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을 영어 식민으로 만들려하는가?
지금 이 나라에는 영어 열풍이 불어 닥쳐 너도나도 영어 잘하기에 정신이 없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나자 대통령도 영어를 잘 하는 나라가 되자고 앞장을 섰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들도 영어 교육을 정책 공약으로 내놓고 있어서 앞으로 영어 열풍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교육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각 대학의 전공과목을 세계화시대에 발맞춰 영어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영어로 강의하도록 장려하고 있어서 영어수업이 대학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주요 항목이 되었다고 한다.
대학 교육은 어떤 전문 분야에 대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전공과목을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은 전문 인재 양성이 우선인지 영어 인재 양성이 우선인지 방향 잃은 교육정책인 것 같다.

어떤 교수는 수업에서 학생들을 만날 때면 늘 긴장되고 떨린다고 한다.
자기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또 학생들에게 꼭 주고 싶은 것을 제한된 시간 안에 다 주고 있는지 걱정이 되며 더구나 이번 학기부터는 영어로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제한된 시간 안에 우리말로 강의할 때에도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나 꼭 주고 싶은 것을 다 주었는지 걱정이었는데 이번 학기부터는 영어로 강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더 긴장되고 떨린다는 것이다.
전공과목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우리말로 강의해도 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과목이다.
이런 것들을 남의 나랏말로 강의를 듣는다면 더욱 이해하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이치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교수는 영어로 강의준비를 하려면 따로 영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교수들이 전공과목연구에 할애해야하는 시간보다는 영어공부를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므로 전공과목에 대한 연구의 질이 낮아질 우려도 있다.
전공과목 연구에 시간을 할애하여 학문을 발전시켜야할 교수들의 귀중한 시간을 영어 공부로 낭비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자칫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대학의 여러 학과들 중에는 영어가 필요치 않은 분야도 있을 터인데 그것을 영어로 강의를 해야 하는 교수들과 어려운 전공과목을 영어로 들어야하는 학생들의 고충과 시간낭비는 자칫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교수들이나 학생들의 영어실력도 문제가 된다.
교수들이라고 해서 모두 원주민과 같은 수준의 영어실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언어는 습관인데, 지금 대학교수들의 영어 발음은 일본식 영어발음으로 배운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원어민의 발음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요즘은 유학을 다녀온 교수들도 많아 다소 나아지는 하였으나 아무리 외국에서 원어민들과 접촉하며 공부를 하였더라도 옛날에 배운 일본식 영어 발음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것이 언어의 습관이다.
이런 발음으로 하는 영어 강의가 학생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영어발음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평소 우리 실생활에서 쓰고 있는 빌린 말(외래어)의 발음들이 모두 과거 일제 때 쓰던 일본식 발음으로 되어 있어서 쉽사리 그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의 현직 교수들은 일본식 발음으로 영어를 배웠으며 유학하여 원어민들과 함께 공부를 하였더라도 그 습관을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것이 발음이라는 것이다.
제아무리 영어를 잘 구사하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발음이 올바르지 못하면 그 영어는 이미 살아있는 영어가 아니라 죽은 영어다.
그러므로 죽은 영어를 잘 하는 인재를 길러본들 실제 국제사회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말을 하고 있는지 영어를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죽은 영어 나부랭이를 섞어 쓰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말의 현주소이다.
이로 인해서 나날이 우리말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위에 우리말을 버리고 어려운 전공과목의 강의를 영어로 듣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 나라는 영어 식민지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초고속 열차와 같아서 멀지 않은 장래에 이 나라의 나랏말이 영어로 바뀔 것 같다.

현재 교육정책은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내 나라의 나랏말보다는 남의 나랏말 교육에 더 열과 성의를 다 바치는 사대주의 근성은 먼 옛날부터 이어져 온 국민성일까?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어도 중국대륙에의 사대에 찌든 보수 세력의 반대로 한자를 써야했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일본말과 글로 기울었던 사대사상은 오늘날 영어라는 서구 세력에로 기울어지는 그야말로 주체성이 없는 국민성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교수의 말대로 전공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라는 교육부의 정책은 얻는 것 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나랏말이 사라지면 이 나라도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교육정책은 백성들을 영어 식민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온 나라 백성들을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잘 하도록 교육시켜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파고 들어가려면 영어도 잘 해야겠지만 나랏말 교육보다는 영어 교육에 더 열을 올리는 정부의 교육정책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말도 살리며 영어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점에 대하여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때인 것 같다.

한글 연구회
최 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