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미술관
2008.02.09 10:50
어느 시인의 미술관 미주시인 2007
오래 전 일본 신문에서 읽은 기사이다. 글은 어느 한 도시의 미술관에 대한 기사였고, 개관 삼 주 년을 맞는 미술관은 그곳 사람들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기사는 찡하게 내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한국의 IMF 때와 같이 일본에도 최악의 실업 율을 기록한 불경기가 있었다. 그때 한 시인의 미술관이 우뚝 서게 된 것은 우연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아픔과 괴로움을 읊어온 시인의 심금이 그들 마음에 닿아서 아픔과 함께 같이 걷게 되었겠지.
이름은 “相田(아히다)미쓰오 미술관”. 서예가이자 시인으로 알려진 한 사람의 마음을 읽기 위해, 그 미술관에는 하루 수천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간다 했다. 샌달을 끌고 나타난 여고생이 그의 글 앞에 서서 가만히 울고 있는가 하면,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어머니가 힘없이 걸어 들어와 서성거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중에도, 대낮에 찾아온 노 넥타이의 중년 남성들이다. 실업 중임에 틀림없는 그들이 조용히 서서 수첩에 시를 베끼고 있는 뒷모습은 가슴을 메이게 한다 했다.
어떤 글이기에 어떤 시이기에 사람들을 그렇게도 감동시켰을까. 두 편의 시가 실려 있었다. 틀림없이 불가래 같은 손으로 썼을 붓글씨에 투박한 정서를 담은 시다. 인간의 아픔을 조아렸다. 너무나 진솔하기에 힘든 자의 마음을 치유 하였는가 부다.
道
긴 인생은 말이여
아무리 피하려 해도
기어이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
그런 것이 있는 것이제
그럴 때는 그 길을
가만히 걷는 것이여
짜증이나 기죽지 말고서
가만히 걷는 것이여
그저 가만히
눈물일랑 보이면 안 되제이
그러면 바로 그 때
인간으로서의 생명
뿌리가 깊어지는 것이여
그 기사 속에는 또 이런 일도 적혀있다. 최근에 어느 절에서 그의 시글이 발견되었다. 폭이 2007cm, 길이 67cm의 어마어마한 역작은 이십여 년 전부터 남 몰래, 절의 본당에 걸려 있었던 글이란다. 그것은 선종(禪宗)의 漢시집 “禪林句集”에 있는 구절을 본으로, 인간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무상의 세계를 그린 것이다.
憂
옛 사람의 시에 있었습니다.
너를 보라 그 두 눈의 색은
말하기 전에는 근심이 없는 거와 같으니
근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말하지 않을 뿐이 지요
말 할 수도 없이 깊은 근심이기 때문입니다
말 할 수도 없이 아픈 슬픔이기 때문입니다.
.................
..................
가만히 참고 있으니까
두 눈이 맑게 보이는 거시지요
맑은 눈 속 깊숙이 있는
깊은 근심을 아는 인간이 되어보리
그는 인간 존재의 아픔과 고통의 글을 미친 듯이 써 갔다. 뭇 사람들도 지금 그가 살아온 길을 함께 걷고 있다. 한 시인이 사람 사는 안에서 이 만큼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인간을 직시하는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의 이름도 “一人”, 즉 한 사람이라고 지었다. 기본 되는 사람의 자세를 진지하게 모색한 시인임에 틀림없다. 인간 삶의 아픔을 그리고 인간 모순의 고뇌를 담은 이 미술관은 인간이 사는 한 불경기는 없을 전시장이 될 것이다. 보고 싶은 곳이 하나 더 는 것에 긴 한숨을 짓는다.
이 미술관에 대한 기사에 숙연해 지면서 나는 이런 공상에 잠겼다. 우리에게도 이 같은 미술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름 있는 시인들의 시를 모아, 한자리에서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시 미술관이다. 세계에는 미술관이 셀 수도 없이 많다. 그 미술관에서는 많은 예술가의 작품들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시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만약 시 미술관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면, 한 많고 정이 넘친 사람들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 앞에서, 곁 드려진 진달래 잎을 만지며 시름에 잠길 것이다, 또 어떤 고독한 방랑자는 고원 시인의 “물길”이 좋아 고향 땅 밟듯 발길을 옮기는 곳, 시 미술관! 시이면서 예술이고 예술이면서 시가 되는 그런 멋쟁이 미술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시인은 말할 것이다. 시는 그렇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고. 무리 속에서 어떻게 시를... 하고 나무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러고 싶은 것은 相田미술관 탓이다. 그 미술관은 지금 모름지기 엄청난 일을 해 가고 있다.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 어느 시인의 미술관 | 배희경 | 2008.02.09 | 34 |
| 4598 | 별이 빛난 밤 | 이용애 | 2008.02.09 | 56 |
| 4597 | 얼굴이 있었다 | 배희경 | 2008.02.09 | 54 |
| 4596 | 수봉자훈(秀峯自訓) | 정용진 | 2008.02.09 | 48 |
| 4595 | 지금 가장 추운 그곳에서 떨고 있는 그대여 | 이승하 | 2008.02.08 | 48 |
| 4594 | 쓸쓸한 명절 연휴를 보내고 있답니다 | 이승하 | 2008.02.08 | 52 |
| 4593 | 몸살 | 박정순 | 2008.02.08 | 48 |
| 4592 | 마네킹 | 박정순 | 2008.02.08 | 52 |
| 4591 | 봄은 오려나 | 유성룡 | 2008.02.08 | 59 |
| 4590 | 청한(淸閑) | 정용진 | 2008.02.08 | 40 |
| 4589 | 혼돈의 깃발 | 강성재 | 2008.02.08 | 50 |
| 4588 | 꼬리연을 날리다 | 강성재 | 2008.02.08 | 53 |
| 4587 | 동백꽃 기다리며 | 장정자 | 2008.02.08 | 44 |
| 4586 | 늙은 어머니를 씻기며 | 장태숙 | 2008.02.06 | 43 |
| 4585 | 몸살 고치기 | 오영근 | 2008.02.06 | 54 |
| 4584 | 설 | 정용진 | 2008.02.06 | 41 |
| 4583 | 哀悼 金榕八 詩伯 | 정용진 | 2008.02.06 | 38 |
| 4582 | 바람과 비 | 정용진 | 2008.02.06 | 50 |
| 4581 | Le Roi Dense | 박정순 | 2008.02.04 | 43 |
| 4580 | 멱고배당국 | 오영근 | 2008.02.04 | 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