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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소설 / 칼럼
2021.02.12 22:52

4.29 LA 폭동 사건 30주년 오버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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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29 LA 폭동 당시 화염에 뒤덮힌 코리아 타운 (사진 출처 구글 사진첩)

 

인간의 야만(野蠻)은 신의 의지인가, 아니면 인간의 속성(屬性)인가.

(李山海)

19924월30일 오전

배심원단의 낫 길티(Not Guilty:무죄)’로 촉발(促發)된 흑인들의 시위는 급기야 폭동으로 급변했다그리고 폭동의 발화점(發火點)이 엉뚱하게도 백인이 아닌 코리아 타운으로 튀었다.

종로에서 얻어터지고, 한강에다 오줌을 갈기며 화풀이를 하는 격이었다

뇌가 돌아버린 흑인 폭도들은 지난 밤(29)에 이어 이른 아침부터 코리아 타운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1백 여명의 무장경찰이 방어에 나섰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총과 흉기로 무장한 채 도적 때들처럼 날뛰는 폭도들 앞에서 공권력은 무기력한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헌데, 베벌리 힐스 등 백인 부촌(富村)지역은 달랐다

완전무장을 한 경찰은 겁도 없이 접근하는 흑인과 히스패닉 폭도들을 완강히 제어했다.

그리고 경찰의 접근 경고를 무시한 폭도들은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팬 뒤 대기하고 있던 닭장차에 구겨 넣었다.

코리아 타운에서 보인 경찰의 소극적 태도와는 딴판이었다.

때문에 코리아타운의 피해는 폭도들의 초동진압(初動鎭壓)실패가 주 요인이 됐다.

훗날 코리아 타운 폭력사태 진압에 따른 공권력의 안이한 대처를 따져 물었으나 유야무야(有耶無耶)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마이너리티(Minority)그룹의 나약한 백그라운드를 여실히 드러낸 민 낯이었다.

 

30년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2021년 현재 LA 코리아 타운을 보라.

상전벽해(桑田碧海).

과거의 마이너리티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어엿하게 주류 그룹으로 부상(浮上)했다.

특히 정치 신장과 괄목한 만한 경제 분야에서 뚜렷하다.

이는 4.29폭동이 가져다 준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아이러니였다.

 

한편 어제(29) 밤 폭도들의 준동으로 일찌감치 폐점한 벤자민 홍은 밤새도록 잠을 청하지 못했다.

시시각각으로 송출되는 언론의 화급한 속보 때문 였다.

메이저 언론사 카메라 기자들이 앵글에 클로즈업 한 코리아 타운의 모습은 아비규환(阿鼻叫喚)그 자체였다.

미쳐 날뛰는 폭도들에 의해 상점들은 약탈당했고 불질러졌다.

레미 마틴 리쿼스토어가 위치한 윌셔 블러바드 주변은 더욱 그랬다.

자신의 가게 역시 무사 할리 없었다.

몫이 좋은 사거리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 였다

다행이 FOX 뉴스 카메라가 포착한 레미 마틴 리쿼스토어와 일부 주변상점들은 피해를 비껴갔다.

 

TV 화면을 주시하며 가슴을 쓸어 내린 벤자민 홍은 날이 밝는 대로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아내가 이른 새벽부터 마련한 커피와 토스트로 한끼를 때운 그는 간편한 복장으로 차려 입고 아내의 염려스런 배웅을 받았다.

순간, 딸내미도 황급히 아빠의 뒤를 따랐다.

부모가 놀란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며 극구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아빠 혼자서 가게 정리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자신도 돕겠다는 것이었다.

무남독녀의 완고한 고집을 꺽지 못한 부모는 결국 그녀를 딸려 보냈다.

 

평소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에 지나지 않는 레미 마틴 리쿼스토어까지 무려 1시간에 걸쳐 운전한 끝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승용차는 가게 뒷켠에 위치한 인적이 드문 창고 곁에 세워두었다.

출입도 도로에 난 입구가 아닌 뒷문을 이용했다.

언제 어느 순간에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벤자민 홍은 딸과 함께 철재로 제작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뒤 단단하게 잠금 장치를 걸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평소대로 각자 할 일을 찾아 나섰다.

벤자민 홍은 매장 한 켠에 자리한 지하실로 가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담배와 스크레치 복권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딸내미는 2층 사무실로 가 금고를 열고 금액별로 분리해 둔 5천달러 상당의 잔돈과 입출금 및 물품 구입 등을 기록한 장부를 백팩에 담았다.

