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공학도 노인과 로맨스

2021.09.23 16:59

강창오 조회 수:9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시나요?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낮선 노인 (로렌스) 의 질문이었다. 그냥 마주보고 앉아 있기가 어색해 얼핏 세계적으로 겪는 이상 기후 변화에 대해 언급하자 즉시로 되받은 말이었다. “네, 저는 미흡하나마 차끓이는 케틀을 쓸 때 필요한 물의 양만 채우죠.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느닷없이 물어온 심각한 질문에 약간 당황스러웠기도 했지만 딱히 워라고 대답할수가 없어 일단 기본적인 답변으로 모면을 시도했다.
  

   노인은 잠시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곧 자기의 입장을 폈다. “저는 2030년까지 특히 자동차등 운송분야에 소모되는 화석 연료를 전력위주의 대체 에너지로 바꿔 대기 오염을 줄인다는 정부정책에 대해 반박하는 한편 더 효율을 높일수 있는 방안의 논문을 보냈읍니다. 저들은 그 전력을 생산하는 가스재료 자체가 엄청나게 비싸고 이산화탄소를 증대시킨다는 모순을 모르고 있읍니다. 그래서 제 논리는 가스 대신에 값싼 물로 대체하자는 것이고 나아가서 물은 공정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발생하지 않읍니다”. 짧지만 뜻밖에 들어보는 고차원적인 진단과 대책인지라 처음에는 잠깐 어리둥절했다. 연이어 나의 눈을 직시하는 그의 파랗고 커다란 눈은 절실하게 현실을 호소하듯 사뭇 광채를 띠고 있었다.
  

   늦은 오후 공원 카페를 들러 차와 다과를 주문해놓고 있던 차였다. 종업원이 테이블로 갖다 준다기에 바깥쪽의 빈 테이블을 발견하고 막 앉으려는 순간이었다. 거이 동시에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이 엉거주춤하며 같은 테이블로 다가와 의자에 손을 댔다. 어차피 빈 의자가 많기에 의자 하나를 내밀며 앉으시라고 했더니 바로 앉아서 차와 다과를 시키는 것이었다. 이어서 느닷없이 혼잣말처럼 “저 망가진 테이블을 고칠거야” 하는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일단 느낌으로 치매기가 있는 노인이 횡설수설 한다고 생각했는데 맞은편 테이블의 사람들이 일어나자 재빨리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 싶어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니 어긋난 테이블 표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다가서자마자 테이블을 엎어 놓더니 주머니에서 도라이버를 꺼내 여기저기를 꼼꼼히 손보는 것이었다. 몇분 후 다시 똑바로 세워진 테이블은 놀랍게도 더 이상 어긋나지 않고 반듯하며 안정되어 보였다. 다시 내 테이블로 돌아온 노인은 주머니에 넣은 도라이버를 보여주며 어디 가든지 망가진 자재들이 보이면 고친다고 하면서 도라이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노인이 많치 않을거라고 강조하는것이었다. 그러던중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약간의 흥분조로 지팡이를 짚게 된 이유를 말해주었다. 18개월전 까지는 상당히 건장해서 마음대로 걷기도 하고 운전도 했다고 한다. 하루는 옆집을 방문중에  장농이 망가져 있는것을 보고 계단을 놓고 올라가서 고치다 떨어져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그만 대퇴골이 뿌러져 쇠파이프를 박았다는 것이다. “몇 주 동안 병원신세를 지면서 회복은 했지만 결국은 지팡이 신세가 되었지요. 허지만 내것도 아니고 남의 장농을 고쳐주려고 했는데 정말로 정말로 불공정해” 하면서 분개해했다. 이야기를 듣고보니 참으로 딱하고 안된 일이긴 했다.

   이어서 내가 요즘 미디어에서 계속 반복해 내보내는 기후변화에 대해 우려의 말을 꺼내자 그러면 내가 실천하고 있는 나름대로의 대책이 무엇이냐고 물어온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90세 노인에게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고도의 과학적인 기술 설명을 듣는 순간 치매환자라는 의심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아울러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더 놀란것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자신은 아직 치매기운이 없으니까 믿어도 된다고 확인까지 시켜주는것이 아닌가!

