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원예치료

2019.08.01 10:52

신효선 조회 수:7

나의 원예치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신효선

 

 

 

 

   나는 오늘도 텃밭에 나갔다. 많은 작물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심 속에 있는 20여 평의 텃밭은 내가 유일하게 식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어제는 애호박이 안성맞춤으로 크겠다고 눈여겨보았는데, 와보니 적당한 크기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몇 년 전 건강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원예치료를 권했었다. 땅을 밟아야 한다며 막연히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기를 원했을 때는 몸이 너무 좋지 않은 나는 가기를 꺼렸다. 그때는 원예치료에 대한 홍보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설득에 희망을 가지고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단독주택을 세내어 들어갔었다.

  식물을 대상으로 인간의 다양한 원예활동을 통하여 사회적·정신적·육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을 추구하는 치유행위를 원예치료라 한다.

  원예치료에 대해 그때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집 울안에는 감나무 몇 그루와 무화과나무가 있고, 마당은 다듬어지지 않은 잔디밭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잔디밭을 파서 채전밭을 만들었다. 남편은 그곳에 무 농약으로 친환경 재배를 하겠다며, 이것저것 채소를 심었다. 처음엔 심고 가꾸는 일은 주로 남편이 하겠다고는 했지만, 직장에 나가야 하는 남편이 틈틈이 도와줄 뿐 가꾸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처음에는 짜증도 내고 게으름도 피웠지만, 하다 보니 이젠 틈만 나면 밭으로 나가 풀을 뽑고 작물들과 교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몇 년 뒤 아파트를 정리하고 대지가 200여 평인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단독주택으로 가면서 많이 망설였다. 우리가 이사할 집은 큰 도로에서 냇가를 따라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나의 건강은 관절염으로 요즈음보다 좋지 않아 몇 발짝만 걸어도 불편한 상태였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그곳에서 원예치료 하기를 권했다. 주택은 어등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쾌적하고 한적한 산책길도 있었다.

  망설이면서 구매할 집을 여러 번 가보니 화단이 마음에 들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동백나무, 소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등이 담장을 따라 둘러 있었다. 특히 마당 앞 화단 한쪽에 탐스러운 꽃망울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큼직한 백목련이 나의 마음을 붙잡았다. 20여 평의 집을 리모델링하고 화단을 정리하고 마당엔 잔디를 심고 뒤곁 대밭은 파내어 채전밭으로 다듬었다. 남편은 새집 가꾸는 재미에 한동안 푹 빠졌다. 새벽이면 맑은 공기를 가르는 이름 모르는 산새 소리, 밤이면 뻐꾸기 소리에 힐링이 되었다.

 

  남편은 퇴근 후면 한 시간 정도 나와 산책을 해주었다. 봄이면 고사리 꺾는 재미에 나는 아픈 것도 잊고 어등산을 누비듯 돌아다녔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나의 몸은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우리 집은 남편과 내가 살만 했으나, 한의대에 다니는 작은아들에게는 불만이 많았다. 시내에서 놀다 밤늦게 올 때는 교통편이 좋지 않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테니까. 한 번은 밤에 술을 먹고 늦게 오다 발을 헛디뎌 냇가에 빠져 혼이 난 적도 있다.

  나는 친구들을 불러 뒷산에서 고사리도 꺾고 쑥과 나물도 캐고 채소도 나누어 먹었다. 전원생활은 나와 남편에겐 건강과 추억을 안겨 주었다.

  남편이 일 년 동안 교환교수로 외국에 나가는 바람에 다시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외국에 갈 때 나와 같이 가기로 했기에 단독주택을 장기간 비우고 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뒤 귀국해서도 텃밭을 분양받아 가꾸었다. 이곳 전주로 이사 와서도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웬만한 반찬거리도 챙기고 텃밭 이웃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주 작은 씨앗이 움터 많은 열매를 맺기까지의 생육 과정을 살펴보면서 생명의 오묘한 섭리와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생명의 소중함과 본인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존재감을 깨달았다.

  텃밭은 도심 속 전원생활을 느낄 수 있고, 원예치료의 효과도 가져다주는 몸과 마음을 동시에 치유하는 대체치료가 되었다. 최근에는 원예치료가 많은 사람에게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그 효과도 높아지고 있다. 오늘도 나는 텃밭의 작물을 만나고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엔 모자를 쓰고 있다.

 

 (2019. 7. 15.)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47 책을 낼 때마다 김학 2019.08.09 8
846 라이벌 친구, 조재호 한성덕 2019.08.08 11
845 그 옛날의 여름은 구연식 2019.08.08 11
844 더위가 좋다 이환권 2019.08.08 8
843 떡살을 바라보며 최기춘 2019.08.08 5
842 동창회와 약봉지 박용덕 2019.08.08 29
841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윤상 2019.08.07 13
840 우정이 무엇이기에 김길남 2019.08.07 19
839 동자꽃 백승훈 2019.08.06 12
838 술 잘 빚던 어머니의 솜씨 김삼남 2019.08.06 4
837 8월 ㅜ6일의 히로시마를 생각하며 정근식 2019.08.05 10
836 89세까지만 살래요 한성덕 2019.08.05 61
835 아시아통신 보도 김철희 2019.08.04 15
834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곽창선 2019.08.03 5
» 나의 원예치료 신효선 2019.08.01 7
832 나원참, 기가 막혀서 한성덕 2019.08.01 8
831 막내딸과 외손자 구연식 2019.07.31 26
830 퓨마의 첫 외출 정근식 2019.07.31 2
829 노인장대 백승훈 2019.07.30 25
828 전복죽에 담긴 엄마의 사랑 한성덕 2019.07.2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