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소리<토요연재9>

2009.05.29 16:47

김영강 조회 수:45 추천:2

   여인이 준비한 양식으로 저녁을 먹은 다음 나는 내일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한 후, 일어나려고 했다. 언니는 정색을 하고 나를 또 붙들었다. 순간 나는 그녀가 지금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호텔 예약을 취소하라면서 내 손을 꼭 쥐었다. “여기서 자라” 는 그녀의 말꼬리엔 내가 가버릴가봐 안타까워하는 아쉬움이 끈끈이 묻어 있었다. 지금 언니에겐 내가 절대로 필요한 존재였다. 나는 호텔 예약을 취소하고 주저앉았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얘기를 계속했다.

   언니는 별말이 없었다. 옛날에도 그랬었다. 무슨 말을 할듯 말듯 서두를 던지기만 해놓고는 본론은 꺼내지를 않아 상대방의 호기심을 잔뜩 불러 일으켰다. 멀찌감치 앉아 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애경은 늘 그런 언니를 비방했다. 저렇게 침묵을 지키는 척하지만 맘속으론 끊임없이 자기의 주장을 외쳐대고 결국은 원하는 것을 다 성취하고야 만다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애경은 언니 때문에 항상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허리도 허리지만 내가 그동안 유방임에 걸려 좀 고생을 했어. 겨드랑 밑에 멍울이 만져져 병원엘 갔더니 그에 암이었어. 그래서 임파선 두어 가닥을 잘라내고 멍울도 재거를 했어. 그런데 또 폐로 전이가 됐었어. 초기에 발견이 되어 다행이었단다. 키모 받고 또 방사선 치료 받고 하는 것이 참 고역이었어. 이제 암은 다 떨어져 나갔어. 그래서 내 꼴이 더 망가진 거야. 내 온몸을 깔아뭉개고 기차가 수없이 지나갔는데 살아 남은 것도 다행이지 뭐. 꼭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있어 신께서 날 살려주셨는지 몰라.”    

   자신의 변함을 변명이라도 하듯, 그녀는 한참 만에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꼭 살아남아야 할 이유?

   꼭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내게 ‘꼭 부탁할 말이 있다’는 말과 동일한 것일까?

아직 시간은 있으니 기다려보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할 수 없이 내가 또 말문을 열었고, 소설의 첫부분을 화제에 올렸다. 좀 망설여지긴 했으나 애경의 죽음을 소설에 연관 지은 것이다.

   “첫머리에 동생의 죽음을 묘사한 부분은 꼭 언니가 겪은 일 같았어요. 애경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지 않나 하고요. 또 끝 부분에 교통사고로 위장하라는 대목도 나오고 해서요.”  

   그런데 언니는 내 본심을 정확히 눈치 채고 말끝을 칼날로 자르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째 대화가 벽에 부딪치는 기분이었다. 내겐 그러는 언니가 이상해 더 의심이 갔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이야. 허구의 세계, 말짱 지어낸 거짓말 말야. 소설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어? 애경은 분명히 교통사고로 죽었어.”    

   혹시 내게 ‘애경이가 그렇게 죽었단다.’ 하고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는 내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양심의 소리’ 운운했던 것도 내 오산이었다. 그렇담 왜 나를 이곳까지 불렀을까? 이민우와 얽힌 내게 향한 양심의 소리 때문일까?

   나는 얘길 들으면서 그녀가 내게 비장하게 한 말, ‘꼭 해야 할 얘기’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더 기다려도 얘기를 안 하면 내가 먼저 물어봐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다.

   정색을 하고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언니의 반응에 당황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참 언니도. 내가 소설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을 못 하겠어요. 어디서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언니의 상상력에 놀랐다는 거죠. 제 말은 소설이 그만큼 현실감 있게 잘 쓰여졌다는 거예요.”

   애경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심증을 굳혔던 나는 그렇지 않은 양 언니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옛날의 입장이 뒤바뀌어져 나는 지금 강자이고 언니는 약자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기에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또 그녀가 자꾸만 불쌍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빛이나 말씨에는 옛날의 그 당당함이 그대로 나타났고 내면엔 그 강인함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언니는 애경이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다.

   “애경이 남편 그랬어. 자길 만나기 전에 애경이가 어떤 남자와 동거를 했었다고.”  

   언니는 애경이로부터 소식이 두절되었던 사 년 동안의 행적을 그녀의 남편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남자를 잘못 만나 있는 돈 다 없애고 알코올 중독이 되어 재활원에서 고생하는 애경이를 자기가 구해줬다는 것이었다. 애경의 남편은 소설에서 서술된 톰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애경의 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흑흑 흐느끼면서 오열했다. 언니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분간이 안 섰으나 나도 그녀에게 감전이 돼버렸는지 금세 눈물이 났다. 그것은 애경을 위한 눈물이 아니라 언니의 모습에서 온 슬픔 때문이었다.

   애경의 남편은 요리사였다. 물론 한국사람이었다. 뉴욕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으로 봉사하는 진실한 종교인이었다. 어둠의 구석구석을 찾아 봉사활동을 벌이는 참으로 신실한 하느님의 종이었다. 직업은 중국식당 요리사였으나 꿈은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알코올재활센터에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한 애경을 만났다.

   그리고 애경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해선 언니를 만나 화해를 하고 따뜻한 가정을 갖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이 되어 결혼을 했으며, 그리고 바로 언니가 있는 엘에이로 달려왔다는 것이다. 물론 애경이 죽은 다음에 들은 이야기라 했다. 교통사고가 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한 그는 생활이 조금 안정이 된 후에 언니를 만나 그간의 사연들을 다 이야기하려 했는데, 이렇게 죽은 후에 그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다면서 애경의 죽음을 진실로 슬퍼했다는 것이다.    

