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2009.05.04 06:50
사랑하는 딸에게
봄이야. 생동하는 만물의 입김 소리가 천지에 가득하구나.
너에게서도 맡아지는 이 봄 내음.
봄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또한 힘든 시간이기도 하다.
농부들은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단다. 나른한 봄이 몰고 오는 피곤과 싸우며.
너의 봄도 어렵지?
물이 올라 한창 예쁘고 생기발랄할 시기이기도 하지만,
네가 감당해야하는 많은 일들이 너를 엄청 피곤하고 힘들게 만들고 있구나.
그냥 낮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지나버렸기를 바라는 11학년.
힘들어도, 아파도, 숨이 막힐 듯 조여 오는 스트레스도
결국은 네가 해결하고 나가야 하는 일이니 혼자서 얼마나 힘들겠니.
공부하는 것이 힘들 때마다, 스트레스가 가득히 쌓일 때마다 책은 덮어버리고
엄마 곁에서 이야기하며 그 스트레스를 풀기 원하는 네가 착하고 고맙다.
요즘 십대들 같지 않아서 말이야.
하지만 때로는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한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마음에서 가득히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구나.
공부란 것이 그렇게 정직한 것이잖니.
너의 성적이 요즘 자꾸 떨어지고 있음이 얼마나 내 마음에 아픔을 주는지 너도 알고 있지?
네가 원하는 대학은 자꾸 너에게서 멀어져 가고.
간혹 엄마는 혼자서 눈물을 흘린단다.
나의 꿈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친구에게, 이웃에게 떠들고 다닌 그 자랑들이.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건 엄마의 욕심이었어.
너를 위한다는 핑계아래 있는.
이제는 정말 너를 위한, 나의 꿈이 아닌 너의 꿈을 내가 함께 공유하도록 노력하마.
때로 네가 뒷걸을 치고 싶을 때, 행여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길에 돌부리가 없는지 살펴줄게.
주저앉고 싶을 때는 네 곁에 함께 주저앉아 네가 좋아하는 클래식음악을 틀어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나 나누며 푹 쉬기도 할 거야.
그러다 언젠가 네가 다시 일어서면 기쁨으로 너에게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내마.
이제부터 엄마의 눈물은 가슴으로만 흘릴게.
넉넉지 못한 살림에 학원도 보내지 못하고,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엄마가
너에게 단 한마디의 조언도 해 줄 수 없음이 늘 미안하고 가슴 아플 뿐이란다.
모든 것 혼자서 다 알아서 처리하라고 맡겨놓고 그저 등 뒤에서 바라만 보는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겠니?
피곤한 봄은 곧 지나갈 거야. 벌써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잖니.
너의 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아지랑이가 사라지면 피곤도 좀 물러갈 거라 생각한다.
힘내라.
조금만 더 참고 견뎌줄래?
이 봄이 너의 힘을 너무 많이 빼앗지 못하게 엄마가 늘 기도하고 있단다.
--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딸에게 엄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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