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성 가는 길

2020.04.11 14:16

전용창 조회 수:4

시온성 가는 길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그날은 꽃비가 내렸다. 꽃비는 내 머리 위에도, 아들 머리 위에도, 사거리 길가에서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 머리 위에도 내렸다. 동네에서 개나리꽃도, 목련꽃도, 가로수 벚꽃도 구경은 했지만 ‘참 예쁘다’며 눈길만 주었다. 못 본 꽃은 ‘법정 스님’처럼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에 보았던 아름다운 꽃을 연상하면 금세 무릉도원이 펼쳐졌다. 그렇게 하동 십 리 벚꽃도 구경하고, 지리산 바래봉 철쭉 군락도 보았다. 그런 나의 마음도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꽃의 자태와 향기를 오감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다. 오늘은 왠지 자꾸만 창밖으로 눈이 갔다. 벚꽃이 눈꽃 송이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저렇게 예쁜 꽃도 지면 내년 봄에나 다시 볼 수 있겠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날 벚꽃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집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정기야 밖에 나갈까?

하니 아들은 좋아했다. 그렇게 정기와 나는 꽃구경을 나섰다나들이라고 해야 큰 도로 갓길 인도를 따라 거니는 것이었다. 정기는 흩날리는 가로수 벚꽃을 잡으려고 팔을 쭉 뻗으며 즐거워했다.

 “정기야 이 만큼만 꽃을 잡아봐. 과자 사줄게.

 나는 손바닥을 폈다가 오므렸다. 한낮인데도 가로수 벚꽃은 햇빛보다 눈이 부셨다. 정기는 마스크를 벗었다. 나도 따라서 벗었다. 상쾌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가까이 가지 않고는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정기는 밖에 나오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모르는 아저씨한테도, 할머니한테도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들으며 반가워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찾아 반복 기능으로 설정했다.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 그 보좌 앞에 둘러서 / 그 보좌 앞에 둘러서 / 큰 영광 돌리세 / 큰 영광 돌리세’

 

 나는 정기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정기는 소중한 보물처럼 두 손으로 쥐었다. 우리는 큰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며 꽃비를 맞았다.

  어느덧 1킬로 가까이 걸어서 평화로 사거리까지 왔다. 여느 날처럼 J 은행 문 앞에는 키가 작고 뚱뚱한 아저씨가 딸기, 참외, 사과, 오렌지, 바나나 등 과일 좌판을 벌여놓았고, 그 옆에서는 아주머니가 대파, 미나리, 상추, 비트 등 채소를 펼쳐 놓았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서 구릿빛이었다. 아주머니는 찬송가 소리가 나는 우리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저 밝고도 묘한 시온성 향하여 가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물끄러미 내 얼굴과 아들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부자가 나들이하는 모습이 부러웠나 보다. 아주머니를 보자 나는 문득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예년 같으면 개나리꽃이 필 때면 어머니 산소를 찾았는데 올해는 얼마나 서운해하실까. 내가 아픈 것을 알고 계실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라는 비문이 보였다. ‘봄바람이 조금만 훈훈하면 찾아뵐게요.

 

 벚꽃을 따라 로터리를 돌아서니 H 아파트 단지 내에 개나리꽃, 목련꽃, 싸리꽃이 예쁘게 피었다. 꽃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벚나무 뒤로 하얀 목련꽃과 자목련이 나란히 서 있었다. 벚꽃에는 벌들이 찾아왔으나 목련꽃에는 가지 않았다. 다른 벌이 한 번 스쳐 간 꽃은 그냥 지나갔다. 열매를 맺는 꽃만 향기와 꿀이 있나 보다. 꽃은 벌에게 꿀을 주고 벌은 열매를 맺게 하고 열매는 새들의 먹이가 되니 자연의 섭리가 경이롭다. 백옥같이 고운 잎을 뚝뚝 떨어뜨리는 목련꽃이 애련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꽃들의 지혜를 배운다. 어떻게 자기 차례를 기억하며 순서대로 꽃을 피울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농사 달력을 보며 씨를 파종하는데. 꽃들은 어디에다 생각을 저장했다가 기억해낼까? 올봄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가 피었다. 꽃들이 순서를 지키기에 오랫동안 꽃구경을 할 수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정기야, 이제 집에 가자.

 ‘시온성 가는 길’도 이렇게 예쁜 꽃비가 우리를 반기며 내릴까? 정기와 나는 함께 시온성에 갈 수 있을까? 우리 가족 모두가 가야 정기가 울지 않을 텐데. 되돌아가는 길에도 아들의 손에서는 ‘시온성’이 흘러나왔다. ‘저 밝고도 묘한 시온성 향하여 가세’ ’시온성‘은 하늘나라일까, 아니면 정기와 내가 가는 우리 집일까? 로터리를 돌아 나오며 다시 노점상에 들렀다. 아주머니를 만났다.

  “대파 한 단 주세요. 얼마예요? 

 3천 원입니다.

  “참 싸네요.

 돈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곳을 지나올 때 벨이 울렸다. 동생의 전화였다.

  ”형님, 여기 어머니 산소예요. 오늘 청명이라 날씨가 좋아서 어머니 산소에 왔어요.

  ”동생, 참 잘했네. 개나리꽃 피었어?

  “네, 활짝 피었고 산벚꽃도 만개했어요. 산소 꽃병에 조화도 꽂아 놓았어요.

                                                           (2020.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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