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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에 한기팔·유봉희 시인 9월26일
   2014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한기팔 · 유봉희 시인 수상
◇한기팔(왼쪽), 유봉희 시인.(사진=문학아카데미).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에 한기팔 · 유봉희 시인

문학아카데미와 계간 문학과창작이 제정한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올해 수상자로
한기팔, 유봉희 시인이 선정됐다. 수상작은 한기팔 시인의 <들풀> 외 2편과
유봉희 시인의 <몽돌을 읽어 보다> 외 2편이다.

한 시인은 지난 1975년 '심상' 1월호에 시 <원경> 외 2편으로 등단해
시집으로 <서귀포>, <마라도>, <풀잎소리 서러운 날>, <바람의 초상> 등을
남겼다. 제주도문화상, 서귀포시민상, 제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유 시인은 지난 2002년 문학과창작에서 등단해
시집 <소금화석>, <몇만 년의 걸음>, <잠깐 시간의 발을 보았다> 등을 썼다.

유 시인은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이 '시인들의 전범이 되는 시작활동'이라고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며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자발적 디아스포라이자
이중 언어 생활자로서 모국어로 쓰는 제 시가 주눅들지 않게 사랑과 관심을
주신 분들이 계셔서 행복하고 감사했다. 시와 시인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진실한 시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시인은 "상을 탄다는 일이 격에 맞지 않은 옷을 입는 일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며 "젊어서는 하늘 보며 살고 늙어서는 땅을 보며 사는 심정으로 한결같이 50여 년을 한눈팔지 않고 시와 더불어 살아 왔다. 눈여겨봐 주신 심사위원들께 고마운 뜻을
전한다. 격려의 채찍으로 알고 옷깃을 여미고 신발끈을 동여맬 생각" 이라고 했다.

심사위원(고창수, 강우식, 박제천, 김여정)들은
"두 시인은 중앙문단과는 거리가 먼 시인으로, 한기팔 시인은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 유봉희 시인은 미국에서 시를 쓴다" 면서 "시인은 고독한 존재라 하지만
이분들의 외로움은 보통의 외로움보다 훨씬 높고 깊다. 이런 외로움의 표출이
두 시인에게 시로 승화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고 설명했다.

- ⓒ 뉴스토마토 김동훈기자 /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 2014-09-18

  심사평

한기팔 시인의 「들풀」 외 1편과 유봉희 시인의 「몽돌을 읽어 보다」외
1편이 금년도 수상작이다. 이 두 분은 시단에서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아직까지 작품으로만 간혹 대했을 뿐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가볍고 좋다. 좀 인연이 있는 시인들이면 이것저것
걸리는 것도 있어서 번거롭고 망설여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두 분 다 공교롭게도 중앙문단과는 거리가 먼 시인이다.
한기팔 시인은 제주도에서 시를 쓰는 분이고 유봉희 시인은 미국에서 시를
쓰는 분들이다. 나는 우선 이분들의 시 쓰는 외로움을 안다. 시인은 고독한 존재라
하지만 이분들의 외로움은 보통의 외로움보다 훨씬 높고 깊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내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외국에 사는 사람들도
조국에 대한 향수를 늘 갖고 산다. 아무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조국이지만
떠나면 그리워지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다. 이런 외로움의 표출이 두 시인에게는
시로 승화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한기팔 시인은 서정 시인이다. 시단 경력도 일천치 않지만 그 나이에 시샘이
솟아서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서정이 살아 있는 것이다.
흔히들 서정시, 하면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서정에는 자연에의 섭리가 있고 우리들 삶과도 같은 자연과 자연의 조화와 꿈이 있다.
앞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가볍게 보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것이 서정시의 매력이다. 「들풀」의 첫 연을 보자
“그리움이 간절하면/ 들풀도/ 몸을 흔든다/ 바람소리로 울고/ 풀잎소리로 운다”.
한기팔 시인은 왜 하필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들풀에게 그리움을 주었는지 모른다.
아마 힘없고 연약한 존재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 그리움을 가진 들풀이 우는 것이다. 운다는 것은 카타르시스적인 면도 있지만 들풀의 본질을 소리로 나타내는 것이
되기도 한다. 풀잎은 풀잎임을 아는 본분을 풀잎 소리로 울고 해체하고 싶은 바람
소리로 운다. 뿐만 아니다. 그 울음은 구름 그림자의 하늘의 시간과 산 그림자의
지상의 시간을 거쳐서 한 송이 꽃으로 완성되는 울음의 과정을 거친다. 시가 때로는 장편소설보다 더 큰 스케일과 내용을 가진다는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일 것이다.

