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죽에 담긴 엄마의 사랑

2019.07.29 06:08

한성덕 조회 수:14

전복죽에 담긴 엄마의 사랑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아내의 부모님은 하늘나라에 계신다. 부친은 101, 모친은 93세에 돌아가셨다. 남편이 늘 곁에 있지만 부모에게서 느끼는 감정과 같겠는가? 막내라 그런지, 뜬금없이 엄마타령을 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할 때가 있다. 이런 아내에게 엄마 같은 분이 생겼다. 내가 보기에도 눈물겹고 감동적인 어른이다.

  19852, 익산농촌교회서부터 목회가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터라 지방에는 친구가 귀했다. 아내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며 전주 한일신학교(전신, 한일장신대학교) 사모대학을 다녔다. 옷맵시가 깔끔하고, 유난히 눈이 큰 지금의 사모님을 만났다. 그 멋지고 인물이 출중하신 그 모습은 여전하다. 멋스러움에서 번지는 사모님의 환한 미소와 보드라움은 학우들을 사로잡았다. 하이소프라노의 열창은 급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사모님의 노래와 아내의 반주는 실과 바늘이었다. 그때부터 깊고 두터운 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람은 묘한 존재다. 가까운 사이라도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고, 먼 관계라도 자주만나면 가까워진다. 일찌감치 은퇴한 사모님은 줄곧 전주시 인후동에 사셨다. 우리도 완주군 고산읍교회서 전주시 평화동으로 임지를 옮겼다. 목회현장은 항상 바쁘다. 그 바람에 아내와 사모님은 잊고 살았다. 아니, 서로가 필요치 않아서 찾지 않았다는 게 더 나을 듯싶다.

  평화동에 거주한지 10년 만에 조기은퇴하고 우아동사람이 되었다. 웃자고 하는 말로, ‘우아한 사람들이, 우아하게 살고 싶어, 우아동 럭키아파트’에서 사는데, 우리도 그러고 싶었다. 인후동과 우아동은 한 발치였다.

  아내가 속한 ‘기독성악회’가 있다. 이름뿐이지 아주 오래전에 흐지부지 되어버린 모임이다. 성악을 지도하셨던 교수님이 몇몇 제자들을 보고 싶어 했다. 연락을 받고 다녀 온 아내의 입이 귀에 걸렸다. 옛날의 그 사모님을 만났다며, 엄마를 보고 온 것만큼이나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 년 만에 만난 사모님은 83세요, 아내는 60대중반이다.

  아내는 두 암(유방, 갑상선)을 수술 받았지만 늘 밝고 명랑하다. 그 모습에 남편인 나도 감동하지만, 지인들은 수술 환자가 맞느냐고 되레 묻는다. 그만큼 건강하고, 또 성격상 우울해 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무척 감사하게 여기며 산다.

  아내의 마지막 수술이후 4,5년을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누구 못지않게 서로가 행복을 실어 나르며 재미 재미로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배를 매만지며 아프다고 징징댔다덜컥 겁이 나 단골 한의원으로 달려가서 뜸을 뜨고, 침을 맞고, 찜질을 하면 속이 편안해져 괜찮다고 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는 동안 병세가 더 악화되었던가 보다. 하룻밤은 배를 움켜쥐며 난리였다.

  유방암 발병 4년 만에 갑상선암이 들어섰다. ‘암 주기가 4년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하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아내의 암을 아는 의사여서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폈다. 먼저 ‘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리고, ‘십이지장궤양’이라고 했다. 그 순간 긴장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조금만 늦었어도 천공(穿孔)이 될 뻔했다’며 나보다 의사가 더 걱정이었다.

 

  입원 닷새 만에 퇴원했다. 두 달치 약을 처방해 주면서 한동안은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라고 했다. 그래서 흰죽에 간장이나 먹으려는데, 퇴원 이튿날 엄마 같은 사모님이 불렀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먹을 반찬 너 댓가지와 ‘푹 쑤어서 부드럽다’며 전복죽을 싸주셨다. 아내의 죽을 쑤는 것도 보통 정성이 아닌데, 어찌 나까지 챙기셨단 말인가?

  식탁에 전복죽과 반찬을 올려놓았다서로가 얼굴만 처다 볼 뿐 기도할 줄을 몰랐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아내의 큰 눈에서 주먹만 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눈물로 범벅된 환한 미소는 흡사 천사의 얼굴이었다. 아내는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울먹이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엄마 같다!’고 하더니 또 눈물샘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내는, 전복죽과 찬거리 앞에서 엄마의 숨결과 포근한 사랑에 감싸인듯했다. 평생 잊지 못할 명장면이었다. 명작이나 명품이 따로 있는가? 사람들은 좋든 싫든 한 생애를 살아간다. 그 동안 타인에게서 느껴보는 어머니의 숨결과 사랑을 몇 번이나 경험할까?

  한손은 아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눈물을 닦아주는데 감격이 밀려왔다.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는 두 손을 잡은 채 빤히 쳐다 보고 있었다. 울고 웃으며 쇼 아닌 쇼를 한바탕 했다.

                                              (2019.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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