   공학과 거리가 먼 나에게는 그의 이론이 관심밖의 주제였지만 너무나도 논리정연하다 보니 오히려 호기심을 발동했다. 그래서 고차원의 과학적 배경을 가지게된 동기를 물었더니 역시나 석사까지 마친 공대출신이였고 여러 산업분야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요즘에 들어 특별히 세계 정부 기관들과 학계들이 기후변화 대책에 대한 방안들을 모색하자 나름대로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해 정리한 논문을 기관과 대학들에 보내놓고 소식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나아가서 어차피 이 과제를 재정리해 출제한 논문이니 이 기회에 여지껏 밀어왔던 박사학위까지 밀고 나가겠다고 한다.
  

   한 수 더 나아가서 지금도 애인을 가지고 싶다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만나는 여인들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번번히 거절 당해서 섭섭하다는 것이었다. 대학때 댄스파티에서 한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해 50여년간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는데 10여년전 부인이 중풍을 맞았고 세상을 뜨기까지 몇년동안 참으로 돌보기 힘들었다고 되뇌인다. 그러더니 문득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보여주었다. 처음 결혼해서 찍은 카플의 사진이 정면으로 프린트되어 있는 모자인데 사진을 가리키며 자신들이 완벽한 카플 이었음을 몇 번씩이나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시한번 격앙된 어조로 자기 부인이 병을 앓게 된 경위를 얘기했다. 처음에 미약한 중풍 증세를 보여 의사한테 갔더니 믿을수 없게도 손을 대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라며 치료를 여러번 미루었다고 한다. 그 후로 몇 번 더 타격을 받자 끝내는 말도 못하고 전신마비가 와 나머지 몇년간 많은 고생을 하다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인의 경우를 통해 중풍에 대한 의료계의 인식이 잘못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증풍치료 시작을 일찍 하도록 하는 캠페인을 오랫동안 벌렸고 급기야 의료계에서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나라의 공헌 훈장까지 받았다고 한다.
   

   부인 사망 이후로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가 한 중국계 여인을 만나 5년정도 사귀었다고 한다. 함께 여행도 다녔고 나름대로 그 여인을 좋아했다면서 얼굴 뜨거워지는 로맨틱한 얘기까지 자세히 해주었다. 그런데 그 여인이 갑자기 어느날 중국의 풍습이라면서 2억원 정도의 선물을 요구해 왔다고한다. 너무도 많은 액수라서 자식들에게 말했더니 즉시로 그 여인과 절교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단번에 관계를 끊을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호기심에 찬 선한 눈을 크게 뜨며 그런것이 중국문화이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기에 잘 모르지만 연인들의 관계에서 물질을 요구하는 것은 좋은 문화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더니 자신도 동감이라면서 아직도 그 여인의 그런 요구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기후변화 대책 이론 얘기로 돌아가서, 정계와 학계가 자기 이론을 얼만큼 이해하고 수용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었다. 농담조로 나 자신이라도 논평해 주겠다고 했더니 용기(?)를 얻었는지 자료들을 보내주겠다고 이메일 주소를 물어왔다. 어이구! 농담이었는데 생각했지만 그의 열렬한 의지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나서 이어 그 자리를 떠났다.

   아뿔사!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이메일을 열자 놀랍게도 벌써 그의 논문이 빼곡히 올라와 있었다. 환경처와 공과대학들로 부터 인준을 받기 위해 보내진 이메일들을 나에게 forward 한것이었다. 이미 감지한 대로 너무도 기술적인 문제들이라서 전반적인 내용만 몇 번 읽어보는 정도였는데 나머지는 아인슈타인의 논문같은 고등수학 공식들로 도배되어 있어서 도저히 납득 불가였다. 아무튼 끝에 붙혀진 P.S. 에서 그의 의지가 더욱 가상하게 돋보였다. 처음엔 기후문제 대책으로 시작된 논문이지만 이미 이 단계까지 정의를 내렸으니 그동안 하지 못했던 박사학위에 도전하겠다는 의도를 다시한번 적어보냈다.
  

   아까 대화를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그는 먼저 나눈 대화 내용이나 단어를 한 가지도 잊어버리거나 빠뜨림 없이 다시 인용해서 나열하는것이었다. 치매끼를 보이기는 커녕 그의 머리는 웬만한 젊은 사람 뺨칠 정도로 정확하고 흐트림이 없는것이 더욱 더 놀라웠다.
  

   만인이 각색이라지만 이 노인을 통해서 사람은 90 세 아니 100세에 도달한다 해도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는 결코 간과할수 없음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오늘 오후에 있었던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의 논문이 기관이나 대학들에 잘 받아들여져 기후변화 대책에 큰 기여를 하게됨은 물론 목표한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좋은 결실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울러 따뜻하고 정 많은 여인을 만나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남은 삶을 마감하기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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