 

그렇게 한창 일에 집중하고 있던 찰나였다.

손에 사시미 칼과 살상용 나이프, 그리고 사제품 총을 움켜쥔 흑인 남성 4명이 소리도 없이 사무실로 접근했다.

그러고는 까치발로 출입문이 활짝 열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인기척에 흠칫한 그레이스 홍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지하실 창고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그레이스 홍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밖을 향해 튀었으나 허사였다.

놈들 모두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몸을 제압한 뒤 카펫이 깔린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럼에도 그녀가 거칠게 저항하자 사시미 칼을 손에 쥔 20대 중반의 사내놈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했다.

이봐, 깔치. 너 영어 씨부리냐?”

동시에 또 다른 놈이 공업용 덕 테이프로 여자의 입을 틀어 막았다.

 

느닷없는 괴한들의 출몰에 두려움을 느낀 그녀가 발버둥을 치며 거세게 저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놈들은 아우성을치는 여자를 내려다보며 개 거품을 흘렸다.

놈들 가운데 삐쩍 마른 체형(體型)에 왼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놈이 말했다

똘만이들. 저년을 벗겨!”

지시에 따른 나머지 놈들이 그녀를 사무용 철제 탁자 위로 끌고 갔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그녀의 옷을 거칠게 벗겨냈다.

수치심과 공포에 휩싸인 그녀가 사력을 다해 바둥거렸다.

허나, 역부족이었다.

떡대가 우람한 세 놈이 그녀의 팔과 다리를 잡고 저항을 제어했기 때문 였다.

그레이스 홍이 걸치고 있던 겉옷과 속옷이 모두 발가벗겨지자         

비쩍 마른 놈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훔치며 입맛을 다셨다.

언젠가 동양 년들이 하는 야동을 보았거든. 죽여 주드만. 미국 년들은 볼품없이 크기만 하지. 헌데, 예들은 다르더라고. 모두 명기(名器)라는거야. 오늘 어쩌다 운이 좋아 그 맛을 보는구만. 예들아 뭐하냐?어여, 벌려라.”

 

이렇게 주절거린 놈이 허리띠와 지퍼를 내리고 바지를 벗자 그레이스 홍은 사력(死力)을 다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입은 테이프로 봉해졌고 팔과 다리는 놈들에게 잡혀 있어 불가항력이었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저항에 한계를 느낀 그레이스 홍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유일한 희망인 기도에 의존했다.

주님! 그리스도께선 죽은 나사로를 가엾이 여기사 그를 살리셨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속으로 기도를 하자 평온이 깃들었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강간 상태였음에도 전혀 그런 두려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이처럼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즈음 독일 소시지 크기만한 시커먼 조슬 바짝 세워 꼬나 잡은 놈이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돌진하는 순간이었다.

사무실 입구에서 앙칼진 여자의 파열음이 긴박한 분위기를 갈랐다.

, 씨방새야. 지금 그 좇으로 뭐하는 짓거리야. 그리고 대체 저 년은 누군데 발가벗고 있지?”

된장 항아리처럼 둥근 몸뚱이에 검정색 나이키 운동복을 아래 위로 걸친 흑인 여성이 딱딱거렸다.

신발도 부메랑 심볼이 부착된 나이키 운동화였다.

왼손에는 베레타 자동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몸통은 된장 항아리였으나 이목구비는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된장 항아리가 뒤뚱거리며 발가벗겨진 여자 곁으로 다가 갔다.

그러고는 팔을 붙들고 있는 놈들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존만이들. 어여 이 년을 일으켜 세워!”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 앞에서 바짝 긴장한 놈들이 지시를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놈들의 강압적인 재지로 탁자에 누웠던 그레이스 홍이 황급히 두 팔로 가슴을 가리며 눈을 떴다.

순간, 된장 항아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동시에 오마이 갓!’을 연발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손에 움켜쥔 베레타를 철재 책상에 내동댕이친 된장 항아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레이스 홍. 나야 스테파니!”

기겁을 한 된장 항아리가 아는 채를 하자 그레이스 홍도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랬다.

스테파니 프랭클린이었다.

대학 동문이자 아빠 벤자민 홍이 대학 등록금을 비롯한 졸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뒷바라지 하며 보살펴 준 친구였다.

