길게 살아 온 것 같지 않다. 우리는 한 마을에서 동갑으로 태어나 같은 교회의 교인으로 자랐으며,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똑 같이 입학한 동기동창생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 살 때 유아세례(幼兒洗禮)를 단 둘이서 같은 날 같은 교회에서 나란히 받았단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늘 가까운 거리에서 맴돌다 좋아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고, 급기야 1957년 12월 27일, 결혼하여 새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천생연분이란 소리를 곧잘 들었다. 이미 고인이 되신 장모님께서도
"자네들은 천생 연분인가 보네!"
하셨다. 어느 해 가을 날, 고구마를 캐고 있을 때 내 팔뚝의 큼직한 우두(牛痘)자국을 발견하시고서 하셨던 말씀이다.
결혼 50주년이면 금혼식이라고 해서 친지나 자손들이 그날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살기가 힘겨웠던 지난 ‘가난의 시대’에는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형편들이 나아진 요즘이라 그렇겠지만 그런 기념일을 들먹이는 가정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 모두가 이 나라 경제의 발달을 압축적으로 견인해 온 분들의 도전적인 삶과, 현대의술의 놀라운 발달 덕에 수명이 길어져 가능해진 것이다.
금혼식이란 풍습의 유래는 19세기 유럽의 기독교국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오늘 날 선진국 대열에 오른 나라들은 거의 그 풍습이 관례화되어 있다. 혹자는 버터냄새가 난다고 언짢아할는지 모르나 자식들을 양육하느라 평생토록 수많은 고초(苦楚)를 겪어왔고, 앞으로 살 날도 그리 많지않은 터에 부모님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아무나 쉽사리 가질 수 없는 금혼식을 마음껏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은 바람직한 풍습이려니 싶다.
결혼 50주년을 하필이면 왜 금혼식이라 이름 붙였을까. 쉽게 떠오르는 생각은 남남끼리 부부로 만나 무려 50년이란 긴 세월을 변하지 않는 금의 속성처럼 대의(大義)를 지키며 살아온 것이니 경기로 말하면 금메달 감이라는 표시가 아닐까. 우리 기독교에서도 칭찬의 상징으로 ‘금 면류관’ 이니 ‘황금종’이니 하여 금을 귀한 것으로 내세우고 있다.
돌아 보면 우리의 결혼생활의 출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사랑에는 반드시 사랑의 기술이 뒤따라야만 한다고 하거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거의 맹목적으로 결혼을 한 것이다. 황홀한 설계나 꿈 같은 것도 없었다. 결혼 전, 이른 바 연애시절(?)부터 애정표현에서는 소극적이다 못해 장애자급(?)이라고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낭만적인 구석이라고는 없이 서로에게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었다. 행여 애교나 농담 같은 것은 어림도 없었다. 무슨 말을 물어도 대답을 들으려면 몇 번이나 채근해야 했다. 그것은 너무 억눌려서 그랬거나 지나치게 침착했던 탓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동기 동창생끼리라 어색해서였는지 아리송하나 아무튼 벽(壁)으로 서로를 갈라놓고 사는 것처럼 부부간의 따듯하거나 다정한 담소는 없었다. 마치 조선시대의 가정을 닮은 행태(行態)라고나 할까. 앞날이 참으로 막막하고 암담했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생활을 했는지 의아스럽다.
혼인 전 아무 것이나 잘 안 먹던 식성은 얌전피우느라고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으나 실제로 결혼해서도 여전했다. 아내는 못 먹는 음식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수두룩했다. 성격도 서로 확연히 달랐다. 나는 급하고 털털한 편인데 아내는 정갈하다 못해 결벽증에 가까웠다.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살림이 어려워지고 자식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서로가 한데 묶였다는 강인한 숙명의식(宿命意識)이 발휘되어 그러한 갈등의 골은 차츰 메워졌고 결혼생활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
무모하리만치 정치 쪽에만 몰입하는 나 때문에 아내의 고생은 힘겨웠다. 그는 벗어 부치고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가정 살림에 도움이 될 일이면 체면 따위 아랑곳 없이 덤벼들었다. 오눌에 이르러서는 이런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는 행복한 가정들이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가정이 다 잘 어울리는 짝은 아니었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들이 엄청 많은 부부로서 만났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참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달콤함은 그다지 없었지만 큰 파란 없이 이 양지바른 언덕에 올라선 것이다. 울퉁불퉁한 시골길과 같고 암담하기까지 했던 결혼생활이었지만 끝내 깨지거나 찌부러들지 않고 급기야 결혼 50년을 맞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혼식의 축사에 잘 등장하는 말처럼 어느새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된 아내, 주름 투성이의 목덜미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앞으로 다가올 결혼 60주년인 회혼(回婚)을 바라보며 2인3각경기에 출전한 선수처럼 우리 부부는 또 다시 삶의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200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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