   언니한테서 목돈을 받아쥐고 애경은 뉴욕으로 간 것이었다. 예전에 애경은 학교에는 적만 걸어놓고 여행사를 따라 자주 여행을 했었다. 더러는 남자들과 동행을 했고 또 혼자서도 잘 돌아다녔다. 어떤 땐 여행 중에 멋진 남자를 만났다고 떠벌이기도 했다. 자기가 돈을 다 댈 테니 따라만 가자고 내게 졸라대기도 했으나 나는 한번도 같이 간 적이 없었다. 그때, 동부 관광을 다녀와서는 뉴욕이 좋다고 열변을 토했었다. 그리고 이담에 뉴욕 가서 살 것이라 했다.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고 얘기를 하는 그 목소리엔 굴뚝 속 모양 그을음이 잔뜩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애경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갑갑하고 답답했다. 소설의 첫머리 내용이 자꾸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꼬치꼬치 묻는 것이 언니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 어쩌다가 교통사고사 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도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데 강미경은 내 마음을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식당을 보러 가다가 사고가 났었어. 차가 중심을 잃고 프리웨이에서 중앙 분리대를 받고 삥 돌았는데 뒤에서 과속으로 오던 트럭이 들이받은 거였어. 엘에이로 와서 한 달도 못 돼 일어난 사고였어. 둘이 같이 탔었는데 애경이만 죽은 거야. 애경이 남편은 겨우 살았었어.”

   한 달도 못 돼 애경이가 죽은 사실은 소설과 일치했다. 잠깐 말을 끊었다가 덧붙여진 말에 나는 또 헷갈렸다.

   “그리고 그 남자는 바로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일 년 후에 암으로 죽었어.”

   죽음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담, 애경이가 죽은 후에도 그와 계속 인연을 맺고 살았다는 모양새가 된다. 그녀는 콧물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클리넥스를 휴지통에 수북히 쌓아가고 있었다. 옛날에 우리 애경이애경이 하면서 진실로 애경이를 위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애경이가 늘 위선이라고 부르짖은.    

   강미경은 애경을 눈물의 강에 떠내려보내며 아주 깨끗하게 일단락을 지었다. 그리고 자기가 유산을 내주지만 않았더라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쉬지 않고 슬피 울었다. 다 자기가 보살피지 못한 탓이라고, 모두가 자기의 책임이라고 진실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 죽어서 어떻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겠느냐며 죽은 후의 걱정까지 했다.

   “내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면서도 어머니는 애경이 걱정을 하셨어. 정말 나는 그때 내 한 생명을 바쳐서라도 애경을 잘 돌보려고 굳게 맹세를 했었는데...”

   “내 한 생명을 바쳐서라도”라는 말에는 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이 대목에선 강미경의 말이 소설과 일치했다. 그러나 애경이가 자기를 괴롭힌 얘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소리도 없이 사라졌던 여인이 갑자기 나타났다. 나는 얘기를 하는 동안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강미경의 울음소리를 들었음이 확실했다. 아직 잘 시간은 아니지만 피곤해 보이니 침대에 누우라는 것이었다. 강미경은 괜찮다고 했다. 여인은 다시, 그러면 의자를 뒤로 젖혀 비스듬히 누우라면서 스위치를 작동하려 했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강미경은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염려 말라면서 여인을 안심시켰다. 실컷 울어 속이 시원해졌는지 그녀의 얼굴은 정말 괜찮아 보였다. 소낙비를 내리쏟다가 활짝 개인 하늘처럼 그녀의 표정에는 반짝하는 햇빛까지 비치고 있었다.

   언제 그렇게 흐느꼈냐는 듯, 정말 거짓말같이 말끔한 얼굴이었다. 나는 얘기를 들으면서 얼핏얼핏 뇌리를 스쳤던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내내 망설이다가 꺼낸 말이었다.

   “언니, 근데요. 소설에 의사가 다녀갔다는 얘기가 없었어요. 미국서는 사망진단 없이 시체를 치울 수는 없잖아요?”

   강미경은 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설도 현실의 법규에 맞아야 하는데, 이건 좀 잘못된 것 같아요.”

   만일 언니의 입에서 ‘아냐. 의사는 안 왔어.’하고 말이 툭 튀어나왔다면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판국이었으나 그녀는 침착했다.

   “네 말을 듣고보니 정말 그렇네. 거기까지는 내가 리서치를 못 했구나. 다음에 책으로 묶을 때는 그 대목을 집어넣어야 되겠다. 아주 좋은 지적을 해주었어.”

   작가의 입장에서 예외는 있는 법이라고 소설을 정당화 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솔직히 시인했다. 그래야 내 의심을 피해갈 수 있으니까. 소설에서 보면, 한밤중에 전화가 왔고 가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하더라도 역시 한밤중에 현장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까지 내내 강미경은 동생의 시체가 있는 방에서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강미경이 한밤중부터 아침녘까지 아파트에 있을 동안은 의사가 안 온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시간 상황을 보아서라도 의사가 오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만일 왔더라면 그 부분도 소설에 자세하게 서술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망진단서 없이는 시체를 움직일 수 없고, 또 장례식도 할 수가 없는 것이 미국의 법이다.

   그렇다면 사후에 모든 절차를 밟았단 말인가? 톰이 병원에서 일을 하니 가능한 일이었을까?

   강미경의 얘기를 다 듣고도 나는 계속 소설과 현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헤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