놀라움의 시선을 거둘 사이도 없이 된장 항아리가 놈들에게 벼락같은 호통을 쳤다.

씨방새들. 지금 뭘 멀뚱거리고 있나? 당장 옷을 돌려줘!그리고 네 놈들은 모두 바닥에 대가리 처박고 원산폭격.”

된장 항아리의 지시를 받은 놈들이 재빠르게 카펫에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그레이스 홍은 된장 항아리의 뒤에서 정신없이 옷을 입고 지하실을 향해 단숨에 달려갔다.

 

한편 지하실에서 물품을 정리하고 있는 벤자민 홍은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채 일에 몰두해 있었다.

딸내미가 허겁지겁 나무 계단을 내려오자 벤자민 홍도 그제서야 허리를 펴며 놀라는 눈치였다.

딸 내미가 아빠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영문을 몰라 해하는 아빠가 딸에게 자초지종을 묻는 사이 어느새 왔는지 된장 항아리 일당이 지하실에 내려섰다.

벤자민 홍을 한눈에 알아 본 된장 항아리가 말했다.

선생님 저예요. 스테파니 프랭클린!”

손에 권총을 움켜진 흑인 여성이 느닷없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벤자민 홍도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체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가쁨에 찬 벤자민 홍이 된장 항아리를 덥석 앉았다.

그리고 감격에 찬 어조로 속삭였다.

물론이지. 내가 너를 어찌 잊을 수 있나. 나는 너를 여전히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다.”

벤자민 홍이 이렇게 말하자 된장 항아리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닭 똥같은 눈물이 뺨을 타고 아래로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자신들의 부 두목이 하찮게 보이는 코리안 가이 앞에서 찔끔거리자 놈들은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놈들 가운데 조슬 꺼내 든 놈이 된장 항아리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부 두목. 도대체 어찌된 겁니까? , 이들 앞에서 설설기는거요?”

된장 항아리가 말했다.

, 씨방새들아. , 어르신에게 인사 드려라. 내 생명의 은인 이시다. 그리고 네 놈들이 몹쓸 짓을 한 이 아가씨는 따님이시고 또 한 내 대학 동창이다.”

부 두목이라 불린 된장 항아리가 은인, 동창 운운하며 두 남녀를 깍듯이 대하자 놈들도 그제서야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된장 항아리의 격정적인 언사(言辭)를 지켜본 벤자민 홍이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부녀를 보호하사 스테파니를 보내셨구나. 만약 다른 이들이었다면 나와 내 딸이 이토록 온전 했겠느냐?”

 

지당한 말씀이다.

아무리 신을 부정해도 절대절명의 순간, 기도를 들어주는 신은 분명히 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사건으로 지옥과도 같았던 경험을 치룬 그레이스 홍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녀는 어색한 공기를 몰아내기 위해 술을 보관하는 냉장실로 가 음료수와 캔 맥주 그리고 안주로 소고기를 훈제한 건포(乾脯)를 내왔다.

술과 안주를 흑인들에게 권한 그레이스 홍은 다시 한번 된장 항아리를 부둥켜 안고 뺨에 입술을 맞추었다.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스테파니 프랭클린의 출현으로 공기가 뒤바뀐 레미 마틴 리쿼스토어는 이내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30분 뒤

건달들의 간담(肝膽)을 서늘케 하는 흑인 갱스터 그룹 블랙 사바스의 두목 로버트 클레이가 레미 마틴 리쿼스토에 모습을 드러냈다.

올림픽 가()에서 부하들을 부추겨 약탈과 방화를 조장하던 그가 부 두목 함께 움직였던 행동 대원을 통해 자초지종을 귀담고는 리쿼스토어에 들이 닥친 것이다.

로버트 클레이의 곁에는 그를 경호하는 흑인과 히스패닉 똘마니들이 우글거렸다.

눈길을 끈 것은 이들 호위무사(護衛武士)들 중 출중한 미모의 흑인 여성과 히스패닉 계 백인 여성이 여러 명 섞여 있었다.

이들 조폭들의 차림새는 뜯어볼 수록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두목이 리쿼스토어에 들어서자 된장 항아리를 제외한 4명의 놈들이 부동자세로 허리를 90도로 꺽어 존엄(尊嚴)을 표했다.  

검정색 정장에 보라색 셔츠를 받쳐 입고 빨간색 넥타이로 옷 매무새를 추스른 두목은 악어가죽으로 만든 검정색 부추를 신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허리띠 버클에는 사탄인 루시퍼(Lucifer)의 그로데스크한 황금색 흉상이 불거져 시선을 끌었다.

