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작인생
2009.05.10 11:11
가작 인생
"아니, 이 선생님은 또 '가작'이세요?"
이번 중앙일보 신춘문예 넌 픽션 부분에 가작으로 당선된 후 들은 말이다.
'또'라니......?
이렇게 대단한(?) 경사에 축하의 말보다 '또'라는 표현에 조금은 의아스럽게 잠시 멈칫 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정말. 나는 '또', '가작'을 했다. 당선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처음 응모할 때는 가작도 좋다, 입상만 한다면. 하는 마음으로 응모하였는데 막상 입상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당선작 없는 가작'이라는 말에 약간, 아니 솔직히 많은 아쉬움이 따른다. 이왕이면 당선이라는 소식이었다면. 그것도 어차피 당선작도 없는데.
이제 글을 쓴지 2년 남짓. 하나님의 은혜로 일 년 내에 세 번의 상을 받았다. 그건 정말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항상 '가작'을 면치 못했다. 지난 해, 2007년 5월 미주 한국일보와 미주 문인협회가 주관하는 백일장에서 겨우 로스 엔젤레스 카운티 근교에 있는 사람들이 30-40명가량 모여 응모 했을 때에도 난 '가작'(차하)으로 입상하였다.
지난 연말 미주 크리스챤 문인협회의 신인문학상 모집에서도 얼마나 많은 작품이 나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 결코 많은 작품이 응모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때에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상하였다.
그런가 하면 문인으로의 등용문으로 가장 자부심을 느끼며 당당히 입성하여 문인이라면 누구나 이 길로 등단하기를 바라는 길, 신문의 신춘문예인 이번 중앙신인문학상에는 미전역에서 실시되는 큰 행사이며, 600편이 넘는 작품들이 응모하였다는데 이번에도 난 변함없이'가작'으로 당선되었다. 그것도 역시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가작 인생'. 그러고 보니 내 삶에 참 많은 날들 속에서 어릴 때 몇 번을 제외하고는 늘 가작을 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에 온지 한 3년쯤 되었을까, 어덜트 스쿨에서 영어 에세이 대회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각 레벨에서 겨루는 대회였다. 그때야 솔직히 글을 쓴다는 마음 보다는 영어를 연습한다는 마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때도 난 2등을 하였다. 2등을 하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를 가르치는 백인 선생님이 "난 당신이 왜 이등이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 당신이 이등이고 저 사람이 일등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심사는 우리 교사들이 했고, 등수는 사무실에서 먹인 것인데 당신이 이등 된 사실에 나는 의아하다"라고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2등만 하여도 나에게는 대단한 자부심과 기쁨이었다.
1등을 해본적도 없지는 않지만, 유난히 2등을 많이 해본 나. '가작'의 삶을 살아온 내 인생길.
돌아보니 그것은 어쩌면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정상에서는 항상 불안하단다. 고수해야 하는 정상의 자리가 혹시라도 남에게 빼앗길까 두렵고, 2등으로 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밤에도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불안하고 두려워 꿈속에서도 떨어지는 꿈이나 가위눌리는 꿈을 꾸며 안절부절 한다니 그 얼마나 편안하지 못한 삶인가.
그리고 정상에 서면 이제 다 이루어 보았다는 자신감에 교만하여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태만하여 삶이 점점 나태하게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1등은 교만하기도 쉽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니 자신감이 넘쳐서 남을 우습게 여기고 남의 것을 하찮게 여기기 쉬운 것이다. 나 역시 늘 1등만 하고 살았다면 엄청난 교만이 내 속에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넘치는 자신감에 너무 당당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양 어깨에 가득 힘을 넣고 턱은 한껏 치켜들고 걸어갔겠지.
그러나 2등은 언제나 부족하다. 1%가 늘 부족하니 항상 갈급하고 자꾸만 노력하게 되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수고와 땀 흘림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2등은 사람들이 대하기도 편안하다. 늘 조금 부족한 사람. 약간 모자라는 사람. 그러기 때문에 그에게는 절대자가 늘 필요한 것이다. 매달리게 되고, 간구하게 되고, 갈급하며 애쓰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모자라는 것이 없어 당당하게 가슴을 활짝 펴고 사는 사람과 다르게 늘 모자라는 부분에 채워야 하는 무엇을 찾아다니는 그 마음은 늘 겸손이기 때문이다.
'가작의 인생'으로 늘 노력하게 만들고, 애쓰고 겸손한 마음으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늘 한 치만 모자라게 살아라.'하시는 말씀. 그래서 난 늘 한 치 모자라는 삶을 즐기며 살려한다.
일등 하여, 더 이상 나아갈 자리가 없어서 주춤대는 모습이 아니라 아직도 나에게는 더 나아갈 자리가 있으니 노력하고 애쓰며 기도하고 호소하여 한걸음씩 나아가리라.
오늘도 나는 가작 인생을 살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발부등 하며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한걸음씩 나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3/13/2008
"아니, 이 선생님은 또 '가작'이세요?"
