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71005) 채영선
2017.10.10 15:35
아이오와에서 온 편지 (171005) 소담 채영선
알래스카의 눈 덮인 산과 강을 그리며 싱싱한 아름다움을 언제나 대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눈인지 구름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하얀 색으로 덮인 산그늘과 골짜기가 손에 닿을 듯하여 만져봅니다. 내 손에서 구름이 되고 내 손에서 눈이 됩니다. 하나님을 닮은 손가락입니다.
커다란 붓으로 하늘을 칠하면 하늘이 되고 산을 그리면 산이 됩니다. 이런 풍경은 알래스카에만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리 알기나 한 듯이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인 사람의 예지는 그 사람의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앞을 내다보는 놀라운 능력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합니다.
전혀 쓸모없을 것만 같은 땅이 지금은 놀라운 보배가 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래스카는 보배로운 곳입니다. 사람의 입김과 손길 발길이 가면 남아나는 곳이 없으니까요. 독이 있는 뱀의 목을 잡고 입에 사람의 입김을 불어넣으면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입에는 뱀보다 강한 독이 있는 것 아닐까요.
오늘 공부한 마태복음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사람들이 결국 예수님을 점점 더 고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기적을 맛본다고 다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맛보고 먹고 만지던 사람들이 도리어 예수님을 당시 관습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라고 고발하고 결국 죽이려는 모의를 하게 됩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칠 수 없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 시간을 기다려 고단한 주님께 환자들을 데리고 나옵니다. 피곤한 몸으로 병자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돌보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이유로 또 고발을 당하게 됩니다. 안식일에 할례를 받지 않느냐, 나는 병든 자를 고쳐주었는데 그것이 왜 잘못이냐고 주님은 물으십니다.
우리의 습관에 어긋나면 반대의 입장을 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보다 한 사람의 생명을 가장 귀히 여기셨고 위험을 무릎 쓰고 병자를 고치시며 문둥병자를 만지셨습니다. 그 사랑의 주님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고 떠나갔습니다. 제자들에게 물으시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사랑을 베푸시고 받은 응답은 냉담이었습니다. 서른이 넘으신 에수님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결혼하는 그런 나이입니다. 가장 센시티브하고 정열이 넘치고 사랑도 충만한 그런 나이, 우리가 세상을 다 정복할 것만 같은 혈기가 왕성한 나이에 주님은 처음부터 냉담한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사랑을 주어도 모르고 인정을 주어도 모르고 대접을 해주어도 모르고, 신사적으로 대해주어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강한 자 앞에서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는 한 없이 강한 부끄러운 사람들입니다. 무시하는 사람 앞에서는 겸손하고 인정해주면 교만한 속성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은 묻고 계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라고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냥 어부가 아닙니다. 어쩌면 팔레스타인의 강태공인지도 모릅니다. 평생 물고기만 잡던 베드로는 이 질문을 듣고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생명의 말씀이 계시온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 저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줄 믿고 알았습니다.’
오늘 이 베드로의 고백은 놀라운 믿음의 본질을 말해줍니다. 믿음은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라서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인 구속의 역사를 다 알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도마는 주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만져보고 믿겠다고 하였으며 만져본 후에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전해지는 글을 보고 듣고 믿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께서는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는 믿을 때에 알게 되고 보게 되고 듣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며 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회개하고 고백합니다. 아직도 어둠에 거하는 이들과 길을 찾는 이들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부르시고 먼저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십시오. 가을비에 촉촉이 젖어드는 마음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도 깊이 스며들기를 기도합니다.
생명의 말슴이 계시온데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 저는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인줄 믿고 알았습니다.’
오늘 이 베드로의 고백은 놀라운 믿음의 본질을 말해줍니다. 믿음은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라서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인 구속의 역사를 다 알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도마는 주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만져보고 믿겠다고 하였으며 만져본 후에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전해지는 글을 보고 듣고 믿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께서는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는 믿을 때에 알게 되고 보게 되고 듣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며 주님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회개하고 고백합니다. 아직도 어둠에 거하는 이들과 길을 찾는 이들에게 주님의 도우심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부르시고 먼저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십시오. 가을비에 촉촉이 젖어드는 마음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도 깊이 스며들기를 기도합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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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교
2017.10.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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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선
2017.11.01 19:46
오늘에야 들러 보았습니다. 할로윈데이가 지났으니
이젠 겨울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자유게시판이라 마음 놓고 글을 올려봅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신 하나님과 미주문학에 감사할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주님의 사랑이 전해지기를 기도하는 11월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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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선
2017.11.01 22:34
김영교 선배님.
참, 저는 원래 전도사입니다.
당시에는 한국 감리교회에서 독신이 아닌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선배님이 졸업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1년 동안 화요일마다 설교를 했으니까요.
선배님과는 깊은 인연이네요...^^
문학 사이트에 역시 믿음의 글은 가을, 스산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철에 절절합니다.
늦은 밤 혼자이기를 선택할 때 잘 읽힙니다. 좋은 마음의 시력으로 사물을 보려 합니다.
않으려는 축에 끼어있었던 철없던 날의 오만!
이제는 시나 글을 쓸 때 울림이 있기를 늘, 기도처럼 엎드립니다.
인생의 가을에 서서 .....
사모, 그대가 그리는 그림을 듣고 싶습니다.
가을 이야기 1에서 대추차 시 한편
계절은 선물, 가을은 수확
그래서 더 감사의 계절......sharing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