그의 허리 뒷 춤에는 된장 항아리의 것과 동일한 베레타가 꽂혀 있었다.

 

리쿼스토어에 들어선 두목이 영문을 몰라 해하자 된장 항아리가 운을 뗐다.

허니, 인사드려요. 내가 침이 마르도록 당신에게 말했던 바로 그 분이예요.”

순간, 두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반 발자국을 앞으로 내밀고 벤자민 홍에게 다가섰다.

두목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벤자민 홍도 얼떨결에 상대의 손을 받았다.

두목이 말했다.

부 두목에게서 선생의 말씀을 많이 들었소. 의인이라 합디다. 처음엔 반신반의 했는데,선생이 사우스 센트럴에서 행한 선행을 그곳 거주민들에게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를 했지. 아무튼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오.”

 

두목은 마주 잡은 손을 힘주어 조이며 우애(友愛)를 표했다.

상대로부터 호감을 산 벤자민 홍은 혼란스런 기분이었다.

로버트 클레이라는 이름은 그도 익히 들은바 있었다.

두목 로버트 클레이는 LA 갱스터 세계에서 매우 교활하고 잔인하며 한편으론 박식(博識)한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다.

조폭들을 감시하는 LAPDFBI 로스엔젤레스 지부에서도 로버트 클레이를 매우 위험하고 한편으론 괴팍스런 인물로 분류하고 있는 터였다

소문으로 들었던 출중한 외모도 사실이었다.

또렷하게 구획된 이목구비는 헐리웃 출신 흑인 무비스타 시드니 포이티어를 연상케 했다.

갱스터들이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팔과 목 등에 수놓는 문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무리 요모조모 뜯어보아도 그가 천사의 도시에서 악명 높은 갱스터 두목이 아니었다.

명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서 열연한 배우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두목과 인사를 나눈 벤자민 홍은 재스민 일행을 매장 한 켠에 마련한 휴게실로 이끈 뒤 술 대접에 나섰다.

밖은 여전히 경찰과 대치한 폭도들의 고함소리와 차량의 신경질적인 경적소리가 마구 뒤엉켜 불안감을 증폭 시켰다.

그레이스 홍이 밖을 향해 관심을 드러내며 귀를 기울이자 부 두목이 어깨를 다독였다.

두목은 벤자민 홍이 건넨 헤네시 XO 300ml 코냑을 맥주잔에 절반을 따랐다.

그러고는 숨도 쉬지 않고 목구멍에 털어 넣고는 다시 코냑 술병을 기울여 같은 양만큼 잔을 채웠다.

 

두목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숨을 죽이며 훔쳐보고 있는 조폭들은 저마다 굵은 침을 삼키며 긴장감을 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부 두목은 태연했다.

누구보다 두목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였다.

 

단숨에 맥주 컵 한잔 크기의 코냑을 들이킨 두목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살핀 뒤 벤자민 홍과 그레이스 홍을 번갈아 바라 보았다.

그런 다음 빨간 넥타이와 보라색 셔츠를 고정시킨 황금색 핀을 만지작거리다 정색한 표정으로 운을 뗐다.

부 두목이 그럽디다.선생(벤자민 홍 지칭)께선 코리아의 명문 대학인 S대 영문과를 졸업한 인재(人才)라고. 하여, 묻겠소. 우리 흑인이 왜, 코리아 타운을 습격했는지 아시오?”

 

갱스터 두목의 생뚱 맞은 질문을 받은 벤자민 홍이 팔짱을 낀 채 골몰(汨沒)하는 눈치를 보이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난제(難題)를 던진 두목도 깍지낀 손으로 턱을 괴고 상대의 답을 기다렸다.

수십 초를 침묵한 벤자민 홍이 팔짱을 풀고는 두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못된 심조작성(心造作性)의 발로(發露). 즉 비틀린 마음 작용이 빚어낸 광포함 입니다.”

두목이 말했다.         

선생. 형이상학적으로 말하면 여기에 몇 사람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알아먹지 못하오.이들은 싸움에는 탁월하나 지혜는 잼뱅이지.해서 말인데 내 부하들도 쉽게 이해하도록 평이하게 뜻풀이를 해주시오.”

벤자민 홍이 덧붙였다.

