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이해 못 할 일

2009.10.06 08:19

성민희 조회 수:44

절대로 이해 못 할 일 벌써 몇 번째 인가. 차에 기름이 떨어져 길 한복판에 서서 낭패를 보는 일이. 오늘도 눈금 하나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계기판을 보면서 살금살금 기어갔는데 주유소를 눈앞에 두고 그만 차가 맥을 놓아버렸다. 시동을 껐다 켰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차를 달래 보지만 전혀 꿈쩍도 않는다. 좁은 골목을 빠져 나오던 미니 밴이 입구를 가로막은 내 차를 피하지 못해 안달이다. 얼른 차에서 내려 멋쩍은 웃음으로 꾸벅 인사를 했다. 차창을 열며 내다보는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 아줌마다. 반가움에 사정 이야기를 하니 얼른 타라고 한다. 어둑어둑 어둠을 뚫고 주유소 불빛 아래에 내리니 표류하던 배가 섬에 닿은 것 같다. 주유소 안을 들여다 보았다. 다행히 거기에도 야구 모자를 쓴 한국 청년이 껌을 쩍쩍 씹고 있다. 창을 톡톡 두드리며 기름을 따로 좀 살수 있냐 물으니 청년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자기는 일본 사람이라 못 알아 듣는단다. 어찌됐던. 기름이 떨어졌다는 말에 계산기를 탁탁 두드려 닫더니 바깥으로 나와주었다. 손가락으로 길 건너 차를 가리키자 대뜸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한다. 내 차를 밀고 오겠다고 한다. 차들이 휙휙 지나다니는 밤길이 위험하다는 내 걱정에 청년은 천연스럽게 되물었다. “기름을 갖다 부으려면 기름통도 사야 되는데 그게 10불 넘어요. 그렇게 돈을 쓸래요? 내가 밀고 오는 건 공짜인데---“ 청년은 뒤에서 밀고 나는 차에 올라 앉았다. 기어를 중립에 놓고 운전대를 잡는데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지나가는 차들이 우리를 피해 지그재그로 가기도 하고 뒤를 졸졸 따라 오다가 틈이 보이면 쏜살같이 빠져나가기도 한다. 맞은 편에서 오던 차들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곡예를 하듯 빗겨 지나간다. 차를 내 힘으로만 돌리는 것 같이 뻑뻑한 핸들을 쥐고 방향을 잡자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앉아있는 나도 이런데 뒤에서 미는 저 청년은 얼마나 힘이 들까? 마음이 가시 방석이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없다. 밟아도 소용 없는 엑셀을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밟으며 겨우 중앙선을 넘었다. 주유소의 불빛이 가까워졌나 싶은데,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가 바퀴 미끄러지는 소리를 크게 내며 멈추었다. 그리고는 팔의 문신이 불뚝불뚝 살아날 것 같은 청년이 뛰어내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청년을 쫓아 가느라고 내 눈은 사팔뜨기가 되어 버렸다. 두리번거리며 길을 건너온 문신 청년은 나의 바램 대로 차 뒤꽁무니에 붙어 섰다. 일본 청년과 손짓 발짓을 주고 받으며 차를 미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친구 같다. 차는 가볍게 주유소로 들어섰다. 두 청년에게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미처 내 맘을 표현 하기도 전에, 문신 청년은 휑하니 돌아서 가버리고, 일본 청년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갑자기 아무도 없는 진공 속에 혼자 남은 듯 고요해져 버렸다. 그냥 보내면 안 되는데. 쫓아가며 땡큐를 외쳐도 문신 청년은 차 시동 거는 소리만 보내준다. 눈길도 안주는 줄 뻔히 알면서 차가 멀리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있었다. 소중한 사람과 안녕도 못하고 헤어진 것 같은 섭섭함이다. 터벅터벅 걸어와 유리 창구에 얼굴을 갖다 댔다. 회전 의자에 앉아 TV를 보던 청년이 내 눈과 마주치자 씨익 웃는다. 참 신선하다. 뉘 집 아들인지 잘 컸구나 싶다. 불빛 아래 보이는 얼굴이 스무 살을 갓 넘은 것 같다. 내 아들도 스무 네 살인데. 생각이 들자 아들의 얼굴이 청년의 탄탄한 어깨 위에 얹힌다. 만일 내 아들이 이 청년들처럼 어두운 거리에서 남의 차를 밀겠다고 나선다면 어떨까?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진다. 남을 돕다가 변을 당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지하철에 떨어지는 승객을 구하려다가 죽은 재일 교포 청년도, 물에 떠 내려가는 친구를 구하려다 함께 빠져 죽은 이도 떠오른다. 방금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감격해 하면서도 내 아들이 그 자리에 선다면 말리고 싶은 이 이율배반을 어찌하나? 내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나뿐 아니라 모든 엄마들도 안 된다고 할 걸, 하는 얍삭한 생각까지 든다. 아니 친구들이랑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 날은 공교롭게도 아들만 둔 엄마들이 모였다. 일정이 긴 가족 여행을 위해 꼬박 이틀 동안 예약 전화에 매달려 힘이 들었다는 친구는, 혼자서만 애쓰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남편을 원망했다고 했다. 투덜거리는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의 아들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단다. 자기는 절대 와이프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하겠다고. 친구는 깜짝 놀라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런 일을 네가 하니! 와이프를 시켜야지!”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을 보다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케이트 윈슬렛을 나무 조각 위에 올려 주고, 자신은 빙해 속에서 죽음을 맞는 것을 두고 아들에게 한 마디 했단다. “너는 절대로 여자 친구에게 양보하지 마라! 네가 올라 타라! “ 괴상한 시나리오라며 서로 손가락질을 해가며 웃어대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진심이었다. 나를 도와준 청년들. 차들이 속도를 마음껏 높이는 밤길에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위해 차를 밀고 길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그들의 엄마가 들었다면 뭐라고 할까? 나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고마운 청년이었지만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