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8 04:03
“여기 다니러 오셨나요?” 환한 미소를 띠우며 사람들에게 차와 다과를 서빙하던 한 여인이 나에게 물어왔다. 최근에 이 실버타운으로 이사와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였다. “아니오, 여기 이사 온 지 몇 주 됐습니다”. “어!, 젊은사람이 어떻게 여기를? 실례지만 몇살인데요?” 익살맞게 웃으며 의아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약간 당황했지만 일단 “저는 70대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아 그래요. 저도 70대인데요. 몇년생이죠?”
상대방의 개인 신상에 대해서 보통 잘 묻지 않는 영국인들이다. 초면에 의외로 내 나이를 묻는 그녀의 질문이 너무도 직설적이긴 했지만 그 얼굴에는 순수함이 넘쳐 보였다. 알고보니 나보다 몇 년 위인 그녀 역시도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였다. 특히 발랄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진지하게 봉사하는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캐롤 G였다. 그 이후 이곳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반에서 자주 마추지게 되었고 웠스앺을 통해 메세지와 사진들을 주고 받으면서 허물없이 더욱 더 가까와지게 되었다. 캐롤은 특히 자신의 가족 사진들을 자랑스럽게 보내곤 했다. 한 번은, 얼마 전에 이곳으로 이사 온 까닭에 유고시 내 신상에 대해 연락책임이 되어 주겠느냐고 부탁하자 “물론이지” 하며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매일마다 짜여진 그룹활동을 통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실버타운이 노후대책의 한 방편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하루에도 여러개의 프로그램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외로움을 느끼거나 좌절 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에 늘 도사리고 있는 어두움은 누구나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대부분의 이 곳 노인들이 만족한 생활을 영위한다고 자부하지만 실버타운 이름이 말해주 듯 수시로 사망자 통보를 접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한 달 전 서울 방문차 여기를 나서면서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그 사이에 또 어떤 이들이 세상을 뜨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재밌게 잘 갔다 오라고 인사하며 서울에 가면 꼭 재미있는 사진들을 보내라고 부탁했던 캐롤이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포착한 몇 장의 사진들을 WhatsApp에 담아 캐롤을 위시한 몇몇 친구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늘 재빠르게 연락을 전해주던 캐롤에게서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그저 일상생활이 바빠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돌아간 후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런가 하고 일축했다.
돌아오는 비행시간이 보통 때 보다 몇 시간 더 길었다. 이유인 즉슨 러-우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상공을 피해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내에서의 식단 메뉴가 다른 때에 비해 상당히 깔끔하고 먹음직스러웠다. 배고픔 보다는 일단 호기심으로 배를 채웠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을 찾았고 급기야는 기내 식중독으로 의사의 처방을 받았다. 장시간의 서울방문에다 젯틀 랙 그리고 식중독으로 인한 며칠간의 격리가 끝나고서야 겨우 안정을 찾게 되었다. 엊그제 오후 모처럼 타운 라운지로 부랴부랴 발길을 향했다. 그곳에서 자주 모이는 고정 멤버들이 반가워하며 웰캄백을 해주었고 그때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엄습했다. 그동안의 이런저런 얘기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늘 이야기를 주도하는 아이린이 갑자기 나를 향해 물었다. 캐롤 G 가 사망한 것을 알았느냐고……
캐롤 G??? 갑자기 뒷통수를 맞은 것 처럼 머리가 띵해왔다. 그럴리가??? 믿을 수 없었지만 캐롤 G는 우리 단지에 단 하나뿐이어서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캐롤 G라니… 아이린이 이어서 남편 키잇츠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그도 몸이 안좋아 간병 중에 있다고 운운했을 때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의 친구 캐롤 G였다. 여기서 70대는 젊은층이다. 더구나 캐롤은 늘 건강한 모습으로 활동적이어서 그렇게 쉽게 떠날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은 즉, 캐롤은 그 날 아침에 배이킹을 하며 클럽에서 봉사할 물건들을 챙기고 있었다고 한다. 키잇츠는 오후에 잠깐 당구클럽에 나갔다가 맥주 한잔을 하고 집에 들어가 보니 캐롤이 집 안쪽 문가에 쓰러져 사망해 있었다는 것이다. 실내 볼링 복장을 하고 있는것을 보아 볼링반에 참석하러 나가던 중 급 심장마비가 왔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전 까지는 너무도 건강해서 몇십 년간 의사 한번 찾아간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무튼 갑작스럽게 떠난 그녀의 장례식때 타운 주민 거이 모두가 참석해 애도했다고 한다.
가늠해보니 그 때가 내가 서울에 도착한 지 며칠 안되서 였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보냈던 사진들에 대한 답장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곳의 환경이 이러니까 각오는 했지만 단 몇달이나마 가깝게 사귀었던 첫 친구를 잃고나니 허탈하기가 그지없다. 어쩌랴! 캐롤의 죽음을 통해 잔인한 삶의 한 단면을 또 다시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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