코리아의 속담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종로에서 얻어터지고, 한강에 가서 화풀이를 한다. 지금 흑인 커뮤니티가 코리아 타운을 종횡무진 휩쓸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이와 같아요. 그대들의 악감정을 자극한 것은 우리 코리안이 아니라 낫 길티를 평결한 백인들입니다. 따라서 정작 화풀이의 대상은 백인이지 코리안이 아니지요. 헌데, 그대들은 화풀이의 주적(主敵)을 코리아 타운으로 정하고 파괴에 나선 겁니다.”

두목이 말했다.

, 역시 선생의 말에 동의하오. 그러나 모두 그렇다는 뜻은 아니올시다.선생은 두 눈으로 하나만 보는 경향이 있소. 눈을 두개로 만든 이유는 모든 사물을 공평하게 인식하라고 한 것이오. 우리 흑인이 당신네 개척의 땅인 코리아 타운을 밀고 들어온 까닭은 다음과 같소,  ▲첫째:코리아 타운이 표적이 된 것은 하필이면 지리적으로 지척에 있었다는거요. 흑인들의 게토라 불리는 사우스 센트럴과 윌셔,버몬트,  올림픽,웨스턴 가()등이 가시권(可視圈)에 있었다는 거지. 때문에 당시 이성을 잃은 나의 형제 자매들이 게토를 벗어나 무작정 북상(北上)했소. 당신네 코리안들은 흑인들이 애시당초 작정하고 코리아 타운으로 진격했다고 주장했지. 하지만 그건 억측이오. 앞서도 언급한바 대로 꼭지가 돌아버린 나의 형제 자매들은 아무 생각 없이 달려 나간 것 뿐이오. 마치 어느 클라이머가 산이 거기 있기에 올랐다는 말처럼….”

 

하지만 결과론적은 두목의 형제자매들이 코리아 타운을 능멸했습니다.”

두목의 사설(私設)을 주의 깊게 귀담고 있던 그레이스 홍이 이의를 제기 했다.   

순간, 부 두목 재스민을 비롯한 두목의 호위무사(護衛武士)들이 일제히 그레이스 홍을 바라보았다.

벤자민 홍도 당황한 기색으로 딸내미를 훔쳤다.

행여 악명 높은 두목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였다.

하지만 두목은 그레이스 홍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비릿한 시선을 코냑이 담긴 맥주잔에 드리운 뒤 천천히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어냈다.

알코올 뒷맛 탓에 양미간을 찌푸린 두목이 술잔을 탁자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물론 결과야 그랬지. 때문에 흑인 커뮤니티에서도 설왕설래가 분분했소. 공격의 주 표적인 베벌리 힐스와 헐리웃 블러바드를 나두고 왜, 하필이면 코리아 타운이었느냐는….▲그 두번째 의문은 이랬소. 흥분한 형제자매들이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즈음 누군가가 외쳤지.’우리 흑인을 연탄깜상으로 폄하하는 코리안을 이번 기회에 응징하자. 코리안들은 우리 흑인동네에서 돈을 벌어 백인 흉내를 내며 부자 동네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그들이 과연 우리 컬러(흑인)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이냐? 백인 원숭이들도 싫지만 더욱 싫은 것은 백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코리안들이다., 코리안 원숭이들을 이번 기회에 박살내자이처럼 시위대를 자극한 결과로 인해 코리아 타운이 약탈당하고 불에 탄거요.”

설령 이유가 타당 했더라도 살인과 폭력, 절도, 방화는 명분을 상실한 이율배반(二律背反)이었어요. 이는 어떤 변명으로도 상세(相殺)될수 없습니다.”

벤자민 홍이었다.

두목이 말했다.

애시당초 폭력은 백인들에 의한 것이었소. 그리고 폭력의 대가를 나의 형제 자매들은 폭력으로 되돌려 준 것 뿐이오. 물론 이 과정에서 샌드위치에 낀 코리안들이 덤터기를 쓴 면도 있소. 그러나 생각해 봅시다. 천사도 꼭지가 돌아버리면 물불을 가리지 않지. 하물며 우둔한 인간들은 더할 나위도 없소. 당시 사우스 센트럴을 벗어나기 직전 형제 자매들 입에서는 과거 두순자 사건을 오버랩하면서 코리아 타운을 작살내자고 했소. 이것이 과열된 흥분에 기름 역할을 하면서 끝내 폭력을 수반한 거요.”

