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었다. 존대말로 바꾸어 보자는 과제였다. 문제 가운데 하나가 “저 사람이 우리 아빠야”였는데, 한 학생이 “저 인간이 우리 아버지 입니다”로 풀어왔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람’의 다른 말로 ‘인간’이란 단어가 있기에, 존대말로 알고 그렇게 답을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어가 너무 어렵다고 툴툴거린다.
  학기 초, 주말 한국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상당수의 아이들이 마지못해 부모의 손에 끌려 나온다. 싫은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그런 아이들이 한국어에 흥미를 느끼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나오고 싶도록 만들어 내는 일은 교사의 책임이다.
   한글을 신나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은 없을까. 이 일을 고심하던 중, 노래를 통해 한국어를 가르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한 주일에 한 곡목 이상, 가사의 뜻을 이해하고 읽고 쓰고 암기 하도록 했다. 선생님이 기타를 가져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즐겁게 노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게 했다. 아이들의 반응이나 학습효과가 예상외로 좋았다.
  벌써 10년 넘게 우리 학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학습방법인데, 처음 학교를 싫어하던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재미를 붙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나오게 된다.
   많은 학교에서, 그리고 관계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학습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며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매년 연수회 등을 통해 선생님을 훈련시키며 아이들 맞을 준비를 한다. 그런데도 해마다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작년 이맘때쯤, 어떤 어머니로부터 “변호사가 된 딸이 한국과 관련된 업무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려 하는데 특별지도를 해 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면서 어릴 때 자기 손목을 끌고 억지로라도 한글 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일에 대해 부모를 원망한다고 했다. 이런 예가 한 둘이 아니다. 20년 넘은 한국학교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는 곳이 있는데, LA 한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성인 한국어반이다. 현장을 가 보았더니 200여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많다고 했다. 몇몇 한국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들 모두 어릴 때 한국어를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한국학의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다. 외국인이 기를 쓰고 한국어를 배우는 시대다. 우리 2세들이 한글을 배우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그들의 뿌리가 깊어지고, 조국의 전통과 문화를 배워 익힘으로써 마르지 않는 샘물 하나를 얻는 일이 될 수 있다. 진학이나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필요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한글을 가르치고 뿌리를 심어주어야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은, 중국 화교들이 끈끈한 협동심으로 자신들의 부를 이루며 본국의 발전을 위해 큰 몫을 담당하는 힘의 원천은, 그들의 튼튼한 뿌리교육 때문이다.
  오는 토요일, 대부분의 주말 한국학교가 일제히 등록을 받는다. 늦기 전에,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한국학교를 찾아갈 일이다.
  한 두 학기만 보내고 말아서도 안 된다. 언어교육은 꾸준함이 필요하다. 적어도 “저 인간이”아닌 “저 분이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때 까지는.
                  <07년 9월 5일자 미주중앙일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