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진 서재 DB

자유참여 광장

| 박봉진의 창작실 | 초대작가글 | 자유참여 광장 | 작가갤러리 | 공지사항 |
| 함께웃어요 | 프래쉬와 음악방 | 사진과 그림방 | 음악동영상방 |

<font color=blue>귀한 인연

2007.05.28 08:55

조규열 조회 수:91 추천:9

귀한 인연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기초) 조규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 살 수 없다. 서로 어울려 크고 작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내가 좋아서 만나고 도우며 생활하다 보면 친근감을 느껴 쉽게 친구나 연인관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서로 공감대를 이루어 호혜적인 관계가 되기는커녕 어쩔 수 없이 직장이나 일 때문에 얽혀진 인과관계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좋은 인연은 어떤 섭리나 계시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우리 주위에는 믿음에 흠뻑 빠진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많은 선남선녀들이 겉으로는 아주 잘 어울리는 관계 같은데 오히려 쉽게 헤어지고, 또 어떤 이들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결혼하여 잘 사는 경우도 있다. 나는 1963년부터 교직에 있었다. 당시는 생활이 어려운 시절이라 주위에서 부부교사가 가장 이상적인 배우자감이라며 사위를 삼겠다거나 중매하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장남이고 기본적인 생활은 별 문제가 없기에 퇴근하면 맞아줄 사람이 있어야 하고, 제때에 식사를 할 수 있으며, 아이들 양육이나 살림을 할 수 있는 전업주부가 적격이라 여겼다. 마침내 내종누나의 주선으로 편물점을 운영하는 규수를 알게 되었다. 인상이 좋고 사리가 분명하며 당찬 성격이 맘에 들어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뒤 장모님의 반대로 없었던 일로 하자는 소식이 전해졌다. 괘씸한 생각이 들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인연이 아닌 것 같아 잊으려고 했었다. 얼마 뒤 그녀의 오빠가 학교로 찾아왔다. 형제가 많은 장남이기에 딸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 때문이었다면서 어른들과 상의해서 결혼날짜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 여동생이 편지를 보냈다는 얘기도 했지만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나중에 교무실에서 서랍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편지를 발견했었다. 자기의 마음은 다르지만 자기 어머님을 이해하고 어디서 만나더라도 외면하지 말자는 내용이었다. 결국 우리는 두 집안의 이해 속에 사랑의 끈이 이어져 결혼식을 올리고 37년째 살고 있다. 양가 가족들의 사랑과 신뢰로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잘 살고 있으니 우리 두 사람의 만남은 분명 흔하지 않는 인연으로서 지금도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위로 아들 하나, 아래로 딸 둘 1남2녀를 두었다. 대학을 나오고 유학과 직장생활을 하는 사이에 혼기가 지났다. 결혼을 서두르며 은근히 압력을 넣으려고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았으나 펄쩍 뛰며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 신경전만 되풀이하였다. 세 아이 모두 서른 살이 넘었고, 내 정년퇴직이 눈앞이니 나로선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아들은 유학중이니 늦을 걸 각오했지만, 딸들은 서둘러야 할 일이어서 달래기도 하고 우격다짐도 해 보지만 서울생활을 하더니 말이 먹히질 않은 채 세월만 흘렀다. 그러니 타는 건 부모 가슴이었다. 이런 가운데 해가 바뀌고 미국에 갔던 아들이 학년말 방학이 되어 돌아왔는데 내 회갑 선물로 며느리를 보게 해드리겠다는 뜻밖의 폭탄선언을 했다. 내년이 환갑이지만 눈이 파랗고 코가 큰 여자는 안 되는데 어디에 감춰둔 애인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두고 보면 알 게 될 거라니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대학원 후배라며 유학 가기 전부터 사귀었는데 같은 학교로 유학 가서 공부하는 아가씨라는 것이었다. 이번에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결혼허락을 받아 서울에서 양가 상견례를 갖기로 하였으니 미리 결혼날짜를 정하여 올라오라고 했다. 깜짝 쇼 같은 얘기였지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여서 우리 내외는 한동안 꿈인가 생신가 하고 어리둥절했었다. 상견례 자리에서 만난 사돈내외는 서울사람 같지 않게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원만하게 모든 절차와 계획을 상의하여 다음 해 정월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영리한데다 마음씨까지 고운 국제정치학 박사과정 4년째인 며느리 박서현(朴瑞賢)은 예쁘고 영리한 첫딸을 낳았다. 그 손녀딸은 양가 할머니들에게 두 번씩이나 미국 구경을 시키며 우량아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아들의 뜻밖의 결혼이 자극제가 되어 큰딸도 채근하게 되었다. 알고 있는 남자들 중에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면 데려오라고 다그쳤다. 딸이 디자이너로 근무하는 의류회사에 서울이 고향인 총각이 있는데 키가 좀 작고 무뚝뚝하여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은근히 마음은 두고 있구나 싶어 한 번 만나나 보자고 우겨 만나게 되었다. 나이는 한 살 위고 남매인데 누나는 일찍 출가했으며 부모님의 생활력이 강하고 개방적이어서 큰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양가 상견례를 갖고 다음해 가을에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뒤 건강하고 야무진 아들을 낳아 시댁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잘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이해심이 많아 천만다행인데 우연히도 이름이 김재현(金賢載)으로 ‘賢’자가 며느리와 같고, 업무상 일본 바이어들과의 상담이 필수여서 일본 현지연수도 다녀온 실력파다. 막내딸은 초등학교에 근무하기도 했는데 임용고시를 준비하러 서울 언니한테 가서  생활하며 아르바이트로 나가던 회사에서 만난 연하남의 준수한 용모에 끌려 사귄 경상도 사나이와 인연이 되었다. 그러나 두 아들만 둔 집안의 장남인데 네 살이나 위인 딸을 선뜻 맏며느리로 받아들일까 걱정되었으나 다행히 딸의 어려 보이는 인상에 별 문제없이 양가 상견례를 거쳐 다음 해 봄에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경기도 시흥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살고 있다. 막내 딸 역시 아들을 낳아 지난달에 돌이 지났는데 시댁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며느리가 아니라 귀염둥이 딸처럼 어리광을 부리며 사는 걸 보면 신통하기 이를 데 없다. 나이 어린 사위지만 듬직하고 착하다. 시각디자이너답게 파리 현지연수도 다녀와 광고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나의 관심사는 이름에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둘째 사위의 이름은 유현(柳賢)으로 역시 ‘어질 현’자를 쓰는 것이 아닌가! 우리 가족들은 놀랍고 신기한 인연에 감사하며 귀한 인연을 소중하게 감싸 안고 살아갈 것이다.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던가.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어렵게 맺어진 우리 내외의 인연에다, 우리 3남매가 모두 서른두 살 때, 제각기 다른 집안의 딸과 두 아들을 며느리와 사위로 맞았다. 더구나 이들이 모두 ‘어질 賢’자로 이어진 이름을 갖고 있으며, 해외 현지 연수도 다녀오고 아이들의 2세들도 비슷한 시기에 낳아 친 형제자매처럼 자라고 있으니 이런 인연이 어찌 보통 인연이겠는가! 우리 내외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생각하며 며느리와 사위들을 친자식처럼 여긴다. 물론 사돈끼리도 친족처럼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