그레이스 홍이 격조높은 영어로 말했다.

아무리 이유가 정당 하더라도 물리력 행사는 지나쳤어요. 지금 이 시각 두목의 형제 자매들이 휘두르는 폭력으로 코리안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온 식구들이 매달려 밤잠을 설쳐가며 간신히 마련한 삶의 터전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마구 파괴 하잖아요. 이것이 두목이 피력하는 정의(正義)인가요? 댁들은 스스로 괴물이 됐어요. 그리고 스스로를 더욱 암울한 늪으로 빠뜨리고 있어요. 하여, 두목에게 간청합니다. 당장 밖으로 달려가 폭동을 멈추라 하세요.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그토록 외친 비폭력을 외쳐주세요.”

 

그레이스 홍이 비분강개(悲憤慷慨)조로 설파한 뒤 말문을 닫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삐쩍 마른 놈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한 뒤 양 어깨를 들썩이며 빈정거렸다.

볼솃! 무슨 개소리야. 흑인들이 코리아 타운에 들이닥친 건 우리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흥분한 무리들이 코리아 타운으로 가자고 웅성거리니까 너도 나도 우르르 몰려간 것 뿐이라구. 여기에는 무슨 고도의 정치적 사회적 헤게모니가 작동된 것이 아냐. -흑 갈등이니, 뭐니 하고 부추긴 건 백인 주류 언론과 코리안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신조어(新造語). 도대체 언제부터 흑인과 코리안이 사이가 나빠졌지? 옛날 옛적부터 그랬나? 우리 형제자매들은 아무렇지도 않았거든. 헌데, 코리안들이 백인 흉내를 내며 우리를 업신여기기 시작했잖아. 이건 너희들도 부인 못할 명확한 팩트야. 안 그런가?”

생김새는 야바위꾼처럼 생겨 처먹었으나 제법 말을 골라 쓸 줄 아는 놈이었다.

 

그렇다.

대체 언제부터 한-흑 갈등이 있었다는 거냐.

로드니 킹과 두순자 사건이 있기 전, 과연 흑인들의 염장을 뒤틀리게 할 만한 한-흑 간의 이해관계가 있었던가.

이 두 건의 대형 사건 전만해도 코리안 이민자들은 흑인 집단 거주지역인 LA 사우스 센트럴에서 캠든에서 별탈없이 비지니스를 해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주 지역에서 가장 살벌한 흑인 촌인 뉴욕의 브롱스와 매릴랜드 볼티모어,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아틀란타 등 명성(?)이 자자한 흑인 게토 지역에서 코리안들은 흑인 고객들과 함께 상생(相生)하며 잘 지내왔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LA 지역에서 코리안이 흑인을 얕잡아 본다는 괴담(怪談)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같은 유언비어는 언론의 호재가 됐다.

특히 흑인과 코리안의 불편함을 기획 기사에 담아 보도했던 백인 언론 매체들이 괴담을 실제인 냥 기사 행간(行間)에 편집함으로써 흑인들을 열 받게 만들었다.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간에 교활 하기 이를 데 없는 일부 몰지각한 화이트 족들의 이간계(離間計)로 인해 점차 한-흑간의 우호관계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카더라를 반복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더라 믿게 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우매한 군중이 새빨간 거짓말에 감쪽같이 동화되는 것을 과거(나찌와 문화대혁명)와 현재의 거울을 통해 보고 있지 않느냐.

언론의 교묘한 이간계 효과는 마침내 ‘4.29 LA 폭동을 조장하며 끝내는 코리아 타운을 파괴로 몰아 넣었다.

 

강간미수범의 설()을 한쪽 귀로 듣고 또다른 귀로 흘려 보낸  두목이 맥주잔에 3분의 1가량 남은 코냑을 다시 들이켰다.

두목은 어느새 헤네시 XO 350ml를 절반 가량 비웠다.

그럼에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로 전혀 흐트러짐 없이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홍 선생. 나는 코리안 비지니스에는 전혀 관심이 없소. 하지만 당신네 코리안들의 처세(處世)는 다분히 문제가 있다는 주관이오.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으니 인내를 갖고 들어보시오. , 그럼 시작 하겠소. 당신네 나라 코리아는 모르겠으나, LA에 거주하는 코리안들 중 두 얼굴을 지닌 위선자들이 꽤나 많소. 물론 선생 같은 천사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요 만.”

벤자민 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이산해 / 추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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