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이 글은 고 송상옥회장님께서 지난 해에 있었던 나의 시집 출판기념회에 오셔서 말씀해 주신 것을 같은 해 10월 어느 날 이메일로 나에게 보내주셨다.
따라서 이글이 고인께서 문학에 관해 남기신 마지막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같이 나누고 싶어 올린다.   -문인귀



          문인귀 시인 칠순 기념 시집
                            ‘낮달 출판에 붙여

                                                      송 상 옥

  올해 칠순을 맞은 문인귀 시인의 새 시집 ‘낮 달’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작고한 원로 시인께서 6년쯤 전 미주 시인들의 시에 대한 말씀 중에 “시는 문 시인의 시가 괜찮지”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시집을 읽으며 그 분의 그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 분은 문 시인의 시에서 여러 면을, 또 여러 면에서 보셨겠지만, 저는 ‘순수성’을 보았습니다. 시에서의 순수성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고, 당연한 요소라 하겠으나, 그렇지 못 한 시들이 범람하고, 또 그 당연한 것을 담는 데에는 고도의 기량이 요구되고, 또한 차근차근 쌓은 연륜이 필요한 것입니다. 문 시인의 시를 갖고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건 전문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제가 여기서 말하기는 부적절해서 생략하고, 다만 한 걸음만 나아가 한마디로 바꾸어 말하면, 문 시인은 ‘시의 생명’이 어디 있는지 아는 시인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를 쓴다고 시의 생명이 어디 있는지,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다 아는 건 아닙니다. 누가 가르쳐서도, 어느 책에서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시인 스스로 깨우쳐야지요. 그러니까 문 시인은 이미 그 경지에, 흔히 말하는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건 아닐까,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시의 순수성, 시의 생명, 그것은 곧 시심이기도 합니다. 시를 생각하는 마음, 시를 사랑하는 마음, 시를 읽는 마음, 시를 짓는 마음, 시를 갈구하는 마음, 시를 캐내는 마음.... 이런 것들이 다 시심입니다. 시심을 키운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갈수록 복잡하고 오염 투성이의 세상에서, 세속을 도외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 와중에서 진정 시심을 지니고 가꾸는 그 자체가 어려운 것입니다. 시뿐만 아니고 소설도 마찬가지이나, 문학 장르의 형식상 시에서 그 중요성이 더한 것입니다.    
  문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는 달이 많이 등장하고, 그 속에 보석인양 새하얀 박, 박꽃이 몇 군데 눈에 뜨입니다. 6년 전의 두 번째 시집 ‘떠도는 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새하얀 박꽃에 내리는 이슬마다
          촘촘히 들어앉는 이유에 대하여
          웃는 사람보다
          울고 있는 사람의 눈물을 찾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 ‘달의 침묵’ 일부
            
           칠흑 밤 그 어둠 속에서도
           돌아서서 내외하셨을 어머니의 숨결과
           소리 없이 다가서시던 아버지의 하얀 웃음이
           희고 보드란 새하얀 박속에
                                               -‘비밀스런 일’ 일부    

           밤이 깊어서야
           아내 손잡고 밖으로 나가본
           훤한 보름달, 거기로
           훌쩍 옮겨 앉으시는 두 분의 뒷모습
           여태
           저희 지붕 위에 내려 계셨던가봐요.
           어머님,
           아버님,
                                               -‘한가위 밤에’ 전문

문 시인의 시력, 연륜을 말해주는 구절들입니다.
‘시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시에서 문 시인은 ‘한 장 한 장 뜯기어 쏘시개로 타버리는 시집 때문에, 시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아.“하고 시를 낮춰보거나 부정하는 사람들과 풍조에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이번 시집에서 눈길을 끄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단 두 줄의 ‘작가의 말’입니다.
“시 한 편 완성할 때마다 당신에게 먼저 읽어주던 마음으로 이 시집도 당신한테 먼저 드립니다.”  
  ‘당신’은 일생의 반려인 아내일 수도 있고, 자식들일 수도 있고, 시인의 마음속 스승일 수도 있고, 시집을 대할 많은 사람, 즉 우리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 또 이 글에는 자신의 분신인 또 한 권의 시집을 내게 된 기쁨, 자신이 쓴 시작품들에 대한 자랑스러움, 시인으로서의 겸손과 오만까지도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짧으면서도 많은 걸 담고 있는 ‘작가의 말이 또 있겠습니까.
  시집 표지 안 쪽 날개에 나와 있는 시인 소개 글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문 시인은 다 아시는 대로 ‘시와 사람들’ 동인회를 만들어 뜻을 같이 하는 시인들과 함께 시심 개발과 시 나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 전도사 역할을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당 나라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라고 했습니다. 고래로 일흔까지 사는 건 드문 일이라는 뜻이지요. 그건 그 시절에나 해당되던 말입니다만, 시를 쓰며 여기에 이른 것 또한  축하할 일입니다.
  문 시인께서 앞으로도 시 창작과 시 전도사로서의 일을 더욱 정력적으로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 2009년  월  일

                      .........................................................................