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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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고향떠난 밤하늘별의 애환

2024.06.11 13:10

양상훈 조회 수:9

                                           고향떠난 밤하늘별의 애환

                                                                                           양상훈

 

  태평양횡단 신천지를 향한 인천 제물포항구의 뱃고동소리는 19021222일 망국의 황혼 빛 갤릭호기폭에 눈물 젖어있었다.

미주한인 이민역사는 약120여 년 전 1903113, 최초의 노동 이 민단 102명이 호놀룰루항에 첫 발을 내디디며 시작되었다. 첫 노동 이민 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하고 나서 2년 후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하였다. 5년 후에는 국권마저 잃어 망국 백성이 되었다.

낮 서른 땅에서 상륙한 이민자들은 한인 디아스포라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신대륙의 흑 역사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사탕수수농장에 혹독한 하루 노동대가의 일당 50센트는 분홍빛 꿈은커녕

큰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이때에 웃지 못 할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한인 이민자 대부분이 남자들로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기를 원했으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시 동양인과  결혼을 금지하는 금혼법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인과도 결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사진결혼이란 이변이 등장하게 되었다.

서로가 중매인을 통하여 사진을 교환했다. 사진을 들고 여성이 남자를 만나 려 하와이를 건너오는 방법이다. 1910-1924년까지 약1,000여명의 사진신부가 하와이에 건너오게 되었다.

사진만 보고 결혼하다보니 애환의 에피소드가 참으로 많았고 문제도 있었다.

노동이민 온 총각들은 결혼비용을 마련하기위해 10년 이상 부지런히 일해서 저축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늙은 신랑과 어린 신부가 맺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해서 건너온 아가씨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연분홍빛 금의환향錦衣 還鄕보다는 척박하고 힘든 고생의 나날이었다. 낮에는 사탕수수밭에서 중 노동 을 했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여 오로지 자식과 자식교육에 온힘을 다하였다.

이민1세대는 악착같이 적응하여 열악한 환경에서도 교회를 설립하고 교육기관 에 투자하여 교회와 각종단체를 중심으로 2세대에게 단합과 전통문화를 심어 주는데 열성을 다하였다.

사진 커플이 가장 많이 정착한 마우이 섬은 하와이제도에서 하와이 섬에 이어 두 번째 큰 섬이다. 면적이 1,883.5km2 인구 약 12만 명으로 년간 3백만 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곳이다. 해변이 조용하고 낭만의 섬에 하니문으로 가장 인기가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 마우이 최고봉 할레아칼라는 한인들이 고국에 남겨놓은 별들의 고향을 상기시켜 향수에 깊게 젖곤 한다. 칠 흙같이 어두운 밤에 빛나는 별이 쏟아질 듯한 별무리를 바라보며 구불구불한 미로를 올라간다. 바로 거기서 찬란하게 어두운 바다를 갈라놓는 해돋이 광경은 두고 온 추억의 향수가 가슴깊이 스며든 다. 마우이섬에서 하와이 마을 중 가장 걷기 좋은 곳 하나 라하이나항구도시. 첫 수도였던 역사의 면면을 볼 수 있는 오래된 목조건물로 서울의 인사동 처럼 정겹고 소박하여 고전을 만끽한다.

사진커플로 정착한 마우이섬에 최초의 사진 신부 사라 최라는 여성으로 1910 1128일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그녀의 남편은 하와이 국민회장을 지낸 이 래수씨였다. 사진결혼 2호는 신랑 백만국(당시39)와 의주처녀 유명선(당시23 ) 양 부부였다. 기록에 의하면 1910년에 시작된 사진결혼으로 1924년까지 하 와이에 951, 미국본토에 115명의 한인사진 신부가 입국했다고 한다.

1905년 하와이 마우이섬으로 이민 온 최용운 할머니가 읊었던 시에는 그들의 답답함과 슬픔이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강남에 노는 속에/봄바람소식 실은 배 만리나 떨어져 있으니/친척들과 이별 하고 조상님의 묘 버린/슬픔을 뉘 알리오/새 울어 눈물 보지 못하고/꽃 웃어 도 소리 듣지 못하니/ 좋은 것 뉘가 알고/ 슬픔인들 뉘가 알리/ >

 

힘들고 고단하고 모든 일이 순탄치 않았을 사탕수수 노동이민자들이지만 우리 의 이민 선조들은 조국을 위해 쌈짓돈을 모아 해방 전까지 고국에 무려 300만 달러가 넘는 거금을 보냈다고 하니, 그 애국심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2020년 미국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미국 내 한인 인구는 190만여 명, 하와이에 는 5만 여명에 이른다. 102명으로 시작된 이민자의 수가 한 세기만에 이렇게 증가한 것이다.

미 연방의회는 한인이민의 역사가 시작된 113일을 미주한인의 날로 선포하 고 매년 이를 기리는 성명 등을 발표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3년 미주한인의 날을 맞아, “1903년은 미국을 개척한 한인 이민자들이 하와이 해안 에 도착해 새 역사를 시작한 해라면서 그날 후 한인들은 미국이 성장 ,, 발전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왔다고 강조했다.

하와이에서 시작한 미주 한인의 이민 역사가 미국의 발전에 기여하고, 한미동 맹 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는 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하와이 호놀룰루 항구에 뱃 고동소리 후렁차게 합창한가운데 다음 표지판 이 새겨져있다-

<190212.22일 대한민국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한 121명의 이민 선조들이 19031.13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항구 7번 부두에 처음 도착하면서 120년 의 한인 이민 역사가 시작되었다. 선조들이 개척한 이민역사의 숭고한 애국심 을 기억하기위해 인천광역시에서 표지석을 설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