유봉희 시인도 일생을 시를 경작해 온 결코 만만치 않은 분이다.
앞의 한기팔 시인의 시에 비해 유봉희 시인의 「몽돌을 읽어 보다」는
스케일이 큰 시다. 그러면서도 사물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고찰할 줄 아는,
다시 말해 시를 한 단계 높게 감출 줄 아는 시인이다.
“찰랑이는 물가에서/ 돌들은 하나같이 둥글어지려 하고 있다./
살아온 내력이 같아서인지/ 둥글게 사는 것이 한 생의 목표인지/
누가 그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이 연은 몽돌의 상징을 나타낸 것으로 상징주의에서 일컫는 원환상징(圓環象徵)을
띠고 있다. 원환상징이란 모든 사물들은 응축하거나 둥글어지려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하는데 몽돌과 시적 화자의 살아온 내력과 동일선상에 놓음으로써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본다. 더불어 몽돌 하나에 드러난 문양의 앞면에서 알파벳문자의
흘림체를 보고 뒷면에서는 선사시대를 뛰어넘는 사슴을 보는 것은 문자의 발명과
더불어 시작된 인간 문명의 발달과 아득한 역사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서
사물의 앞과 뒤를 두루 살필 줄 아는 시적 안목과 사물을 넓고 깊게 보는 면이
경탄스럽다. 두 분 시인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고창수, 강우식(글), 박제천, 김여정


  유봉희 수상 소감

존재의 떨림, 혹은 우주적 울림

수상 소식을 듣고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이 따뜻한 이름의 상이라고 생각하다가
“시인들의 전범이 되는 시작활동” 이라고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그동안 시를 놓고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전범이 되려면 먼 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자발적 디아스포라이자 이중 언어 생활자로서
모국어로 쓰는 제 시가 주눅들지 않게 사랑과 관심을 주신 분들이 계셔서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분들의 격려로 고국을 그리며 자칫 감정의 낭비로
시적 긴장감이 느슨해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저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뜨겁고 차가운 이중 구조를 지켜야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를 창작한다는 말보다 시를 만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존재의 떨림으로 우리를 이끌고, 또 우주적 울림으로
우리의 감각을 확 열어젖히기도 합니다. 내면의 감각과 온몸이 예민한 촉수가
시의 씨앗을 만나고 영혼의 감각인 상상력을 입혀 그것을 절실하게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시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시를 만난다는 말은 시를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인정하고픈 속내일 것이고,
또한 그에 대한 믿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시는 상을 받고
시와 시인들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진실한 시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2002년 『문학과창작』 등단.
시집 『소금화석』 『몇만 년의 걸음』 『잠깐 시간의 발을 보았다』 등.

<유봉희 수상작> - 몽돌을 읽어 보다 外 2편

몽돌을 읽어 보다

찰랑이는 물가에서
돌들은 하나같이 둥글어지고 있었다.
살아 온 내력이 같아서인지
둥글게 사는 것이 한 생의 목표인지
누가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소금기 절은 상처가 제 무늬로 떠오르기까지
바람과 파도는 얼마나 긴 시간을 치유의 입술이 되었을까
그 아득한 걸음이 문득 엄숙해져서
사열대 지나 듯 돌밭을 걷다가 돌 하나 집어 들었다
몸통엔 파낸 듯 알파벳 글자와 흘림한글 철자가
뒤 암반에는 수사슴 한 마리가 선사시대를 뛰어 넘어오고 있다

아무래도, 어느 멀고 먼 시간에서
어떤 이가 보낸 메시지인 것만 같아
마음은 금방 날아오를 날갯짓으로 부풀어 오르지만
내 어리석음은 바다 깊이로 내려앉아 있고
나의 지식은 물 위의 살얼음 같아서
건너갈 수가 없구나

돌의 둥근 모양을 감싸서 눈을 감는다
다시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먼 듯, 가까운 듯


차갑고 뜨거운 눈맞춤

여기 북해 바다, 크고 작은 유빙 조각들이
흐르며 멈추며 물길을 낸다.
바닷바람이 서서히 걷어내는 안개발 사이로
크고 큰, 높고 높은 설산이
천만년의 저 순정한 눈빛으로 다가오는데
준비 없던 해후 앞에
철렁 내려앉는 가슴속은 백 마디의 말로 부풀어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구나.

눈앞에 빙벽이 칼날을 받은 듯 몸을 쪼갠다.
독맥督脈을 맞은 듯 푸른 속살을 드러낸다.
문득 내 유년의 성에 창, 겨울 햇살에 스러진
신비로운 무늬살 다시 돋아나고
슬며시 사라졌던 내 막냇동생의 몽골 반점도
이곳에 와 있었구나.
시룻번같은 담장을 넘어오던 내 이웃들의 서러운 울먹임은
여기에 모여 오로라 빛이 되어가고 있었구나.

이제 생각하니 이 먼 곳으로 흘러온 까닭이
어찌 저 산과 바다의 부름 없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바장이던 우리의 그리움이 그에게 닿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이 차갑고 뜨거운 눈맞춤으로
참으로 어설픈, 산 것과 죽은 것의 경계를 지우며
우리는 함께 흘렀다.