이번 중앙일보 신춘문예 넌 픽션 부분에 가작으로 당선된 후 들은 말이다.
'또'라니......?
이렇게 대단한(?) 경사에 축하의 말보다 '또'라는 표현에 조금은 의아스럽게 잠시 멈칫 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정말. 나는 '또', '가작'을 했다. 당선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처음 응모할 때는 가작도 좋다, 입상만 한다면. 하는 마음으로 응모하였는데 막상 입상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당선작 없는 가작'이라는 말에 약간, 아니 솔직히 많은 아쉬움이 따른다. 이왕이면 당선이라는 소식이었다면. 그것도 어차피 당선작도 없는데.
이제 글을 쓴지 2년 남짓. 하나님의 은혜로 일 년 내에 세 번의 상을 받았다. 그건 정말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항상 '가작'을 면치 못했다. 지난 해, 2007년 5월 미주 한국일보와 미주 문인협회가 주관하는 백일장에서 겨우 로스 엔젤레스 카운티 근교에 있는 사람들이 30-40명가량 모여 응모 했을 때에도 난 '가작'(차하)으로 입상하였다.
지난 연말 미주 크리스챤 문인협회의 신인문학상 모집에서도 얼마나 많은 작품이 나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 결코 많은 작품이 응모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때에도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입상하였다.
그런가 하면 문인으로의 등용문으로 가장 자부심을 느끼며 당당히 입성하여 문인이라면 누구나 이 길로 등단하기를 바라는 길, 신문의 신춘문예인 이번 중앙신인문학상에는 미전역에서 실시되는 큰 행사이며, 600편이 넘는 작품들이 응모하였다는데 이번에도 난 변함없이'가작'으로 당선되었다. 그것도 역시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가작 인생'. 그러고 보니 내 삶에 참 많은 날들 속에서 어릴 때 몇 번을 제외하고는 늘 가작을 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에 온지 한 3년쯤 되었을까, 어덜트 스쿨에서 영어 에세이 대회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각 레벨에서 겨루는 대회였다. 그때야 솔직히 글을 쓴다는 마음 보다는 영어를 연습한다는 마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때도 난 2등을 하였다. 2등을 하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를 가르치는 백인 선생님이 "난 당신이 왜 이등이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 당신이 이등이고 저 사람이 일등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심사는 우리 교사들이 했고, 등수는 사무실에서 먹인 것인데 당신이 이등 된 사실에 나는 의아하다"라고 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2등만 하여도 나에게는 대단한 자부심과 기쁨이었다.
1등을 해본적도 없지는 않지만, 유난히 2등을 많이 해본 나. '가작'의 삶을 살아온 내 인생길.
돌아보니 그것은 어쩌면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정상에서는 항상 불안하단다. 고수해야 하는 정상의 자리가 혹시라도 남에게 빼앗길까 두렵고, 2등으로 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밤에도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불안하고 두려워 꿈속에서도 떨어지는 꿈이나 가위눌리는 꿈을 꾸며 안절부절 한다니 그 얼마나 편안하지 못한 삶인가.
그리고 정상에 서면 이제 다 이루어 보았다는 자신감에 교만하여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태만하여 삶이 점점 나태하게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1등은 교만하기도 쉽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으니 자신감이 넘쳐서 남을 우습게 여기고 남의 것을 하찮게 여기기 쉬운 것이다. 나 역시 늘 1등만 하고 살았다면 엄청난 교만이 내 속에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넘치는 자신감에 너무 당당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양 어깨에 가득 힘을 넣고 턱은 한껏 치켜들고 걸어갔겠지.
그러나 2등은 언제나 부족하다. 1%가 늘 부족하니 항상 갈급하고 자꾸만 노력하게 되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수고와 땀 흘림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2등은 사람들이 대하기도 편안하다. 늘 조금 부족한 사람. 약간 모자라는 사람. 그러기 때문에 그에게는 절대자가 늘 필요한 것이다. 매달리게 되고, 간구하게 되고, 갈급하며 애쓰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모자라는 것이 없어 당당하게 가슴을 활짝 펴고 사는 사람과 다르게 늘 모자라는 부분에 채워야 하는 무엇을 찾아다니는 그 마음은 늘 겸손이기 때문이다.
'가작의 인생'으로 늘 노력하게 만들고, 애쓰고 겸손한 마음으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임에 틀림이 없다. '늘 한 치만 모자라게 살아라.'하시는 말씀. 그래서 난 늘 한 치 모자라는 삶을 즐기며 살려한다.
일등 하여, 더 이상 나아갈 자리가 없어서 주춤대는 모습이 아니라 아직도 나에게는 더 나아갈 자리가 있으니 노력하고 애쓰며 기도하고 호소하여 한걸음씩 나아가리라.
오늘도 나는 가작 인생을 살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발부등 하며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임을 깨닫고 감사하면서 한걸음씩 나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3/13/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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