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과 잔소리
2007.10.28 04:13
- 스트레스 받은 아이,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 -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먹었는지 자판기를 두드려도 모니터에 글자가 뜨지 않는다. 눌러보고 또 눌러
봐도 아무 흔적이 없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어 그만 전원을 꺼 버렸다. 그리곤 또 다시 전원을 넣고
하기를 벌써 며칠 째. 생각 같아서는 내다 버리고 싶지만 그래고 어쩌나. 오늘은 인내심을 가지고
살살 달래며 한번 작업을 해보리라 마음 먹고 앉아 컴퓨터를 켰다. 글자 한 자를 치고는 어찌하나
보자 하고 앉아 있으니 슬그머니 내가 친 글자가 뜬다. 탁탁 치고 기다리고 있으면 꾸물꾸물 나타나
는 글자. 답답하지만 나타나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반드시 글자가 나타난다는 컴퓨터 지금 상태를
알고, 믿고, 이해하고, 기다리고 앉아있으려니 '옛날 아이들 사춘기에도 이렇게 고마운 마음으로
기다려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일을. 즉시 글자가 나타나 주지 않는다고 화면을 닫고 전원을 빼고 난리를 치
듯, 그때는 정말 아무 소용도 없는 애를 혼자서 많이도 태웠다. 언제나 저 TV를 끄고 공부하러
들어 갈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 "인제 그만 끄고 방에 들어가 공부해." 소리가 목까지 차는 걸 누르
고 있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었는지. 그 말을 참고 부엌을 들락날락 하며 5분을 더 있으니 아들은
TV를 끄고 방에 들어갔었다. 한 발 늦추기를 정말 잘 했구나.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고, 그 잠깐
을 못참고 고함을 질러 서로 마음이 상한 적도 많이 있었다. 돌아보면 아이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계획도 있는 걸 언제나 내가 앞질러 가는 데에 문제가 있었었다.
얼마 전, 한인 학부모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청소년 범죄'에 관한
세미나를 위해 연사를 초빙하느라 전화를 거는 등 뒤에서 딸이 말하더란다. "엄마, 경찰을 부를게
아니라 카운슬러를 불러야해. 우리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다고 경찰을 불러? 우리들이 경찰을 불러
서 교육을 받을 만큼 나쁜 아이들이야? 우리들 보다 엄마들이 먼저 상담을 받아야해. 엄마들이 더
문제야."
학교에 가면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 아이들도 있고, 집이나 학원 가기 싫다며 밖에서 빙빙 도는 아
이들이 많은데, 모두가 다 엄마의 잔소리 때문이라고 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죽고 싶어."
"외로워"가 요즘 아이들의 현주소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정말 그정도일까? 설마.) 그렇지만 옛날
의 나를 돌아보면 아들이 얼마나 숨막혀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잠시라도 책상에 앉아
공부하지 않으면 곧 성적이 떨어질 것 같고, 친구들이랑 빈둥거리며 놀고 있으면, 공부에 흥미가
떨어지면 어쩌나 큰일 났다 싶고. 좋은 과외 선생님을 찾아줘야 할텐데. 좋은 커뮤니티 서비스
를 해서 봉사 점수를 올려야 할텐데------ 내 마음엔 언제나 조바심이 있었다. 그 조바심과 애태
움이 가져다 준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지금도 생생히 생각나는 말이 있다. "엄마, 이 세상에서 나보다도 더 내 성적 땜에 고민하는 사
람 있음 나와보라고 해!" 11학년 들어 성적이 떨어졌다고 나무라는 내게 한마디 하고는 휙 나가
버렸었다. 공부 못한다 스트레스 준다고 공부가 잘 해지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하라고 해서 공부를 할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는 느긋이 믿고 아이가 철들어 쫒아와 주기를 기다
리는게 최선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안일한 생각인가? "나이 다 들어 어른이 되고 나서 철들면 뭐해
요?" 따지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그 시절, 나의 잔소리 땜에 내 아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으
로 잠시라도 살았다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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