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줄인데

2008.06.12 03:32

노기제 조회 수:722 추천:151

20080520                밥줄인데

        “짐은 직접 갖고 들어가시던지 벨보이가 방 앞까지 배달하던지 편리하실대로 하겠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창들이 주관하는 중국여행에 미국에 거주하는 몇명이 서울에서 합류했던 때의 일이다. 4박5일의 여행이니 짐들은 아주 간단한 편이다. 날마다 관광 장소가 바뀌니 따라서 묵는 호텔도 다르다. 가이드가 하는대로 따라보니 많이 불편했다. 40명의 가방을 벨보이 둘이서 각방을 돌며 배달하니 시간이 걸린다. 빨리 짐 받아서 정리하고 샤워라도 해야 이어지는 저녁 스케줄에 늦지 않게 참석 할 수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관광하는 낮동안의 버스에서 불평이 나왔다. 가이드에게 얘기했더니 흔쾌히 각자 자기짐 찾아서 들고 가시란다. 가이드의 안내가 있었으니 호텔에 도착한 후, 버스에서 각자 자기 짐을 챙기는 과정에 마찰이 생겼다. 건장한 벨보이 두명이 빠른 동작으로 짐들을 카트에 옮게 놓기 시작한다. 어어, 아닌데. 우리가 할건데. 한국말을 못하는 중국 벨보이들, 중국말을 못하는 우리 한국 동창들. 또 한참 기다려야 하잖아. 누가 가이드 한테 얘기 좀 하라구 하지.
        호텔 카운터에서 방 배정 하느라 밖에 정차한 버스 주변에선 가이드 모습은 볼 수 없다. 별 생각 없이 영어로 벨 보이들의 하는 일을 중지 시켰다. 잘 알아 듣지는 못해도 영어로 말을 하니 주춤 하면서도 가이드가 시켰다며 다시 계속하려 한다. 조금 높아진 소리로 다시 말했다. 이번엔 좀 고집스럽게 하던 일을 계속한다. 자기네가 해야 할 일이며 연상 가이드, 가이드만 팔아댄다.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일 진행을 결정한대로 할 것이지 뭐 이런 경우가 있나. 말 따로 행동 따로. 무조건 입 서비스만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싫다.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우리가 직접 하기로 했다는 생각이다. 이번엔 제법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하던일 당장 그만 두라고. 아니면 가서 가이드를 데려 오라고.  더 이상 하던 일을 고집하지 못하고 둘이서 중국말로 작은 소리로 불평을 하는 모양이지만 모른척 했다. 잠잠히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이 그제서야 우르르 자기 짐들을 챙겨 호텔로 들어간다.  그 때 흐르던 적막한 공기. 순간 나 자신이 머슥해지던 기분. 아무도 나를 거들지도 않고, 응원도 없고, 그렇다고 따가운 눈총도 없다. 아차, 내가 실수 했나?
      아직도 젊은 혈기가 남아 정해진 직선으로만 가려는 융통성 없는 나를 느끼며 잠시, 차선책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 했다. 우린 기다림이 싫어서 가이드에게 의논 했고, 가이드도 별 생각 없이 동의 한 일이다. .그러나 벨 보이들 입장에선 전혀 생각을 안 했다.
     그들에겐 바로 수입과 연결이 된다. 40명에게 받게 되는 팁을 계산 해 보라. 가이드 말로는 2인 1실이니 방마다 1불씩 만 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벨 보이들의 계산은 짐 한개당 1불을 계산 한단다. 어떤 친구는 둘이 1불 줬더니 가지 않고 그냥 서 있더란다. 더 달라는 뜻이란다.
      배정 된 방을 찾아 올라가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모습을 지켜 보는 벨 보이들이 보인다.. 순발력 있게 20불 짜리 두 장 꺼내서 둘에게 주라고 손 닿는 친구에게 건네고 다시 한 사람 거쳐서 그들에게 전해지도록 했다. 내겐 그냥 40불 이지만 그들에겐 목 빼고 기다렸던 손님들이자 20불이란 팁이 아닌가. 돈. 일하는 맛이 나는 돈, 결국 그들의 밥줄을 생각 없이 짓밟으려 했던 내 짧은 생각이었다.
     힘들것도 없는 가방 하나, 바퀴가 달렸으니 쉽게 끌고 방으로 들어서니, 곧 바로 샤워실로 가는 룸메이트의 얼굴에 비친 미소가 편안하다. 또한 팁을 받고 상했던 기분 풀려 있을 두 벨보이들의 얼굴에서도 같은 미소가 보인다. 이어서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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