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우정/윤효숙

2012.04.22 07:26

김학 조회 수:263

다시 찾은 우정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효숙


몇 년 전, 고등학교동창회 30주년 기념행사가 있던 해, 행사가 끝나고 몇 달 뒤 한통의 전화가 왔다. 초중고, 대학까지 함께 공부했던 친구였다. 친구는 미국 뉴욕에 산다고 하였다. 지금쯤 우리나라 어디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나는 의외였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번호를 받고 궁금하던 소식을 나누었다. 생각해보니 참 친하게 지냈고, 추억도 많은 친구였는데 그동안 잊고 살던 친구였다. 대학교 땐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해서 어울려 다니는 횟수도 많았다. 친구는 일찍부터 새로운 것에 눈을 떠 사진을 배워, 덕진연못, 종합경기장, 구이 저수지 등 명소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때로는 ‘생각하는 로댕’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모델이나 된 듯이 폼을 잡아보기도 하였다. 친구는 섬기는 마음도 많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앞장서서 돕는 편이었다. 몇 년이 지나 친구가 경기도에서 목사님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난 뒤, 대학교에서 연수를 받을 때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목사님으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순창과 정읍으로 임지를 옮겨 다녔다. 그 뒤, 남편이 전주시 모래내 부근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전화가 마지막 소식이었다.
딸 산후조리 때문에 미국 뉴저지 주에 갔을 때, 뉴욕과는 한 시간 거리이기 때문에 간 김에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전화로 연락이 되어 산후조리가 끝나갈 무렵 친구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뉴욕으로 갔다. 관광회사에서 주최하는 여행만 다녀 보았지 혼자서는 처음길이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나는 그대로 국제 미아가 되는 거였다. 드디어 반가운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친구를 만나 지하철을 타고 카페로, 관광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우리는 학창시절로 다시 돌아가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꽃을 마음껏 피웠다.
친구는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유학시켜 달라던 아들의 희망을 들어주기 위해 미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13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사례비 없이 봉사하는 남편을 섬기며 방과 후 교실을 직접 운영하여 아들 둘을 어엿이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또한 친구는 54세 때 미국의 대학교에 입학하여 58세 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아들들도 반듯하게 잘 커서 좋은 성적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계사 자격까지 따서 각자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이 내용은 성공한 조기유학 사례로 ‘우먼센스’란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방과 후 교실도 맞벌이 한인교포나 중국인 이민자녀들의 진학과 상담, 학업지도 등 봉사차원에서 운영한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SAT시험을 지도하여 7명을 대학에 입학시켰다니 역시 대단한 친구다. 학창시절에도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더니 60이 넘은 나이에도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상처받은 이민자들을 위로하고 비자 문제 등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식사비용이나 교통비 등을 대신 내주는 친구가 고마워서 내가 뮤지컬 입장권을 끊어 주었다. 친구는 답례로 워싱턴 벚꽃놀이를 구경하러 가자고 하였다. 왕복 8시간 이상 걸리는 차안에서, 워싱턴호수 주변의 벚꽃 길을 산책할 때, 우리에게 40년의 공백은 아무런 장애물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외에도 링컨센터, 줄리어드음대, 자연사박물관 등 삼일동안 원 없이 돌아다녔다. 친구와 나는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아픈 다리를 이끌며 911사고 현장부근에도 가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60대 할머니들이 20대 대학생들처럼 여기저기 관광하고 다닌 것이 억척스럽기도 하고 보람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미국인 대학생이 입장료를 1달러로 해달라고 귀띔을 해주어 그렇게 말했더니 19달러짜리 입장권을 1달러로 입장하는 혜택도 누렸다. 이것 또한 가난한 자와 노약자를 보호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 때문이었다. 마음씨 좋은 친구 남편 목사님까지 우리의 우정을 배려하여 안방을 내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난 갑자기 침입자가 되어 친구부부를 생이별시켜 미안한 마음 그지없었다. 우리는 밤새워가며 묵혔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정을 나누었다. 친구도 이민사회에서 외로웠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렸다며 내가 떠나고 나면 한동안 허전할 것이라고 하였다. 8월 중에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는 친구에게, 그땐 우리 집에서 다시 우정을 다지자며 내일을 기약하였다.
친구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로 ‘관포지교’나 ‘오성과 한음’ ‘다윗과 요나단’ 등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친구 대신 감옥에 갇혔다가 사형에 처할 위기에서 늦게나마 나타난 친구의 우정에 왕이 감동하여 둘 다 풀어 주었다는 일화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죽마고우’란 고사성어도 어렸을 때 대나무로 말을 만들어 놀던 단짝친구를 말함을 누구나 알고 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도 한다. 비록 어려웠던 진한 사연은 없었을지라도, 자신의 모든 일을 제쳐놓고 안내를 해준 친구가 있어서 뉴욕의 봄이 더 따듯했는지도 모른다. 비록 어렵고 진한 사연은 없었을지라도 고마운 친구 때문에 산후조리라는 어려움을 잊고 위로가 되었다. 우리네 구들장의 뜨스한 아랫목처럼, 구수한 숭늉처럼, 다시 찾은 우정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
(20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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