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하는 이유
2003.05.30 06:52
5월 30일자 한국일보,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의 한승원 편
사람은 가두어 놓고 살기를 좋아하는 영리한 동물이다. 들과 산에 사는 동물들을 끌어다가 울타리를 치고 가두어 길러 필요할 때에 잡아먹고, 집을 짓고 담을 쌓고 아내나 남편이나 아이들을 그 안에 가두어 놓고 기르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나라와 고을과 마을을 만들고 성을 쌓고 그 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다스린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속에 갇혀야만 편안해진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마저도 가둔다. 혼자 살기 두려우므로 무리를 지어 그속에 자기를 가둔다. 무리는 이념을 가지게 되고, 모든 개인은 그 이념 속에 갇히게 된다. 자의반 타의반에 갖혀 산다. 모든 사상, 모든 주의 주장, 심지어 종교까지도 하나의 이념일 수 있다.
자기 가두어놓고 살기에 염증이 나면 자기를 풀어 놓으려 한다. 그렇지만 오랜 동안 자기를 풀어 놓지 못하고 곧 다시 가두어 놓는다. 자기 가두어 두기와 자기 풀어놓고 살기가 모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한다. 그것은 한없이 거듭된다. 따지고 보면 자기를 풀어 놓는다는 것이 사실은 더 확실하게 자기를 자기 이념과 사상속에 가두는 것이다.
수탉은 자기가 늘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념과 사상의 강박 속에 갇혀 산다. 목청껏 노래하지 않으면 수탉일 수 없다는 의식이 속에 깊이 숨어있다. 그것이 사업이다. 사업을 하지 않으면 신명이 나지 않고 신명이 나지않는 삶은 죽음 한 가지이다. 사람은 신명(사업)을 위해 살아 있어야 한다. 신명속에 갇혀 사는 신명의 노예이다.
그 사업은 무엇인데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꽃이 왜 피는데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 나는 왜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하고 같을 터이다.
나의 삶은 나의 본래 모습(원형)으로 회귀하려한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왔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왔다. 그 뿌리는 우주 생성의 첫 순간으로 뻗어 있다. 애초에 불과 물만 있었고, 그것이 땅을 만들고 땅이 푸나무와 짐승을 만들었다. 푸나무를 짐승이 먹고, 사람이 푸나무와 짐승을 먹고 살아간다. 먹이사슬의 꼭지점에 서 있는 사람은 텅빈 하늘로 날아갈 꿈을 꾸고 산다. 하늘은 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은 완성된 존재이다. 그것은 우주를 만든 불과 물의 영혼일 터이다. 우주의 원형이 그것이다. 소라고동의 나선처럼 한사코 오른쪽으로 돌려고 하는 무늬가 내 속에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독자에게 우리 삶의 진실에 대하여 질문하기에 다름 아니다. 소설가는 살아 있는 한 끝없는 우주의 율동에 대한 의문 속에 잠겨있고 그는 늘 그 의문을 수탉처럼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로부터 증명받기이다.
정다산은 강진에서 책 한 권을 저술할 때마다 그것을 하필 고해절도인 흑산도에서 유배살이 하고 있는 형 약전에게 보내어 증명 받으려고 했다. 약전 또한 자기 저술을 동생 약용에게 보내 증명 받으려고 했다.
수탉과 꽃은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소리쳐 노래하고 울긋불긋한 색깔로 자기 몸을 치장하고, 또한 귀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자기 노래의 아름답고 고귀함을 증명받고 싶어하고 눈 가지고 코 가진 것들로부터 고혹적이 교태와 향기를 증명 받고 싶어한다.
사람은 가두어 놓고 살기를 좋아하는 영리한 동물이다. 들과 산에 사는 동물들을 끌어다가 울타리를 치고 가두어 길러 필요할 때에 잡아먹고, 집을 짓고 담을 쌓고 아내나 남편이나 아이들을 그 안에 가두어 놓고 기르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나라와 고을과 마을을 만들고 성을 쌓고 그 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다스린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속에 갇혀야만 편안해진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마저도 가둔다. 혼자 살기 두려우므로 무리를 지어 그속에 자기를 가둔다. 무리는 이념을 가지게 되고, 모든 개인은 그 이념 속에 갇히게 된다. 자의반 타의반에 갖혀 산다. 모든 사상, 모든 주의 주장, 심지어 종교까지도 하나의 이념일 수 있다.
자기 가두어놓고 살기에 염증이 나면 자기를 풀어 놓으려 한다. 그렇지만 오랜 동안 자기를 풀어 놓지 못하고 곧 다시 가두어 놓는다. 자기 가두어 두기와 자기 풀어놓고 살기가 모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한다. 그것은 한없이 거듭된다. 따지고 보면 자기를 풀어 놓는다는 것이 사실은 더 확실하게 자기를 자기 이념과 사상속에 가두는 것이다.
수탉은 자기가 늘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념과 사상의 강박 속에 갇혀 산다. 목청껏 노래하지 않으면 수탉일 수 없다는 의식이 속에 깊이 숨어있다. 그것이 사업이다. 사업을 하지 않으면 신명이 나지 않고 신명이 나지않는 삶은 죽음 한 가지이다. 사람은 신명(사업)을 위해 살아 있어야 한다. 신명속에 갇혀 사는 신명의 노예이다.
그 사업은 무엇인데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꽃이 왜 피는데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 나는 왜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하고 같을 터이다.
나의 삶은 나의 본래 모습(원형)으로 회귀하려한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왔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왔다. 그 뿌리는 우주 생성의 첫 순간으로 뻗어 있다. 애초에 불과 물만 있었고, 그것이 땅을 만들고 땅이 푸나무와 짐승을 만들었다. 푸나무를 짐승이 먹고, 사람이 푸나무와 짐승을 먹고 살아간다. 먹이사슬의 꼭지점에 서 있는 사람은 텅빈 하늘로 날아갈 꿈을 꾸고 산다. 하늘은 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은 완성된 존재이다. 그것은 우주를 만든 불과 물의 영혼일 터이다. 우주의 원형이 그것이다. 소라고동의 나선처럼 한사코 오른쪽으로 돌려고 하는 무늬가 내 속에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독자에게 우리 삶의 진실에 대하여 질문하기에 다름 아니다. 소설가는 살아 있는 한 끝없는 우주의 율동에 대한 의문 속에 잠겨있고 그는 늘 그 의문을 수탉처럼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로부터 증명받기이다.
정다산은 강진에서 책 한 권을 저술할 때마다 그것을 하필 고해절도인 흑산도에서 유배살이 하고 있는 형 약전에게 보내어 증명 받으려고 했다. 약전 또한 자기 저술을 동생 약용에게 보내 증명 받으려고 했다.
수탉과 꽃은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소리쳐 노래하고 울긋불긋한 색깔로 자기 몸을 치장하고, 또한 귀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자기 노래의 아름답고 고귀함을 증명받고 싶어하고 눈 가지고 코 가진 것들로부터 고혹적이 교태와 향기를 증명 받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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