일기예보를 보다가

아테네는 해 뜨고 런던에는 구름 끼고
앵카라지에는 눈 내리고 도쿄에는 먹구름
밴쿠버에는 바람 불고 샌프란시스코에는 안개 끼고
서울에는 장맛비
밤까지 비가 온답니다.

혜화동에 비가 오네요
이름이 생각 날 듯 말 듯한 책방에서
금방 집 한 채가 나왔습니다.
우산 속은 오롯한 집 한평
오색 지붕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혜화동 길목
빨간 지붕이 옆집 지붕을 스쳤습니다.
빗방울 몇 개가 후드득 날렸습니다
가던 길이 바뀌었습니다.

바라보는 것도 발걸음입니다
여기 바다 건너 물방울 하나가
지구 반 바퀴를 돌려 보는
아무 날, 오늘


※ 출처 : 2014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유봉희 시인 원글보기


  한기팔 수상 소감

시는 나의 해체 나의 결합

상을 탄다는 일이 격에 맞지 않은 옷을 입는 일처럼 어색하기만 하다.
격려의 채찍으로 알고 옷깃을 여미고 신발끈을 동여맬 생각이다.
시인에게 좋은 시를 쓰는 일 말고 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어쩌다 시를 쓰게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 해답이 확실하지 않다.
그저 시가 좋아서 읽었고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다고 할 밖에,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운명적이라면 지극히 운명적이랄 수밖에. 그러면서 무엇이 나에게
시를 있게 하였는가 생각해 보면 ‘내 삶의 의미를 매만지는 행위’로서 시 쓰기,
시는 곧 나의 생활이요 나의 신앙과도 같은 구원으로서의 필연적 위안이요
성찰의 ‘자기 해체 자기 결합’의 자위행위인 셈이다.

시는 곧 내 영혼의 모음, 음악이 신의 언어라면 시는 음악의 언어,
시인은 한 편의 시를 위해 평생을 산다. 시는 숙명적으로 내게 주어진
필생의 과업이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 한 편의 시가 어떻게 써져야 하고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알지를 못한다. 다만 시 쓰는 일이 숙명적일 따름이다.
그것이 아니면 삶의 의미나 가치를 어디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젊어서는
하늘 보며 살고 늙어서는 땅을 보며 사는 심정으로 한결같이 50여 년을 한눈팔지
않고 시와 더불어 살아 왔다. 눈여겨봐 주신 심사위원들께 고마운 뜻을 전한다.

<약력>
*제주도 서귀포시 출생
*1975년 『심상』 1월호에 시 「원경」 외 2편으로 등단
*시집으로 『서귀포』 『불을 지피며』 『마라도』 『말과 침묵 사이』
『풀잎소리 서러운 날』 『바람의 초상』 『별의 방목』 『순비기꽃」 등
*문협제주도지회장, 문협서귀포지부장, 예총서귀포지부장
한국시인협회중앙회자문위원 역임, 현 국제펜 한국본부중앙위원
*제주도문화상, 서귀포시민상, 제주문학상 등 수상.
E-mail : sun7324138@hanmail.net

<한기팔 수상작> - 들풀 외 2편


들풀

그리움이 간절하면
들풀도
몸을 흔든다.
흔들면서
바람 소리로 울고
풀잎 소리로 운다.

구름 그림자 지나가고
산그늘이 내려오면
가을 산자락에
흔들리며
피는 꽃,

꿈을 아느냐 물으면
별보다 아름다운
슬픈 꿈,
그리움이 간절하면
들풀도
꿈을 꾼다.

꿈을 꾸면서
지는 해 바라보며
들풀 혼자
외롭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내가 아, 하고
옷깃을 여미는 사이
꽃가지를 흔들고 가는
작은 바람 한 점에도
마음이 병인 양 하여
목련木蓮꽃 그늘에 앉으면
목련꽃 환히 핀 가지 사이로
찬 하늘 물소리 청명淸明하니
댓돌 아래
그림자를 벗어 놓고
묵언默言으로 날아가 앉는
꽃잎,

그 꽃잎
헐벗은 영혼 하나
실눈을 뜨고
저승 밖에 나앉듯
이 봄날엔…


순비기꽃

너는 지금
무엇이고 싶은 것이냐.

호이 호오이…
먼 바다 숨비소리
한 소절 일 때마다
피 맺히듯 꽃을 피운다는
순비기꽃.

그 꽃을 훑고 가는 바람자락에는
지워도 남는 혈흔처럼
고샅길 돌담 너머
귀에 익은 이웃집 봉심이 누나
목소리도 들리리.

물질 갔다 혼백魂魄이 되어버린
거친 바다 소금기에 절은,
봉심이 누나 귀밑 볼
그 박가분 냄새가 난다.


* 숨비소리: 제주 해녀들이 숨을 참고 물속을 자맥질로 들어가
작업을 하다가 수면 위로 솟구쳐 나오면서 숨을 토해 내는 소리.

※ 출처 : 문학아카데미문학과창작 / 2014-09-24
'2014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한기팔 시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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